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할아버지카페 딸 Dec 19. 2022

커피 신이 강림하셨네.

마녀의 커피 한 잔

내 일상을 파고든 그 기묘한 사건은.  대략 일주일간 계속된 야근과 할멈의 히스테리, 신경질, 노골적으로 나를 겨냥한 인신공격성의 비난과 가스 라이팅으로 서서히 잊혀 갔어. 직장생활을 하면서, 특히 고여있는 물처럼 인사의 이동이 거의 없는 우리 부서에서는 흔한 일인 데다, 아무렇지 않은 일이기도 했어. 나는 그전에도 꽤 여러 번 그와 같은 일을 당했지. 


하지만 이번 사건은 이상하게도 기억에서 잊히거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되지 않았어. 사건의 선명함과 파장은, 마치 얼음장 위에 균열이 생겨나듯. 날마다 조금씩 내 일상을 위태롭게 했어. 예전에는 한 번도 갖지 않았던 질문이 내 안에 생겼으니까. 


구내식당에서 식사를 마친 나는 곧장 사무실로 올라왔어. 급한 불은 어떻게든 수습했다손 치더라도, 일손이 부족한 회사의 업무는 늘 차고 넘쳤어. 퇴근시간까지 정신을 바짝 차리지 않으면 오늘 중으로 모두 처리하려면 시간이 빠듯했지. 그런 나에게, 우리에게 허락된 것은 탕비실에 잠깐 들러서 믹스커피를 마시는 정도였지. 나는 늘 그렇듯 믹스커피 두 봉지를 뜯어서 커다란 컵 안에 넣고 뜨거운 물을 부었지. 달큼한 냄새가 코를 자극했지. 나는 마치 보약이라도 마시듯 두 손으로 컵을 잡고 커피를 들이켰어. 사실, 알고 보면 보약이라기보다 사약에 가까웠지. 우리 회사에 괴담으로 내려오는 이야기 중 하나인데. 이웃한 부서의 부서장 하나가 날마다 믹스커피를 사발로 마시다가, 심근경색을 앓았대. 그러다 아무도 없는 사무실에서 유명을 달리했다지. 


그리고 잠시, 가벼운 두통과 함께 산뜻하고 온난한 중남미의 산악 기후가 느껴졌어. 반닥 반닥 한 나뭇잎의 가장자리는 물결치는 듯 휘어져 있고, 달콤하면서도 향기로운 꽃향기가 내 주위에 가득했지. 그리고 이내 붉은 체리들이 내 눈앞에 선명히 보이기 시작했어. 


누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나는 알 수 있었어. 그곳이 어디인지.   


내가 마신 믹스 커피는  온두라스의 코판 지역에서 생산되는 원두가 약간, 그리고 콜롬비아의 산타바바라쯤에서 나온 커머셜급 수프리모가 그 보다 조금 더 많이 들어갔을 거야. 그리고 우리가 프리 O나 카네이 O이라고 부르는 식물성 경화유지와 설탕으로 간을 맞췄어. 이건, 온전한 커피라기보다, 유지와 과당 성분에 커피를 일부 혼합한 음료라고 보는 편이 더 낫지.     


내가 스스로를 의심할 때는 바로 이런 때야. 


나는 그 사건이 있기 전까지 커피에 대해 아는 것이 없었어. 그저, 나에게 커피란 몽롱하고 지루한 기분을 날려주는 보약 같은 것이었어. 그것도 그냥 마시기엔 부담스러울 만큼 쓴맛이 나는. 그런 내가, 지금껏 가보지도 못했고 생각조차 해보지 못했던 나라들을 떠 올리며 커피에 대한 정보들을 마치 처음부터 내 것 인양 중얼거리는 것.  그럴 때마다, 나는 스스로에게 되묻곤 하지. 


너, 누구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