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논이나 강, 저수가 꽁꽁 언 얼음판 위에서 쌩쌩 신나게 달릴 수 있어. 10년 전만 해도 겨울을 맞이한 아이들에게 나의 인기는 대단했단다. 어떤 아이들은 아침부터 오후 늦게까지, 손발이 어는 줄도 모르고 나랑 노느라 부모님께 많이 혼나기도 했어. 아이들이 생일날 받고 싶은 선물 순위에도 내가 들어있었지. 거짓말 아니냐고? 얼음 썰매가 사람들에게 거짓말하는 거 본 적 있니? 그때는 정말 지금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화려했던 나의 시절이었지.
그런데 최근에는 겨울 방학에도 나를 찾는 친구들이 많지 않아. 지구온난화 때문에 얼음이 잘 얼지 않는 것도 이유 중 하나겠지만, 무엇보다 휴대전화 게임이나, 온라인 게임 등 아이들을 유혹하는 놀잇감들이 무척 많아졌다는 게 가장 큰 이유일 거야. 가끔 부모님들이 아이들에게 나를 소개하기도 하는데, 아이들은 한결같이 나를 달가워하지 않는 분위기였어.
"아빠, 요즘 누가 촌스럽게 이런 걸 타요. 괜히 힘만 들고 속도도 느려 터졌는데. 게다가 무릎도 아프다고요!"
사실 옛날이나 지금이나 나는 참 좋은 놀잇감이야. 그런데도 요즘 아이들이 나를 외면하는 까닭은나를 잘 몰라서 그러는 것 같아. 그리고 부모님들도 나를 이용해서 아이들에게 즐거움의 감동을 전하는 방법을 잘 모르는 것 같아. 얘들아, 지금부터 내 얘기를 좀 들어줄래? 내 얘기를 듣고도 내가 좋아지지 않는다면, 나를 외면해도 돼. 왜냐하면 그건 너의 자유 의지가 선택한 거니까.
'썰매'의 원래 이름은 설마(雪馬)이다.
사전에서 찾은 썰매의 어원은 설마(雪馬)이다. 눈 ‘설(雪)’에 말 ‘마(馬)’자. 즉, 눈 위에서 달리는 말이라는 뜻이다. 처음에는 설마(雪馬)라고 불리다가 나중에 '썰매'로 불리게 되었다고 전해진다.
'눈에서 달리는 말'이라니, 참으로 멋진 이름이 아닐 수 없다.
같은 방법으로 눈이 아닌 얼음 위에서 달리는 '얼음썰매'의 뜻을풀이하자면 '얼음 위를 달리는 말'이 되겠다.
요즘 유행하는 아재개그 한마디가 생각난다. '설마설마했는데, 얼음설마(雪馬)?'
원래 썰매는 아이들의 놀잇감이 아니었다. 눈이 많이 내리는 북쪽 지방 사람들이 겨울철에 나무나 무거운 짐을 나르기 위한 운반 수단으로 만든 것이 썰매의 시작이다. 바퀴 대신 스키 모양으로 꺾인 나무를 수레에 달고 소나 말이 끌도록 했던 것이다. 이와 같이 썰매에는 우리 조상들의 삶의 지혜가 녹아 있다.
조선 시대 실학자 이익(李翼)은 자신의 저서 ‘성호사설’에 썰매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기록했다고 한다.
“함경도 지역의 삼수와 갑산에서 겨울에는 썰매를 타고 곰과 호랑이를 찔러 잡았으며, 썰매는 나무로 만들었고 얼음 위를 가는데 매우 빠르다”
철의 사용이 흔하지 않았던 옛날에는 나무로 얼음 썰매의 날을 만들었는데, 요즘에는 철사와 같은 금속 재료로 날을 만든다. 기록에 따르면 일제강점기 때부터 얼음 썰매에 금속 날을 달았다고 전하는데, 금속은 나무보다 얼음과의 마찰이 적기 때문에 더 빠르게 얼음에 미끄러져 달릴 수 있다고 한다.
썰매는 사람의 건강과 두뇌 발달에 도움이 된다.
첫째, 공기가 탁한 겨울철에도 썰매 타기는 신선한 공기를 호흡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썰매를 타기 위해서는 반드시 탁 트인 야외로 나가야 한다. 그런데, 얼음 썰매를 탈 수 있는 강이나 계곡, 넓은 논바닥 등은 바람이 비교적 많이 불고 공기의 순환이 잘 이루어지는 곳이다. 그렇기 때문에 썰매를 타는 사람들은 신선한 공기로 마음껏 숨 쉴 수 있다. 좋은 공기를 마시는 것은 건강의 으뜸 조건이다. 미세먼지로 대기 오염이 심각한 겨울철 대도시를 벗어나 강바람 부는 얼음판으로 떠나야 할 이유이다.
