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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소운 Nov 14. 2022

스타벅스에서 (2)

< 작당모의(作黨謨議) 21차 문제:  무조건 이어 쓰기 2 >

 https://brunch.co.kr/@@aee4/289

[1부에서 이어집니다]




 어쩌자고 이런 순간은 내게로 온 것인가.

어쩌라고 여기서 그와 맞닥뜨린 것인가.

브런치라니. 따뜻한철이라니...


  이런 장면, 이런 상황을 상상해 보지 않은 것은 아니다. 아니, 꿈꿔왔다고 해도 무방하다. 따뜻한철과 댓글을 주고받으며 어느 순간, 어느 지점에서 이렇게 다정한 남자는 어떤 사람일까 궁금했었다. 그리고 그와의 만남을 상상했었다. 만나게 된다면 오늘처럼 급작스럽게 만나게 되었으면 했다. 그런 만남이라야 우연이라거나 운명이라거나 아니면 숙명이라는 말을 에둘러 갖다 붙여도 어색하지 않을 것 같았다. 어쨌든 그건 의도한 일이 아니게 되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마음이 시킨 일이 아니라고 회피하기 좋은 구실이기도 했다.


  놀람과 반가움이 각각 20%쯤 차지할 테고 두려움은 30%로 더 세게 심장을 가격하겠지. 일이 어떻게 전개될지, 호기심은 10%가량? 그리고 에라 모르겠다, 운명이 이끄는 대로 내버려 두자, 이런 생각도 20% 정도는 들 거야.


  그러나 현실은 놀람과 두려움이 100이었다. 브런치 메인에서 따뜻한철이라는 작가명과 윤슬... 어쩌고 다정... 어쩌고 하는 작가 소개를 보자마자 한 치의 망설임 없이 화장실로 황급히 내달렸으니까. 심장 떨리는 소리가 이명처럼 날카로웠다. 파도가 한계수위를 넘어 포구를 덮치는 순간이었다. 차가운 물을 뒤집어쓰고서야 비명 한번 지르지 못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리고 화장실 세 번째 칸으로 도망을 갔다. 이번에는 울지 않았다. 따뜻한철을 어쩌면 좋지, "안녕하세요? 저, 용감이에요." 일단 지르고 반응을 볼까? "이렇게 만나지기도 하네요, 혹시 따뜻한철님?" 넌지시 다가가 볼까? 있던 자리로 돌아가 따뜻한철님을 잠시 지켜보다 그냥 집으로 돌아갈까? 혼란과 정적 속에서 낮고 깊은 숨소리만 이어지고 있었다.





  브런치에 글을 발행한 날이었다. 취향에 관한 글이었는데 선물을 고르는 취향, 좋아하는 꽃에 대한 취향, 향기에 대한 취향, 제대로 취하고 싶은 시에 대한 취향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내용이었지만 가벼운 이야기였다.


히비스커스 꽃이로군요. 우리나라 국화인 무궁화와 같은 과(科) 꽃이죠. 제가 좋아하는 작가의 책 제목이기도 하고요.* 꽃이 화려하죠? 용감님과 어울려요. 제 취향이기도 합니다.

따뜻한철님의 댓글이 제일 먼저 달렸다.

친구가 꽃 화분을 생일 선물로 줬어요. 꽃은 예쁜데 꽃 화분 선물은 좀 생뚱맞지 않아요? 잘 키워 보래요. 열 남친 안 부럽다고. 개업식 화분도 아니고, 참 나... 꽃에 대해서도 많이 아시나 봐요. 꽃말이 뭘까요?

초록색 창을 검색하면 정보가 줄줄이 딸려 오겠지만 굳이 그렇게 하지 않는다. 꽃말처럼 그의 말이 더 궁금했기 때문이다. 한마디라도 말을 더 걸고 싶은 응큼한 마음이 작용했을 것이다.

무궁화처럼 오랫동안 열심히 피고 지는 꽃이거든요. 그런데 꽃말은 아무도 모르게 간직한 사랑, 섬세한 사랑의 아름다움이에요. 노골적인 암술을 보면 '아무도 모르게'라는 말이 무색한데 말이에요. 아이러니하지 않아요? 따뜻한 다정이 늘 그대 곁에.

 따뜻한철의 댓글을 읽은 후, 히비스커스 꽃을 한참이나 들여다봤다. 다른 사진들도 찾아봤다. 다른 꽃의 암술은 이것보다 작았다. 노골적인 암술이라는 표현이 적절해 보였다. 하지만 ‘노골적인’이란 단어가 계속 머릿속에서 빙빙 돌았다. 단어 하나하나가 열차 차량 이어지듯 이어졌다.

아무도 모르게… 노골적인… 간직한 사랑… 아름다움… 와~ 뭔가 스토리가 될 것 같은데요. 소설을 써볼까 봐요

댓글을 달면서 얼굴이 이렇게 붉어지기는 처음이었다.




  화장실에서 이러고 있으면 안 된다. 정말 이제는 집으로 가야만 한다. 번잡한 주말 저녁은 피하는 게 상책이다. 조금 더 지체했다간 길거리에 꼼짝없이 갇히게 된다. 스타벅스 출입문으로 가는 길에 따뜻한철님을 슬쩍 한 번 볼 수 있을 것이다. 글을 쓰고 있을까. 책을 읽고 있을까. 그의 얼굴을 다시 한번 봐 두어야겠다고 생각하면서 크게 심호흡을 하고 화장실 문을 열고 나갔다.


