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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소운 Dec 15. 2020

일상다반사(日常茶飯事)

마음에 부처 하나 지니고 사는 것, 결국 마음이었다.

명사

항다반사(恒茶飯事)라고도 한다. 본래 불교용어로 차를 마시고 밥을 먹는 일이라는 뜻으로 보통 있는 예사로운 일을 이르는 말.



# 1992년 여름.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오후, 산사(山寺)를 찾아가는 길이었다.

한여름 후텁지근한 열기가 한껏 부풀어 올라 마침내 쏟아져 내리는 비는 나뭇잎 위로, 우산 위로 호도독호도독 내리 꽂히는 중이었다.

우산이 비를 다 맞아주는 중이었지만 튀어 흩날리는 빗방울과 사선으로 들어오는 비에 옷이 젖는 것을 막기엔 역부족이었다.


  비와 습기와 땀과 호흡 때문에 희뿌옇게 김이 서린 안경이 땀에 미끄러져 자꾸만 흘러내렸다. 코 끝에까지 내려온 안경이 거북하고 거추장스러웠다.

 '젠장, 하필 이런 날, 절집이라니... 다른 날로 미룰 걸 그랬어.'

혼잣말을 하며 꾸역꾸역 길을 잡았다.


  걸을 때마다 신발 뒤축에 차인 잔가지와 젖은 풀 부스러기가 내린 빗물과 함께 종아리에 달라붙었다.

일이고 뭐고 이런 날에는 따뜻한 아랫목에 앉아 따끈한 차 한 잔을 마시며 낙숫물 떨어지는 소리를 들으면 참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하~하~' 가뿐 숨을 몰아쉬며 통도사의 한 작은 암자에 도착할 즈음에는 다행히 빗줄기는 약해져 있었다.

  암자는 낮은 안개가 깔린 숲 아래 얌전히 있었다.

빗방울 크기만큼 옴폭옴폭 파인 마당은 찬비에 열기를 빼앗겨 소름 돋은 팔뚝처럼 오돌토돌했다.

처마에 매달린 풍경이 흔들리며 남은 빗물을 털어내고 있었다.

 “스님... 수안 스니~임, 계세요?”

.........................

다시 적막에 빠진 찰나를 빌미로 잠시 눈을 감았다.

깊은 들숨에 옅은 향 냄새가 따라 들어왔다.

  “어서 오세요, 올라오시느라 힘드셨지요? 많이 젖었습니다. 이걸로 좀 닦고... 안으로 들어가시지요... 차를 먼저 끓여야겠네요”


  작은 체구에 소탈한 승복 차림의 스님은 발걸음도 가벼워서 움직임이 요란하지 않고 나지막했다.

보자기를 펼치며 다기를 하나씩 꺼내 놓았다. 찻주전자 찻잔 식힘사발 차통 대나무 계량스푼으로 단출했다.

 “아침 일찍부터 비가 왔어요. 계속 내리려나 했는데 다행히 그치려나 봅니다...”

  물 끓는 소리가 들렸다.

  

  익숙하게 대나무 숟가락으로 찻잎을 떠서 찻주전자에 넣는다. 무게를 달면 0.01g 조차 틀릴 리 만무하다는 듯 더하고 빼는 것 없이 과감했다.

뜨겁게 데운 물을 식힘 사발에 따라 식히고 한편 찻잔에도 뜨거운 물을 부었다 따르며 온기를 지니게 했다.

물을 찻주전자에 따르고 찻물이 우러나기를 기다렸다. 방 안에 차향이 나지막이 퍼졌고 스님과 나 사이의 침묵도 깊게 깔리었다.


  차가 우러나는 동안, 나는 아무 말 없이 가만히 앉아 있었다. 그래야만 할 것 같았다. 스님 역시 아무 말 없이 차를 달이는 일에 열중하고 계셨기에 더욱 그랬다.

창 밖 숲에서는 얇은 안개가 살아나고 살아났다.


  그러나 머릿속 말은 좀처럼 살아 나올 생각을 하지 못했다. 절절 끓는 절집 아랫목이 노곤했다.

 “자, 드십시다... 전라도에 있는 도반이 보내온 것인데 차향과 맛이 아주 좋습니다”

  따끈한 차 한 모금에 잠시 가출했던 정신이 돌아왔다. 몸이 따뜻해 오면서 땀이 비쳤던 이마와 콧잔등이 뽀송뽀송해지기 시작했다.

전화로 얘기한 대로 모 기획사의 누구이며, 우리 회사는 어떤 일을 하고 있다. A기업의 홍보물을 제작 중에 있는데 스님의 그림이 기업 이미지와 잘 맞다는 의견이 모아졌다. 어떤 목적으로 사용될 것이며 다른 곳에도 사용하기를 원하니 그림 사용을 허락해 달라. 어느 정도의 금액을 지불할 수 있으며 절충도 가능하다.

말빨 눈치빨을 모두 동원해 말한 요지다.

 

  “전화로 이미 제 그림은 상업적으로 쓰일 것이 못된다 하였지만 오신다 하기에 그냥 차 한잔 하려고 오시라 했습니다”

  수안 스님의 의중은 이미 전화로 읽었다.

