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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할아버지카페 딸 Dec 28. 2022

할아버지는 어쩌다 할아버지카페를 하게 되었는가?

질풍노도의 시기가 꼭 청소년에게만 있는 것은 아니다. 요즈음 세간에 도는 우스개 소리를 들어보면 사춘기 아들과 갱년기 엄마가 싸우면 갱년기 엄마가 더 무섭다는 이야기도 있다. 그만큼 신체적, 정신적 변화가 가져오는 괴리감이나 충격이 사춘기 못지않게 크다는 이야기일 것이다. 


그리고 나는 여기에 한 가지를 더 가져다 붙이려고 한다. 

이걸 뭐라고 표현해야 하려나? 인생의 봄과 여름, 그리고 가을을 거쳐 겨울에 해당하는 노년기를 맞는 어르신들의 심경변화. 특히, 평생, 혹은 십수 년 동안 하던 일을 내려놓고 마지못해 뒷방 늙은이 노릇을 해야 하는 어르신들이 스스로 잦아들 때 보이는 여러 가지 감정변화와 사회적 충돌, 심리적인 상처 등등. 


아, 우리 가족이 카페를 시작하기 전인 육 년 전을 생각하면, 한 때 유행하던 가요 한 소절이 절로 떠 오른다. 아, 다시 가라 하면 나는 못 가네. 정녕 못 가네. 가장 고통스럽고 힘이 든 사람은 누가 뭐래도 우리 아버지, 그러니까 할아버지 바리스타님이었을 테지만. 엄마와 나, 그리고 해외에 나가 있던 남동생까지 그 시절을 생각하면 절로 눈이 질끈 감아진다. 


내가 기억하는 시작은. 


어느 날엔가 거울을 보면서 나에게 '수염을 깎을까?' 하고 물었던 것이다. 나는 그리 대수롭지 않게 '그러시던지' 하고 대답을 했던 것 같다. 그러나 돌이켜보면 아빠의 그 물음은 퍽이나 아리고 고통스러운 속내의 표현이었다. 그리고 그 비슷한 일이 두 어번 더 있었던 것 같은데, 아빠는 스스로를 수염값도 못하는 위인이라고 했다. 


나중에 안 사실인데, 아빠는 그 무렵에 집 근처 연립단지의 경비 면접을 보았다고 한다. 그런데 면접을 보았던 담당자가 아빠의 수염을 두고 싫은 소리를 했던 모양이다. 내가 알기로는 '수염값을 하라는' 언사는 바로 경비 면접을 보던 담당자가 했던 말이었다.  


그리고 아빠는 점점 침울해지고 괴팍해졌다. 사소한 일에도 버럭 화를 내고, 물건을 집어던지고, 급기야는 짐을 싸서  집을 나가버렸다. 그것도 마치 어린아이처럼. 아빠가 아끼는 비싼 외투 한벌을 걸치고, 지난여름 아들이 보내준 이태리 여행 때 구입한 수제 가죽가방만을 들고 바람처럼 사라졌다. 어떤 계기가 있었던 것도 아니고, 그런 사건이 발생할 만한 발화점이 있었던 것도 아니다. 그저, 가족들과 이야기를 하다 맥락 없이 아빠는 화를 냈고, 집을 나가겠다고 했다. 집을 나가는 아빠를 붙잡다가 계단에서 구른 나는 병원에 입원을 했고, 남동생은 아빠의 행방불명 소식을 듣고, 급하게 휴가를 내어 귀국을 했다. 그리고 집을 나간 아빠가 문경에 있는 작은 암자에서 지내고 있는 것을 알게 된 것은 대략 한 달쯤 지나서였다. 


아빠는 지금도 그날의 이야기를 하려 하면, 질색을 하며  입밖으로도 꺼내지 못하게 한다. 


그 무렵, 아빠를 괴롭혔던 것은 다름 아닌, 자신의 '쓸모'였다. 사실 알고 보면 우리 아빠는 돈 버는 재주가 남들보다 떨어지는 것은 사실이었지만, 그래도 훌륭한 아빠였다. 쉰이 다 되어 가는 나이에도, 어린 시절 아빠와 함께 했던 여러 가지 경험들을 생각하면 때때로 눈시울이 붉어지고 가슴을 뭉클하게 하는 일들이 상당히 많다. 그런 아빠가 스스로의 쓸모를 고민하다니. 나는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내가 그 사실을 알게 된 것은 우리 가족이 카페를 꾸리고 대략 삼사 년쯤 지나서였다. 


뭔가, 구체적인 이야기나 소개할만한 일화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 알고 보면 우리가, 가족들 간에 서로 알아야 할 일들에 대해서. 꼭 사건이 있어야만 알아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사건 때문에 '뭔가'를 알게 되는 것은 그다지 사실적이 아니다. 우리는 서로와 일상을 공유하며 가족의 구성원들에 대해 체감을 하는 시간이 훨씬 더 압도적으로 많기 때문이다. 우리가 서로를 알아가는 시간은 사건에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일상에 존재한다. 


그 무렵, 가게 매출은 영 형편없었고, 나는 가게를 접을까, 말까를 매일 고민하고 있었다. 그러나 차마 접을 수 없었다. 이유는 바로 아빠 때문이었다. 그 무렵의 카페는 아빠가 살아가는 이유였고, 아빠가 사람들에게 인정받는 유일한 통로였다. 그런 카페를 돈 때문에 접겠다는 말을 어떻게 아빠 앞에서 꺼낼 수 있을까? 나는 그냥저냥 그 지난한 시절들을 겨우겨우 버텨내며 견뎌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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