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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샤 Nov 10. 2022

스타벅스에서 (1)

< 작당모의(作黨謀議) 21차 문제: 무조건 이어 쓰기 2 >



   너무 멀리 나왔나. 지하철 두 번, 버스 두 번 갈아타고 편도 3시간 걸려 오기에는 체력에 부담이었나. 그래 봤자 목적지는 스타벅스인데.


   주말에는 스타벅스에 가야 한다. 집 주변 스타벅스는 안 된다. 한 시간 이내 스타벅스도 안 된다. 도시의 느낌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시골의 스타벅스여야 한다. 전깃줄의 풍경과 잘 어울리면서 청설모가 지나다니는 길 위의 스타벅스여야 한다. 친구들은 ‘그런 곳이 있어?’라고 묻고 나는 ‘그럼, 있지’라고 대답한다. 어디인지는 끝까지 밝히고 싶지 않은데, 그렇게까지 자세히 묻는 친구도 없어서 내 비밀의 스타벅스들은 그렇게 영원히 비밀의 장소가 되어버린다. 그곳에서 환상처럼 책을 읽고 꿈속처럼 글을 써야 한다. 주말의 하루를 그렇게 보내야만 나는 다시 살아난다. 그 시간이 없는 주말은 내게 휴식이 아닌 그저 토요일이나 일요일일 뿐이다.     

   유난히 외진 곳이어서 나 역시 놀라긴 했다. 이런 곳에 진짜 스타벅스가 있긴 하구나, 스타벅스 진짜 대단하긴 하구나. 돌체 라테 그란데와 치즈케이크. 어느 스타벅스에서나 같은 나의 메뉴. 지난해 구청에서인가 들었던 바리스타 수업에서 파마머리 강사가 그랬지. 한국 스타벅스 커피는 일본을 거쳐서 오느라 보존이 오래되어야 해서 탄 맛이 더 세게 난다고, 자기는 스타벅스에서 나는 자본의 맛이 너무 싫다고. 그 수업 이후 나는 더욱 스타벅스만 찾아다니고 있다. 약간의 반항심 더하기, 나는 탄 맛이 좋으니까. 스타벅스 특유의 탄 맛 때문에 먹는 건데, 그 맛이 다른 커피에서는 안 나는데.

   교회 모임처럼 보이는 아줌마 무리들이 저 쪽 테이블에 동그랗게 앉아 서로 손을 맞잡고 고개를 숙이고 있다. 한 분이 무어라 무어라 하는 걸 보면 기도를 하는 듯하다. 그 옆 테이블엔 어쩐지 시골과 어울리는 수염이 나 있는 외국인이다. 푸른 눈과 노란 머리 빼면 너무나도 코리안스러운 패션과 표정과 자세여서, 웨얼아유 프롬, 하면 충남 옥천이유, 할 것만 같다. 그런 상상을 하고 혼자 피식 웃는다.

   앞에 펼쳐놓은 소설집은 영 읽히지 않는다. 역시, 노벨문학상 수상자 작품은 읽는 게 아니야. 책 읽으러 왔다가 커피 먹고 가지요,라고 혼자 가사를 바꾸어 속으로 노래를 부른다. 핸드폰이 울린다. JT캐피털 보험에서 이번에 고객님께.... 끊는다. 시골에서의 커피 향을 방해하는 기계음이다. 질색이다. 살짝 미간에 힘이 들어간다.

   아, 네, 괜찮습니다, 하하하, 정말 괜찮습니다, 네네, 수고하십시오.

   조금 전부터 저 목소리가 거슬렸다. 중저음의, 카페 바닥에 고요하게 깔리는 목소리. 그러니까 내 취향의 목소리. 목소리뿐이던가. 약간의 곱슬머리, 21세기와 어울리지 않는 금테 안경, 금테 안경과 잘 어울리는 - 꽤나 촌스러운 - 체크무늬 셔츠, 앉은 자세에서 유독 돋보이는 곧은 허리, 허리 아래로 길게 뻗은 다리.

   나는 아무래도 촌스러운 스타일을 좋아하는 것 같다. 도시의 고만고만한 스타일에는 도저히 눈이 가지 않는다. 조금은 촌스럽고 많이 진중한, 저런, 왼쪽으로 두 테이블 건너 혼자 열심히 키보드를 두드리는 저런 스타일에는 쉽게 꽂힌다. 그래서 소설이 더 읽히지 않는다. 다음에는 가벼운 에세이집도 같이 챙겨 다녀야겠어. 소설 다섯 줄 읽고 창 밖 보고 옥천 할배를 보고 왼쪽남을 흘끗 보고.

   왼쪽남이 가방을 뒤적거리다 무언가 꺼낸다. 그가 꺼낸 것이 토플 정복이나 서울 부동산 공략 같은 책이 아니라, 레이먼드 카버의 소설집과.... 저 책 제목이 뭐더라, 읽었었는데. 그... 아다치.. 앙고치... 아프리카 페미니즘 작가의...... 도저히 기억이 안 난다. 이게 뭐라고 급히 검색을 한다. 아, 치마만다 응고치 아다치에! 잘생기거나 멋지진 않지만 분명 호감 가는 비주얼에 독서 취향마저 비슷하다니! 이건 운명... 이라면서 영화였다면 다가가 ‘이 책 저도 봤어요’라든가 ‘이런 책 좋아하시나 봐요’하면서 자연스럽게 앞자리에 앉겠지만, 이건 영화가 아니라 현실이니까 속으로만 반갑고 만다. 여행 오듯 오게 된 카페에서 취향에 드는 사람을 보게 된 것까지만 해도 꽤나 영화 같은 일이긴 하니까, 라며 괜히 혼자 속을 달래 본다.

