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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소운 Dec 16. 2022

재봉틀

어머니의 뒷모습이 보인다

  바지를 사면 바짓단 자르는 게 일이다.  맞춰 접은 단에 핀을 꽂아 수선실로 향한다. 수선을 기다리는 옷들이 번호표를 달고 길게 줄지어 연좌농성을 벌이는 걸 보니 당장 바지를 되찾아 가기는 틀렸다. 오늘 안에 가능하기는 한 걸까. 집에 재봉틀만 있으면 드르륵 단숨에 박아 버릴 일을 하잘 것 없는 일에 왔다 갔다 품이 많이 든다. 문 닫는 시간을 깜빡하는 낭패를 만나는 날엔 재봉틀 생각이 더욱 간절해진다.


  친정집에는 구름판 달린 재봉틀이 있었다. 어머니의 혼수품 1호, 재봉틀이다. 천 덮개를 걷고 튀어나온 나무판을 위로 올려 옆으로 펼치면 틀 안에 말안장처럼 생긴 까만 몸체가 나른히 누워 있었다. 미끈한 세요(細腰 가는 허리)의 여인이 모로 누워있는 모습으로 보아도 무방하리라. 몸체를 들어내 고정시키면 재봉틀은 개선장군처럼 당당해 보였는데 '자, 어서 할 일을 줘요, 누워 있느라 좀이 쑤셨다고요!' 얘기하는 듯했다. 그러면 어머니는 '그래? 그럼 우리, 신나게 한번 달려볼까?' 대구 하듯 실을 꿰고 오른손으로 돌림판을 돌리며 발 구름판에 박차를 가하는 것이었다.


  "촤촤 촤촤 드르륵드르륵..." 거실 가득 재봉틀 돌아가는 소리가 웅웅 날아다녔다


표지사진 : 일러스트 Jin H, 위 사진 : 옛이야기 블로그

  

  거실 한 귀퉁이로 오후 햇살이 들어오는 시간 즈음, 어머니는 집안일을 물리고 재봉틀 앞에 앉으셨다. 일곱 식구의 수선할 옷들은 언제나 차고 넘쳤다. 아버지의 터진 작업복부터 사형제의 구멍 난 교복이나 체육복 바지, 소매단 바짓단 수선 그리고 물려 입는 옷들의 품을 늘리고 줄이셨다. 어디 수선뿐이랴. 어머니는 식구들의 옷을 만들어 입혔고 생활에 필요한 식탁보, 커튼, 조각 이불까지 손수 만드셨다. 분명 안 해도 될 일일 것인데 일을 찾아서 하셨다. 손재주 하나 믿고 그러셨을 리는 없다. 집안 경제를 책임져야 하는 안주인으로 그것은 절약의 방법이었으리라.

  

  그러나 어머니의 힘든 노동의 시간이 철없던 나에게는 신나는 일이었다. 나는 재봉틀 주위를 왔다 갔다 하거나 바닥에 길게 누워 머릿속에 떠오르는 옷에 대해 조잘댔다.

 "2단 치마는 심심해. 3단이나 4단, 이렇게 층층 치마면 좋겠어. 주름도 많았으면 좋겠고"라든가 "나는 꽃무늬 옷이 좋아, 큰 꽃 말고 작은 꽃들 말이야. 그리고 원피스의 목 아래나 허리 뒤에 리본을 달면 어때요?" 같은 말들이었다. 그러면 어머니는 "재봉틀 돌아가는 소리도 시끄러운데 바람에 리본 나풀대듯이 나불나불 정신 사나워 죽겠네, 숙제는 다했어?" 쏘아붙였지만 3단 치마나 리본 달린 원피스를 다음 날이면 입을 수 있었다.

 

  그런데 그 재봉틀 말이다. 그건 언제 어떤 이유로 집에서 사라져 버린 것일까? 짐작해보면, 우리 형제들은 유행하는 옷들을 취향대로 사 입는 나이가 되어갔다. 할머니와 어머니의 생활복은 시장에서 사 입는 것이 더 저렴했다. 구멍 난 옷은 기우지 않고 버렸다. 쉽게 버려지는 옷처럼 재봉틀은 거실 한구석에서 먼지를 뒤집어쓴 채 묵언하는 날들이 많아졌을 것이다. 애물단지로 전락한 재봉틀. 어차피 필요 없어진 물건, 돈 몇 푼 받고 고물로 넘기셨을까. 그것은 어쩌면 집안을 든든히 지키던 어머니의 쇠락을 의미하는 것이었을지 모른다.

 

  그런데 생각해 보니 아이의 백일 즈음에 어머니로부터 비단 조끼를 받은 것이 있었다. 어머니의 첫 손주, 언니의 아들에게 지어주신 옷이 집안의 막내인 내 아들에게로 대물림된 것이었다. 조끼는 분명 명주실로 짠 공단을 재봉틀로 꼼꼼히 박음질을 해서 누빈 것이었다. 그러면 90년대 초반까지는 재봉틀이 우리 집에 있었다는 말이 된다. 조끼가 어디 있더라... 옷상자를 죄다 꺼내 뒤졌다. 있다. 손으로 만져 보드랍고 얼굴을 파묻으니 포근하다.

  

  드르륵 드르륵... 어디선가 재봉틀 돌아가는 소리 들린다. 오후 햇살에 옷감의 먼지가 올올이 날고 빨간색 파란색 재봉실이 어스름 노을빛을 짓는 분주한 저녁의 그 어디쯤 어머니의 뒷모습이 보인다.




<월간 에세이> 12월호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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