그러나 마주 앉아 얘기하다 보면 이해되고 공감되는 부분이 있을 것 같았다. 가끔은 못 이기는 척 끌려가기도 하고, 화려한 말에 속아 넘어가기도 하고, ‘그냥 그렇게 합시다’ 하고 허허 웃으며 받아들이게 되는 것도 인생의 묘미 아니던가?


  “그림을 그리는 것은 내 마음자리를 표현하는 것이고 수행일 뿐입니다. 내가 바라본 내 ‘꼴’ 그림에 불과한 것으로 돈을 바랄 수는 없는 것입니다”

  더 이상 ‘그림과 일’에 관한 이야기는 무의미했다. 스님 말씀처럼 차나 마시다 가야 하나보다 했다.


 “알겠습니다, 스님... 저 역시 차 한잔 마시려고 왔습니다... 괘념치 마세요... 그나저나 이 차 이름이... 차향이 너무 좋습니다”

  허. 허. 허. 허... 또박또박 천천히 낮은 목소리로 웃으셨다. 네 마음 다 안다는 듯, 내 마음 알아줘서 고맙다는 듯.

 “일상다반사(日常茶飯事)라고 하지요. 모든 것이 밥을 먹고 차를 마시는 것처럼 예사로운 일이란 뜻입니다... 사람을 만나 차 한잔 하는 것이 일상이고, 원하던 일이 안되어도 차 한잔 마시고 나면 일상이 되는 것이지요. 허허허... 차 이름은 우전(雨前)이라 합니다. 곡우경에 수확하는 차로, 이른 봄 가장 처음에 나온 어린 찻잎을 일일이 손으로 따서 찌고 덖어 만들지요. 그래서 맛과 향이 아주 좋습니다.”


 ‘스님도, 참, 일상처럼 차나 마실 일입니까? 일의 성과도 없이 빈 손으로 가게 된 마당에 그것도 일상다반사라 할 것입니까? 차 한잔 하다 보면 일상다반사가 된다고요?’

투덜투덜 미운 마음을 가지고 터벅터벅 걸어 내려오는 길.


  어쩌면 우리의 일상은 특별하고 완벽한 것보다 평범하고 모자라는 것들이 더 많은 것이 아닐까?

'희로애락' 속에도 밝음과 어두움이 공존하듯 기쁨과 슬픔은 하나라는 것, 누군가는 떠나고 누군가는 남는 것, 힘든 일도 ‘일상다반사’로 여기는 것.

 

  깨달음도 차 향도 오래 기억하고 싶어 한 발 한 발 천천히 산사를 내려왔다.

  결국 마음이었다.


# 2020년 겨울.

  첫눈이 왔다. 날씨도 추워졌다. 겨울에 눈이 내리고 날 추운 것이야 일상다반사다.

그러나 우리의 일상 모습은 많이 달라졌다.

궂은날 들이닥친 손님처럼 마뜩지 않은 소식들이 정신없이 들이닥친다. 코로나 19의 세상은 다반사가 아니었건만 이제 일상다반사가 되었다. 느끼는 불안과 공포도 다반사가 되었다.


  서로 비슷한 웃음을 웃으며 마주 앉아 차 한잔하고 밥을 같이 먹는 일이 흔치 않은 일이 되었다.

삼삼오오 분식점에 앉아 수다 떨고 공을 차던 아이들은 집 컴퓨터 앞에 붙박여 있다.

집에서 근무하고 음식을 배달해 먹고 시장을 본다.

마음 아픈 것은 사람 없는 가게의 밝은 조명을 보는 것. ‘임대’ 자가 붙은 가게문을 보는 것. 빈 거리를 걷는 것. 생활고로 인한 누군가의 죽음을 기사로 보는 것.

그리고 2, 2.5, 3...

  문득, 스님을 찾아가 그윽한 차 한잔 얻어마시고 목적 달성도 못한 채 터벅터벅 걸어 내려오던 산사의 길이 떠올랐다.

그때는 일이 순조롭게 이루어지지 않아도 '인간에게 주어진 모든 일은 밥 먹고 차 마시는 것처럼 일상다반사가 아니겠느냐'며 마음에 부처* 하나 지니고 돌아왔었다. 


  산사의 그 길에서 나는, 다시 씩씩하게 살아가자고 용기를 내었었다. 뭐가 문제냐 배짱도 부려 보았다. 마음을 다독이는 위로도 분명 있었다.


  지금 와서 생각 드는 것 역시, 결국 마음이다.

일상다반사... 보통의 예사로운 일처럼 여기는 것, 항상심(恒常心), 마음의 여유를 찾아야 할 것이다. 힘을 내야 한다. 흔들리지 말자 마음 다짐을 한다.


  지금의 우리처럼, 오래전 스님은 문득 사람이 그리웠던 것은 아니었을까? 생각하는 쓸쓸한 겨울.



  


*) 표지 그림 : 수안 스님. 天下一鉢(천하일발), 하늘 아래 바리때(밥그릇) 하나

*) 특정 종교와 관련이 없음. 믿는 종교 없음. ‘모든 것은 마음에 달렸다’는 상징적 의미로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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