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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할아버지카페 딸 Dec 30. 2022

할아버지는 어쩌다 수염을 기르게 되었을까?

음. 할아버지딸의 기억에 따르면. 내가 고등학교를 졸업할 무렵이었던 것 같다. 수능을 보고 대입과 관련해서 담임선생님 면담을 할 때, 아빠는 수염을 기른 채로 학교에 왔다. 그때 담임 선생님이 아빠에 대해서 나에게 물었던 질문이 생각난다. 아빠가 시인이시니? 아니면 소설가? 그리고 나는 이렇게 대답했다. 아뇨. 산에 계시는데요. 그 무렵의 아빠는 집에 계시는 시간보다 산에 있는 시간이 더 많았다. 어쩔 때는 한 달이나 석 달씩 소식이 닿지 않을 때도 있었다. 아, 지금 생각해 보니까. 그때는 아빠가 젊었고, 우리는 철이 없었다. 그래서 아빠에 대해 별로 걱정이 되지 않았다. 


아빠는 그 무렵에 되는 일이 없었다.  잠깐 화장실에 간다고, 그것도 자기 식당에서 웃옷을 의자에 걸쳐놨는데, 누가 지갑을 빼가지 않나. 가게 장식으로 달아놓은 기와장이 떨어져 행인의 머리에 떨어지지 않나, 또 어렵게, 어렵게 돈을 모아서 큰 건물을 임대해서 사업을 시작했는데, 친구에게 별안간 사기를 당하지 않나.... 내가 생각해도 이렇게 운이 없을까 싶었다. 아빠는 헤밍웨이를 참 좋아하는데, 그 이유 또한 '아빠보다 운이 없는 사나이'여서라고 했다. 그래서 나보다 운이 나쁜 헤밍웨이도 한 세상 잘 살다 갔는데 뭘... 하고 생각했단다. 그때 아빠는 헤밍웨이가 엽총자살을 했다는 사실을 몰랐다. 

  

아무튼 상황이 이쯤 되고 보니, 아빠도 마음을 부지하기가 어려웠을 것이다. 그래서일까, 아빠는 방방곡곡 이름 붙은 산이란 산은 전부 올라 다녔다고 했다. 그러다 백두대간 종주인가를 하면서 한 달인가 두 달인가 수염을 깍지 못할 일이 있어서. 기르고 다녔는데, 그 모습이 보기 좋다는 사람이 많았다고 한다. 특히, 그 모습이 헤밍웨이를 닮았다는 소리가 제일 듣기 좋았다고 한다. 아빠가 수염을 기르게 된 계기다. 지금으로부터 대략 40년쯤 되지 않았나 싶다. 


하지만, 할아버지 딸이 옆에서 볼 때. 그 수염을 기르고 간수하는 일이 얼마나 까다롭고 번거로운지 모른다. 아빠는 딸과 부인이 머리 손질을 하기 위해서 미용실에 들이는 돈을 두고, 옛날 조선시대에 가채를 올리는 비용에 빗대어 말하곤 한다. 특히, 아빠를 닮아서 -말을 듣지 않는- 곱슬머리를 가진 나는 틈틈이 볼륨매직을 해야 하는데, 그 비용이 내가 생각해도 만만치 않기는 하다. 그러나 내가 보기에는 아빠의 수염도 마찬가지다. 비록 나처럼 큰돈이 드는 것은 아니지만, 수염을 깔끔하게 관리하기 위해서는 열흘이 멀다 하고 자주 이발소를 찾아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수염을 잘 다듬는 이발소 찾기가 하늘의 별따기이다. 여기에 덧붙여서 어지간히 '명장' 소리를 듣는 양반도 아빠와 스타일이 맞지 않으면. 그 수염의 스타일이란 것이 살지 않는다.  


몇 해 전, 아빠가 심각하게 수염을 깎아 버릴 것을 고민한 적이 있다. 앞서도 이야기한 적이 있는데, 아빠가 심하게 노인성 우울증을 앓을 때였다. 근처 빌라의 경비 면접을 보고 와서 담당자가 속없이 던진 말에 상처가 깊었던 모양이었다. 아빠는 스스로 수염값도 못하는 인물이라며 수염을 깎아버릴까, 하고 가족들에게 위협 아닌 위협을 한 적이 있었다. 


그때도, 지금도. 우리는 아빠의 수염이 사라지는 것에 대해서는 결단코 반대한다. 

수염이 없는 우리 아빠는..... 글쎄, 상상조차 되지 않는다. 

어후, 생각만 해도 너무 이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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