   단편소설 하나가 밋밋하고 시시하게 끝이 났다. 뭐 어쩌라고, 이런 작품을 쓴 사람이 노벨문학상을 받다니... 이런 소설로 노벨문학상을 주는 거라면, 난 준다 해도 받지 않을 테다. 브런치 앱을 누른다. 오? 오랜만에 민트 알람이? 이럴 수가. 따뜻한철님이 오랜만에 답을 남겨 주셨다.


그간 개인 사정이 있어 브런치를 오래 비웠습니다. 안부 전하고 물어주셔서 감사해요, 용감님. 변변찮은 글이지만 용감님께서 건네신 응원과 위로로 다시 이어가 보겠습니다. 따뜻한 다정이 늘 그대 곁에.


   처음 보았을 때도 저 문구에 마음이 동했다. 따뜻한 다정이 늘 그대 곁에. 회사 화장실에서 처음 운 날이었다. 일을 이렇게밖에 못하는데 이건 왜 달고 다니냐, 하고는 머리를 때렸다 아니 서류철로 쳤다 아니 톡톡톡 두드렸다 아니 건드렸다. 어쨌든 그런 류의 폭력이 있었다. 나는 멈출 때까지 서 있었고 과장은 사무실 사람들이 다 볼 때까지 그렇게 했다. 이렇게 일 못하면서 밥도 처먹고 달달이 피도 줄줄 흘리면서 산다 이거지. 1분이 넘었을까, 나는 그 시간 동안 내가 태어나 받은 모든 학대와 수모를 떠올렸다. 그렇게 견뎠고 과장의 ‘나가봐’ 한 마디에 화장실로 향했다. 두 번째 칸의 휴지가 없어서 세 번째 칸으로 들어가 울었다.

   울고 나와 세면대에서 세수를 하고 브런치 앱을 눌렀다. 그날의 민트 알람을 잊지 못한다. ‘따뜻한철님이 라이킷했습니다.’ ‘따뜻한철님이 댓글을 남겼습니다.’ ‘따뜻한철님이 내 브런치를 구독합니다’, 따뜻한철을 클릭하자 하나의 글이 있었다. ‘울지 말아요’라는 제목, 프로필에는 ‘따뜻한 다정이 늘 그대 곁에’. 그가 구독하는 사람은 둘이었다. 브런치팀과 용감. 나는 또 세 번째 칸으로 들어가, 그 전보다 더 많이 울었다. 이 사람 뭔데 날 울리지. 그날부터 그렇게 우리는 구독자로, 댓글에 서로가 남긴 은유를 알아보는 구독자 그 이상으로 지내왔다. 적어도 나는 그랬다.

   지금쯤 출발을 해야 한다. 그래야 서울에 도착하면 배가 알맞게 고픈 저녁시간이 될 것이다. 왼쪽남이 자리에 없다. 화장실이라도 간 건가. 서울까진 세 시간여 걸릴 테니 화장실에 갔다가 나갈 것이다. 화장실에 가려면 그의 자리를 지나야 한다. 그러니까 나는 지금 화장실에 갈 것이다. 화장실에 가는 김에 그의 노트북 화면이 슬쩍 보일 것이다. 이건 범죄도 아니고 스토킹도 아니고 뭣도 아니다. 그냥 보이면 슬쩍 보는 것뿐이다.


   와, 브런치. 세상에, 브런치라니.

   그리고 프로필,

   노을빛을 머금은 호수가 내뱉은 윤슬로 가득 찬,

   그것은 아니 그분은

   따뜻한철이었다.



[2부에 계속됩니다]





작당모의 이번 주제는 '무조건 이어 쓰기' 두번째입니다.

오늘 이 글이 발행되는 순간까지 다른 세 분의 작가님(소운, 민현, Faust)들은 첫 번째 주자인 제가 무엇을 어떻게 쓰지 전혀 알지 못하는 상태입니다. 두번째 작가인 소운 작가님께서 오늘 발행된 이야기에 이어 '스타벅스에서'의 2부를 쓰실 것이며, 그것은 11월 14일 월요일에 발행될 예정입니다. 3부는 민현 작가님, 4부는 Faust 작가님입니다. 마찬가지로 직전의 작가님이 어떤 전개를 하실지는 전혀 모르는 상황입니다.

읽어주시는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 대문사진 출처: 아빈캘리그라피디자인 님의 블로그, 스타벅스 파주 문산점





4인 4색, 결 다른 사람들이 글쓰기 위해 모였습니다.

제대로 한번 써보자는 모의이며, 함께 생각을 나누며 어울려 살자는 시도입니다.

매주 월요일과 목요일 매거진에 글로 작당 모의할 예정이니 지켜봐 주시길 바랍니다.

자, 그럼 수작(手作) 들어갑니다~, 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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