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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할아버지카페 딸 Dec 10. 2022

사람들은 우리 부서를 '양계장'이라고 부른다.

마녀의 커피 한 잔 

사무실에서 무슨 잠을 그렇게 노골적으로 자. 


팀장 K가 내 앞에  커다란 지출결의서 뭉치를 내던지며 말했다. 잠은 무슨? 나는 아무도 듣지 못하는 마음속의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그리고 그런 내 속엣말이 틀렸다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듯이 팀장은 내 앞의 티슈각에서 휴지 한 장을 뽑아 나에게 건네며 말했다. 침 닦아. 


그리고 또 다른 전표 뭉치를  내 앞에 던져 놓았다. 이건 또 뭐람? 내가 잠시 그런 생각을 떠 올렸을 때, 팀장이 긴 한숨을 몰아쉬며 내게 말한다. 소개팅한다고 요 이틀 들떠서 다니더구먼, 결국엔 이 사고를 치셨네. 우리 막내가. 그녀가 턱으로 건너편의 J를 가리킨다. 전표 입력하다가 발견했어. 우수수 무더기로. 


제길. 

욕하는 거 다 알아. 


그녀가 내게 한마디 하고는 느적느적 자신의 자리로 돌아간다. 늘 그런 건 아니지만, 내가 그녀에게 굳이 음성학적인 언어 구사를 굳이 해야 할 필요가 있을까 생각이 들 때가 있다.  




나는 그다지 전망 없는 중소기업의 경리부 직원이다. 그것도 3년째 막내다. 내 예상이 틀리지 않다면, 앞으로 이삼 년은 계속 막내라는 타이틀을 달고 있을 것 같다. 어쩌면 그 보다 더 길어질지도 모른다. 우리 부서의 직원은 모두 10명, 자금집행팀이 5명, 기장세무팀이 4명, 그리고 우리 모두 할멈이라고 부르는 부서장이 있다. 


할멈은 오십 대 초반이다. 그녀가 할멈인 이유는 나이에 비해 훨씬 늙어 보일 만큼. 얼굴에 주름이 자글자글해서이다. 자기 말로는 러시아에서 유학을 하는 딸과 유명회사의 중역인 남편이 있다고 한다. 그러나 언제 찍었는지 모르는 가족사진 한 장만 책상 위에 놓여 있을 뿐, 그들을 실물로 확인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 가 아니라. 부서의 유일한 남자였던 팀장 K의 전임자가 있었다. 그의 말에 따르면, 남편과 딸은 모두 언니의 가족들이고, 그녀는 한 번도 결혼 경험이 없는 미혼이라고 한다. 전임 팀장이 본 것은 극장에서 언니의 가족과 함께 나오는 할멈이었다고 한다. -할멈의 말대로 한 가족이라면- 딸은 할멈인 엄마보다 이모를 더 닮았고, 그 남편 또한 아내가 아닌 처형과 더 친밀하고 가까워 보였다고 한다. 아무리 친해도 아내를 옆에 두고 처형의 어깨를 감싸 앉는 파렴치한이  또 있을까?  그리고 그 이야기를 뒷받침하듯이 팀장 K의 전임자는 그 사실을 알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할멈의 추천으로 대기업에 기적과 같은 연줄이 닿아 이직을 했다고 한다.   


왜, 그런 거짓말을 했을까? 할멈이 없는 자리에서 우리끼리 추측을 해본 적이 있는데, 결론은 늘 그랬다. 아직도 우리나라는 여자 혼자서 남편 없이 살아가기에 팍팍한 상황이라는 거. 그것 말고 또 뭐가 있겠는가? 아냐, 원래 성격이 이상하잖아. 남들 갖고 있는 거 자기도 갖고 싶은 거야. 가질 수는 없고, 있는 척하는 거지. 어느 쪽이든 불쌍하기는 마찬가지라고, 나는 생각했다. 그녀가 불쌍하다는 건, 난 결코 그런 딱한 처지가 되지는 않을 거라는 다짐이기도 했다. 


하지만 팀장 K를 비롯한 나머지 직원이라고 사정은 다르지 않다. 나와 일 년 차로 먼저 입사해서 선배가 된 Y는 싱글만에 이혼녀다. 올봄부터 유치원에 다니는 어린 아들이 있다. 그녀를 제외하고는 모두 40을 넘긴 솔로에 미혼 여성들로 입사년차만 10년이 넘는다.  부서원 모두의 업무년차를 합치면 100년도 차고 넘는다. 우리 부서가 회사 내에서, '양계장'으로 통하는 이유다. 양계장의 암탉들처럼 줄줄이 앉아서 퇴근 때까지 말 한마디 없이 일만 하다 가는 부서. 사실, 남자 직원 사이에는 그 보다 더 심한 말이 도는 것으로 아는데, 거기까지 털어놓고 싶은 마음은 별로 없다. 


그런 까닭에. 비록 지방대학이긴 하지만, 4년제를 나오고도 내가 늘 하는 일이라곤 지출결의서와 영수증을 비교해서 도장을 찍는 일을 한다. 보류 아니면 입력.  그토록 단순한 업무임에도 일은 늘 산더미처럼 쌓여있다. 결국, 잘못 도장을 찍은 전표 더미 덕분에 야근을 해야만 한다. 


오늘의 교훈 

도장은 어디서고 신중하게 찍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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