  왠지 그럴 것 같았어. 영화 속에서도 그렇잖아. 나가보면 그 사람은 항상 떠나고 없지. 아쉬움과 안도가 교차하는 순간이야. 한 번만에 이루어지는 역사는 재미없는 법이거든. 이럴 줄 알았으면 용감하게 말이라도 걸어보는 건데... 아쉬운 마음을 달래며 버스에 올랐다. 순간 느꼈던 긴장감을 기분 좋은 생각으로 날려버려야 한다. 병철씨를 만나야 하니까. 병철씨를 만나는 자리에서까지 다른 남자를 생각할 수 없는 노릇이니까. 비록 그것이 현실과는 동떨어진 감정이라 할지라도 그건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다른 생각을 하면 얼굴에 티가 너무 나니까 꼭꼭 숨겨야 했다. 저녁은 뭘 먹으면 좋을까? 뜨겁고 얼큰한 순대국밥을 먹자고 하면 질색을 하겠지. 아니면 화끈하게 마라탕을 먹자고 할까.


 병철은 만난 지 300일이 되던 날, 나에게 프러포즈를 했었다. 모든 것이 계획에 있었던 것처럼,

"1년 되는 날 결혼식을 하려고 했어. 그걸 고백하는 날이 오늘이고. 나와 결혼해 줄래? 내가 잘해줄게. 함께 살아가는데 큰 어려움을 없을 거야. 힘들지 않을 거야. 너만 있으면 돼."라고 말했다. 많은 것을 갖고 있고 갖추어진 사람이라 그의 말대로 큰 어려움은 없을 것이다. 힘들고 어려운 나의 현실에서 벗어날 수 있는 구체적인 방안이기도 했다. 물론 그는 나를 끔찍이 사랑한다고 열렬히 구애했었다. 무르고 감정적인 내 성격과는 반대로 냉철하고 치밀하고 완벽한 사람이라는 점이 마음에 들면서도 걸렸다. 살아가면서 나를 잡아주고 지켜줄 거라는 믿음 하나는 굳건했다. '모든 게 완벽한 것도 문제가 될까?' 나는 친구, 영심에게 물었었고 '너는 가끔 완벽한 것에서 틈을 찾더라.'라는 말을 들었다. '나는 자주 주변을 두리번거리곤 해. 배고픈 고양이처럼 말이야. 그렇지?' 나는 다시 물었고 '너는 자본주의 냄새가 가득한 스타벅스에서 탄내 나는 커피를 즐기면서, 그게 좋으면서, 아저씨 냄새나는 순댓국을 더 좋아한다고 느끼는 것 같아.' 영심은 대답했다. 그게 나의 문제였을까. 병철씨 몰래 간직한 글에 대한 열정은, 사람에 대한 그리움은 이런 모순에서 기인하는 것일까? 


  병철씨와 헤어진 늦은 밤, 집에 돌아와 브런치 앱을 열었다. 브런치에는 따뜻한철님의 두 번째 글이 올라와 있었다.

'만나러 갑니다.'

만나러 온다고? 가슴이 또다시 뜨거운 융합 반응을 일으켰다. 지금? 만나러 온다고? 아니다. 지금은 아닐 것이다. 따뜻한철님은 다정한 사람이니까 '만남'에 깔려 있는 '기다림'이라는 정서를 알고 있을 것이다. 급하게 글을 읽어 내려갔지만 내용은 머릿속에 새겨지지 않고 제목만 남았다. 만나러 갑니다 라는 말과 마지막 방점에 시선을 고정했다. 그래요, 만나요 라고 혼잣말을 하며 은유와 우연이라는 단어를 끌어다 붙였다.


  나는 다음 주말, 3시간 걸려 지하철을 타고 버스를 갈아 타며 스타벅스에 다시 갈 것이다. 따뜻한철을 다시 만나게 되어도 좋고 그가 없어도 괜찮다. 책을 읽고 글을 쓰는 것으로 족하다. 같은 시간, 어딘가에서, 누군가와 함께라는 느낌만으로 충분하다.


  그렇게 다시 살아나면 되는 거였다.



[3부에 계속됩니다]



*) <보라색 히비스커스> : 치마만다 고치 아다치에


작당모의 이번 주제는 '무조건 이어 쓰기' 두 번째입니다.

오늘 이 글이 발행되는 순간까지 다른 세 분의 작가님(민현, Faust, 진샤)들은 제가 무엇을 어떻게 쓸지 전혀 알지 못하는 상태입니다. 첫 번째 진샤, 두 번째 저의 글에 이어 '스타벅스에서'의 3부는 민현 작가님, 4부는 Faust 작가님이 쓰실 예정이며 3부는 11월 17일(목) 발행 예정입니다.  

읽어주시는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4인 4색, 결 다른 사람들이 글쓰기 위해 모였습니다.

제대로 한번 써보자는 모의이며, 함께 생각을 나누며 어울려 살자는 시도입니다.

격주 목요일 매거진에 글로 작당 모의할 예정이니 지켜봐 주시길 바랍니다.

자, 그럼 수작(手作) 들어갑니다~, 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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