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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소운 Mar 19. 2021

선하게 살어리 살어리랏다

진심을 담은 합격기원 메시지

“부장님은 참 선(善)한 분 같아요.”

“부모님은 귀인(貴人)을 만났다 하시던데요, 부장님 뒤만 따라다니래요. 사람 죽이는 일만 아니면 찍 소리 말고 하라는 대로 다 하랍니다.”

“자기 일처럼 부하직원 챙기는 그런 사람 요즘 없다며 충심을 다해 보필하랍니다, 충성!"


  부하 직원 세 명이 일제히 쏟아부은 칭찬세례로 샤워를 한 듯 머리부터 발끝까지 촉촉이 젖어서 현관문을 들어섰다. 내심 자신이 기특해 죽겠다는 표정도 성큼 뒤따라 들어섰다.


 "아, 정말 잘한 일 같아, 잘했어. 애들 눈이 반짝반짝해졌어. 머리털 나고 이렇게 공부를 열심히 한 적이 처음이래. 학교 다닐 때 이렇게 공부했으면 서울대도 갈 수 있었을 것 같대."

문제의 귀인, 부장님의 목소리에 힘이 잔뜩 실렸다.

 "서울대까지는 좀... 아무튼 제대로 불이 붙었네. 세 명이니 자기들끼리 견제도 되고 경쟁심 발동하겠는걸. 초조하고 아주 죽을 맛일 테지만 진짜 진짜 붙고 싶다고 얘기하지 않아?"

나는 안타까움 반 흥미 반의 마음으로 물어보았다.

 "왜 아니래, 정말 정말 붙고 싶다고 덩치가 산(山) 만한 녀석들이 울먹울먹 해. 잘돼야 될 텐데..."

 "그러게... 세 명이 다 붙으면 좋겠다. 최고의 시나리온데..."

그들의 일거수일투족을 직접 목격한 것은 아니지만 간접적으로 세세히 들은 게 100여 일이 되어가니 생각과 마음을 헤아리고도 남는다. 그들의 간절함을 알기에 우리 부부는 한 동안 말이 없었다.

잘돼야 될 텐데...



 

 요즘 우리 집 남편은 고시생 행세를 하고 다닌다. 새벽 6시에 출근해 밤 11시가 다 되어 귀가한다.

부하 직원 세 명의 자격증 시험을 관리 감독하는 역할을 자처해서 맡기로 한 때문이다.

'가맹거래사'라는 회사와 관련한 자격시험으로 남편은 작년에 1,2차 시험을 차례로 봤고 한 번에 붙어 교육과정을 거쳐 오늘, 최종 자격증을 전달받았다.


https://brunch.co.kr/@@8usO/15


  자격증을 따 보니 유용하게 쓸모가 있겠다 싶어 부하 직원들에게 가맹거래사 자격증을 따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적극적으로 도와줄 테니 '도전할 사람 여기여기 붙어라~'를 했더란다.


   삐죽삐죽 망설이는 직원들에게,

 "쉐끼들, 젊은 놈들이, 마... 인마, 어이, 공부도 하고, 도전도 하고 그래야지, 나도 했는데... “

꼰대 짓을 했더란다. 교관 출신도 아니고 해병대 출신도 아니고 특전사 출신도 아닌 보충병 출신이면서 갖은 폼은 다 잡았던 모양이었다. 처음에 5명이 지원을 했고 남은 사람이 이제 세 명이다.


  100일이다. 작정하고 밤을 새워 공부하고 토요일 일요일에도 모여 스터디한 것이.

정확히 말하면 '스터디'라기보다 '족집게 과외'가 맞겠다. 민법 경영학 경제법 세 과목 평균 60점 이상, 과락 40점이 1차 시험 합격점이니 ‘100점을 목표로 하는 공부가 아니라 평균 이상만 하자’라는 다소 느슨한 목표 아래 100일 작전을 펼친 것이다.

'개인별 수준에 맞는 1:1 핵심 강의, 정리노트 100% 오픈, 예상 문제 대방출, 기간별 모의고사 체크’ 등 가히 상상을 초월하는 폭탄 재능기부는 기본이다. 공부가 끝나는 저녁 10시에는 한 명 한 명씩 환승역 혹은 집 앞까지 내려주는 '모셔다 드림 서비스'까지 하고 집으로 귀가를 한다.


  나도 처음 보았다. 이런 맞춤 서비스를 ‘알뜰히 살뜰히 꾸준히’ 잘하는 사람의 모습을.


  그런데, 칭찬 융단 폭격이 자행되는 와중에 잠시 제동을 걸어야겠다.

공부 시작한 지 50여 일쯤 지난 어느 날이었다.

남편이 심각히 얘기를 꺼냈다.

