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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소운 Dec 22. 2022

홀로

< 작당모의(作黨謨議) 크리스마스 특집:  나홀로 집에 >

# 1.

- 엄마는 이제 시장에서 돌아오고 있는 중이야. 건널목을 지금 막 건너고 계시는군.

- 하나, 둘, 셋... 그래, 그래, 엄마가 보여. 약국을 지나 왼쪽으로 방향을 바꾸셨어.  골목길로 접어드는 순간이지.

- 어디 보자... 엄마의 눈에 우리 집이 보이는구나.

- 아휴, 힘들어, 숨 좀 돌리고 갈까? 엄마는 잠깐 발을 멈추고  양손에  장바구니를 내려놓으셨어.

- 다시 걷기를 시작했어. 하나, 둘, 셋... 드디어, 대문 앞에 도착했어.

- 엄마다!

-......

- 아냐, 아냐, 지금 옆집을 지나고 있어. 조금만 기다리자.

- 지금이야. 엄마의 모습이 보인다, 보인다, 진짜 보-인다.

-......

- 아니잖아, 엄마는 언제 오는 거야.


  엄마가 시장에 다녀오겠다고 나가신 지 꽤 오랜 시간이 흐른 것 같았다. 우리 형제들은 정신없이 놀다가도 옹기종기 모여 앉아 엄마가 어디쯤 오고 계신지, 점치는 놀이를 했다. 무릎이 닿기도 전에 모든 것을 꿰뚫어 본다는 무릎팍도사처럼. 어디 보자, 바로 보자, 옆으로 보자던 부채도사처럼. 시장에서 우리 집까지의 거리와 지형물을 가늠하며 보폭 하나하나까지 셈을 했다. 셈을 마치기도 전에 엄마가 문을 열고 들어오실 때도 있었고 거짓말처럼 '지금이야!' 외치는 순간, 당도할 때도 있었다. 그러나 엄마는 대체로 막내가 울먹울먹 할 때를 훌쩍 지나 들어오셨다. 기다림의 시간은 길었고 항상 우리의 인내를 시험하는 듯했다.


  그러나 그 시험은 어려운 것이 아니었다. 엄마의 단기적 부재에서 오는 불안은 다른 생각, 상상, 놀이를 하며 잊을 수 있는 것이었고 엄마가 반드시 돌아올 거라는 믿음이 깔려 있었기에 참을 만했다.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힐 일 없겠다, 확신이 서고부터는 "엄마 잠깐 요 앞에 갔다 올 테니 꼼짝 말고 여기 있어야 돼." 하는 말에도 눈 깜짝 않고 기다릴 수 있었다. 장기적 부재 혹은 영원한 부재에서 느끼는 결핍과는 사뭇 다른 것이었기에 불안은 금세 '아이, 재미없어! 다른 녀석을 찾아봐야겠군.' 하며 얌전히 물러나는 것이었다.


# 2.

  결핍을 안고 사는 사람의 모습은 달랐다. 처음 그 아이를 만났을 때 나는 뭔지 모를 마음의 허기 같은 것을 느꼈던 것 같다. 16명, 중학교 1학년 학생들과 <경기도 꿈의학교>를 운영하면서 유독 시선이 가고 마음이 쓰였던 아이. 달리기와 팔씨름 등 운동을 잘하고 소위 '깡'이라고 하는 승부욕도 있는 아이였지만 평소에는 힘 없이 축 쳐져 있었고 말과 행동이 조심스러웠던 아이. 천방지축 들떠 있는 여느 아이들과는 달리 무심한 표정이 어두웠던 아이. 그래서 간식 하나라도 더 챙겨 주었고 말이라도 한 번 더 건네었었다.


  현장체험을 하고 돌아오는 버스 안이었다. 사람과의 대화에서도 예의가 필요하다는 얘기가 오가던 중이었다. 나는 가족이나 부부 사이에서도 대화의 기술은 필요한데 평소에 서로에게 존댓말을 사용하는 것이 싸움을 크게 만들지 않는 방법 중 하나인 것 같다는 요지의 말을 하고 있었다.

 "그래야 기분도 덜 나쁘고 막말까지 안 나오는 법이거든."

다들 고개는 끄덕였지만 영혼 없는 끄덕임이었을 거다. 시선은 다른 곳을 향해 있었으니까.

 "그래서 저희 부모님은 이혼을 하셨나 봐요. 험하게 싸우셨거든요..." 침묵을 깨고 그 아이는 낮고 작은 목소리로 이야기했다.

 "아... 그랬었구나. 미안해. 몰랐어."

 "괜찮습니다. 사실인걸요. 그리고 아주 오래전의 일이기도 하고요..." 그 아이는 아무렇지 않은 듯 살짝 웃어 보였지만 '오래전 일인데도 저는 생생히 기억하고 있는걸요.'라고 말하는 듯해서 마음이 아렸다.


  그 후, 아들로 부터 그 아이에 대한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생각한 것보다 좋지 않은 환경이었고 어린아이가 감당하기에 너무나 벅찬 것들이었다. 부모의 이혼, 아이를 보호할 어른의 부재, 사랑에 대한 결핍, 아버지의 폭력, 경제적인 어려움... 그래서 그 아이는 거의 혼자 생활하고 있었고 학교와 지역에서 주는 지원금과 가끔 집에 들어와 아버지가 쥐어주는 용돈이 떨어지면 주말 아르바이트를 하며 생활비를 충당하고 있었다.


  아들 친구에게 해 줄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았다. 견디며 이겨내고 있는 아이의 자존심을 건드려서는 안 되는 일이었다. 학교를 통해 장학금 형식의 지원을 해주고 싶다는 의사를 밝혔고 집에 놀러 오면 자고 가라고 한 마디씩 건네었고 좋아하는 소고기메추리알 장조림과 계란말이를 해주는 것, 간식 사 먹으라고 약간의 용돈을 주는 것이  전부였다. 용기 잃지 말고 열심히 공부하라는 어쭙잖은 어른으로서의 한마디를 덧붙여 가며...


# 3.

  그러니까 한 달여 전의 일이다. 하... 탄식으로 시작하는 아들의 톡을 받은 것은. 친구의 아버님이 돌아가셨다는 부고였다. 올해 초 폐암 말기 진단을 받았다는 얘기를 전해 들었는데 올 것이 온 거였다. 깊은 슬픔은 이런 것이었다. 속절없이 눈물이 쏟아지고 마는 것. 아들을 두고 그는, 쉽게 눈 감을 수 있었을까. 아들에게 물려줄 뭔가를 조금이라도 마련하고 돌아가셨을까. 그 아들은 어떻게 살아가야 하지. 의탁할 일가친척은 있을까, 이제 고등학교 1학년, 17살인데... 사고무친의 외로운 신세, 외로운 혼자가 된 것이 아닌가. 이 무슨 현대판 <엄마 없는 하늘 아래> 영화 찍는 일인지...


  아이는 생각보다 강했다. 외로운 '혼자'로 '홀로' 지내는 것이 익숙했기 때문일 수도 있고 누군가의 부재가 아직 현실로 느껴지지 않아서 일 수도 있다. 여전히 학교를 다니고 아르바이트를 하고 친구들과 pc방, 스터디카페에서 늦게까지 시간을 보내거나 공부를 한다고 들었다. 홀로 집에 있기 싫어 일부러 그러는 것이라 짐작한다. 가끔 동네에서 친구 무리 속에 있는 그 아이를 본다. 여전히 무심한 표정이지만 나를 보고 반갑게 넙죽 인사한다. 무리 속에 있지만 왠지 나는 그 아이만 홀로 걸어가고 있는 느낌을 받는다. 저렇게 혼자, 힘든 길을 걸어갈 것을 생각하면 또 울컥하고 눈물이 난다.



  # 4.

  10시부터 다음 날 새벽 2시까지 밤하늘 동쪽 쌍둥이자리를 중심으로 별똥별이 떨어지는, 올해의 마지막 우주쇼가 펼쳐진다는 뉴스를 본다. 별똥별이라는 아름다운 천문현상은 지구가 소행성 파에톤의 궤도에 떨어진 부스러기와 만나며 나타나는 것이라며 잠재적으로는 지구에 위협이 되는 위험한 존재라는 기사로 이어진다. 별똥별이라는 말에 잠시 '토마토 스위스 인도인 별똥별 역삼역 우영우'가 랩처럼 들리는 듯했지만 기억은 밤하늘 별을 헤던 학창 시절로 돌아가 옥상 평상에 머물렀다. 북두칠성과 카시오페이아 자리를 이용해 북극성을 찾기도 하고 어느 별을 내 별로 삼을까 즐거운 상상을 하던 시절.

별똥별 하나가 가는 꼬리를 비추며 떨어져 내리면 '훌륭한 위인이 세상을 등졌구나' 안타까워하다, 소원을 빌어볼까 심각해지기도 했었지. 그때의 내 소원은 혼자이고 싶어요, 나홀로 세계 여행을 하는 게 꿈이에요, 하루빨리 자주독립 하기를 원해요... 이런 것들이었다. 기를 쓰고 혼자이고 싶었던 때였다. 식구들로 북적대는 집에서나 친구들과 함께인 학교에서도 나는 '내 마음이 혼자이면 나는 홀로인 거다.' 생각하며 혼자의 시간을 즐겼다.


  지금도 가끔 혼자만의 시간을 꿈꾼다. 그건 홀로 있고 싶다는 신체적인 자유라기보다는 정신적인 여유를 갖고 싶다는 바람이다. 그러나 신체적이든 정신적이든 그건 선택적 홀로이다. 혼자, 홀로가 선택이 아닌 어느 날 갑자기 주어져 버린 홀로라면... 우연히 나 홀로 집에 남게 된 케빈이 악당들을 물리친다는 유쾌한 코미디가 아닌 크리스마스, 연말을 나 홀로 집에 있어야 하는 유쾌하지 않은 드라마의 주인공이 되어야 하는 상황이라면...


  <나홀로 집에> 4를 찍고 있을 그 녀석을 집에 모셔와 뜨끈한 떡국 한 그릇 해 먹여야겠다고 생각한다. '홀로'인 연말은 재미도 없고 낭만적이지도 않은 설정이기 때문이다.




4인 4색, 결 다른 사람들이 글쓰기 위해 모였습니다.

제대로 한번 써보자는 모의이며, 함께 생각을 나누며 어울려 살자는 시도입니다.

격주 목요일 매거진에 글로 작당 모의할 예정이니 지켜봐 주시길 바랍니다.

자, 그럼 수작(手作) 들어갑니다~, 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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