 "애들이 진짜 열심히 하는데, 몇 놈은 붙겠어... 시험에 붙고 나면 '에이, 시험 별 거 아닌데 부장님, 엄청 큰소리치셨네' 할거 아냐? 내가 쪽쪽 뽑아서 가르쳐준 때문이라는 걸 알기는 할까? 내가 이렇게까지 해야 할까?" 넋두리를 했었다.


  나라도 누구에게 거저 주고 싶지는 않을 것 같지만 내 일이 아니니 되레 큰소리를 쳤다.

 "사람이, 마, 어이, 남자가, 마... 해줄라고 딱 마음먹었으면 될 때까지 끝까지 확실하게 밀어줘야지, 처음부터 바라고 한 게 아닌데 뭘 그걸 가지고. 영혼까지 빼줄 마음으로 시작했으면 뿌리를 뽑아야지. 그 마음 다 알아줄 테니까 끝까지 가보이소. 내가 알아주면 됐지.”

이후 남편은 화끈하면서도 지고지순, 재능기부에 열과 성을 다하고 있는 것이고 결국 나는 내 자랑까지 무임승차하고 있는 것이다.


신당동 떡볶이의 전설, 마복림 할머니(2011년 작고하심).

  사실, 내 일 하기 바쁜 세상에 남의 일을 내 일처럼 봐주기는 쉽지 않다. 하물며 내가 노력해서 얻고 터득한 노-하우라면 맨 입으로 가르쳐 주기는 더더욱 힘들다.

오죽했으면 “고추장 뭐 쓰냐고? 고추장 맛은 며느리도 몰라, 아무도 몰라”라는 광고까지 유행을 했을까.

국가의 존망이 걸려 있거나 엄청난 가치가 있는 기술과 비법일 경우에는 전쟁까지 불사하지 않는가?


  조선 백자의 첨단 기술과 가치를 알고 눈독을 들이던 일본은 세계사에서 ‘도자기 전쟁’이라 불리는 임진왜란(1592년)부터 정유재란(1598년) 기간 동안 수많은 도공들을 끌고 갔고 자기로 만든 것이면 가정집 요강과 개밥그릇까지 싹쓸이해갔다.

지방 영주인 다이묘들은 아름다운 자기를 생산해 내기 위해 모든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다이묘들은 ‘성 하나와 조선 찻잔을 바꾼다’고 할 정도로 도공들에 대한 예우를 다했다.

이 정도는 되어야 기술력과 비법은 오롯이 전수되는 것이다.


  그 날 남편과 술 한 잔을 하면서, 우리가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에 대한 이야기도 깊었었다.


‘너는 장차 커서 뭐가 되고 싶으냐?’

‘너는 어떻게 살 것이냐?’

물음을 듣던 때부터 우리는 학교, 직장, 공부, 돈, 지위, 결혼, 명예, 자식, 행복 등 여러 기준에 의해 나뉘었고 비교되었다. 위축도 됐고 자책도 했었다. 젊은 시간을 탕진해 보기도, 악착같이 버텨보기도, 외면하기도 했었다.


  그러나 이쯤 되면 안다. 중요한 것을 알아보고 우선으로 생각하는 것들이 마음속에 자리하게 된다.

부질없는 것, 의미 없는 것들이 걸러진다는 말이다.

소위 ‘뭐가 중헌디?’라고 말할 수 있는 여유가 생겼다는 뜻이다.


  결국 '우리는 선하게 살아가자'라고 결론을 내렸다. 선한 가치를 실천하자고 했다.

어려움에 처해있는 누군가를 돕는 것이 인간 문명의 시작이라고 한다면 우리도 시작하자고 했다.

선한 사람으로 살아가자고 했다.


  젊은이들에게 도전할 수 있다는 믿음을 준 것.

도전하는 데 있어 용기를 갖게 한 것.

나아갈 때 옆에서 손잡아 힘을 보태어 주었다는 것.

선한 사람이 행한 선행일 거라고 굳게 믿고 있다.


  그나저나 무르팍 도사라도 불러 기운을 몰아주어야 할 판이다. 15일 남았다.

사력을 다해 노력해서 1차 합격하도록 기운 팍팍!!!

 



<선하게 살겠다 말하리>


어떻게 살고 있소?

선(善)하게 산다 말하리


쌓기만 한 지식 쓰일 데 없고

배운 것 잊어 자랑할 데 없고

빛나던 젊음 그 빛 희미해지고

땀 밴 돈 홀랑홀랑 다 까먹고

잘 먹히던 허세 알아줄 이 없고

금쪽같은 명예 죽어야 알게 되는 것


가장 나중 지녀야 할 것 중

가장 중한 것이 선하게 사는 것이라 여겨

선한 마음으로 행하자 하니,

지나가던 새 한 마리

그예 듣고 와 재차 묻는다


어떻게 살아야 하오?

선(善)하게 살겠다 말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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