둘째, 얼음썰매를 타면 팔힘과 손힘, 다리 근력, 지구력 등 기초 체력이 길러진다. 썰매에 속도를 내려면 송곳이라는 도구로 얼음을 힘껏 찍어 밀어야 한다. 그래서 약 30분 정도 얼음썰매를 타다 보면 힘이 부치고 몸에 땀이 나며 호흡도 빨라진다. 얼음에서 행하는 바이에슬론이다. 게임으로 대표되는 e-스포츠도 고도의 집중력과 높은 수준의 두뇌 사용이 요구되는 활동이지만 근력과 지구력 등 기초 체력을 키우는 데는 한계가 있다.
셋째, 현대 뇌과학에 의하면 인간 두뇌의 원초적 기능은 신체의 운동을 통제하는 것이었다고 한다. 걷고, 달리고, 던지고, 서고, 눕고, 엎드리고. 때로는 사냥감을 잡기 위해서 또 때로는 천적의 위험으로부터 자신을 숨기기 위해서. 그렇기 때문에 우리 뇌의 감각 지각력, 사회적 상호작용력, 판단력, 기억력 등은 신체 운동을 할 때 가장 활성화 된다고 한다.
학문적으로 위대한 업적을 남긴 사람들은 모두 한 가지 이상의 운동에 몰두 했다. 철학자 칸트는 매일 산책을 즐겼고, 근대 과학의 아버지 뉴턴도 산책과 휴식을 통해 만유인력을 상상했단다. 아인슈타인은 물론 연구 활동을 주로 하는 세계 여러나라의 석학들도 대부분 한 가지 이상의 운동을 즐기고 있다는 조사 결과가 있다.
특히나 근육과 뇌세포가 모두 빠르게 성장하는 어린이들에게는 적절한 운동이 필수적이다. 낮은 기온 탓에 움츠려들기 쉬은 겨울철 얼음썰매 타기는 신체적으로도, 정서적으로도 매우 유용한 활동이다.
얼음썰매 타기를 단순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썰매는 무궁무진 응용이 가능한 놀잇감이다. 지금부터는 얼음썰매를 더 재미있고 신나게 즐기는 활용법을 필자의 경험을 바탕으로 소개한다.
얼음썰매 10배 즐기는 꿀팁!
1. 아이가 처음 얼음썰매를 탈 때는 부모님의 도움이 필요하다. 스스로 송곳질이 익숙해질 때까지 썰매를 끌어 주자. 이때 필요한 게 3m 이상 되는 끈이다. 끈으로 썰매 앞부분을 묶고 아이의 송곳질을 돕자. 끈이 너무 짧으면 아이의 시선을 방해하고, 부모님도 불편하다. 그리고 썰매를 끄는 부모님은 아이젠을 착용하자. 힘이 훨씬 덜 들고 미끄럼으로 인한 부상도 예방할 수 있다.
2. 썰매를 이용하여 다양한 게임을 할 수 있다. 썰매가 2대 이상이면 경찰과 도둑 게임을 하자. 아이가 원하는 역할을 주고 부모와 함께 역할 놀이를 한다. 부모는 적당한 속도 조정으로 아이의 성취감을 높이도록 하자. 기필코 부모가 이기려고 힘을 쓰고 싶다면 '경찰'역에서 그렇게 하자. 썰매를 이용한 놀이는 다음과 같이 응용할 수 있다.
- 도둑과 경찰: 즐겁게 썰매를 즐길 수 있으며 성취에 대한 기쁨과 목표 의식을 키울 수 있다.
- 반환점 돌아오기: 민첩성, 근력, 지구력을 기를 수 있다.
- 썰매를 이용한 컬링(썰매에 자녀를 태우고 밀어서 목표점에 가까이 보내기): 부모와 자녀가 함께 일체감을 얻을 수 있다.
- 회전목마: 줄을 길게 하고, 부모가 중심점에 서서 썰매를 회전시키고 아이는 원심력을 견딘다. 아이의 웃음이 끊이지 않는다. 속도 조절을 통해 아이는 스스로 더 높은 과제로 나아간다.
- 기차 썰매: 2-3대의 썰매를 서로 연결하여 기차 썰매를 만들어 한꺼번에 끈다. 함께 어울려 노는 방법을 깨닫게 하며, 끄는 당번 순서를 스스로 정하여 실천하게 한다면 규칙을 지키는 마음의 힘을 키울 수도 있다.
- 부모님께 효도하기: 아이가 어른 썰매를 끌게 한다. 아이에게 아이젠이 필수이며, 마찰이 적은 얼음에서는 충분히 가능하다. 아이는 즐거움과 스스로에 대하여 존중감을 얻을 수 있다.
- 송곳으로 얼음 구멍 만들기: 위험하지 않은 얕은 개울이라면 송곳으로 얼음 구멍 내기 활동도 해보자. 아이들은 스스로 열심히 참여하며 노동으로 여기지 않는다.
- 기타: 아이들 스스로 자유롭게 얼음썰매를 이용한 활동을 하게 허용하자. 생각보다 아이들은 창의적으로 논다.
"겨울 물가에서 얼음을 만났을 때, 고민하지 말고 얼음썰매를 꺼내자. 그냥 지나치는 것은 지구온난화를 극복하고 예쁘게 얼음을 선사한 고마운 겨울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By 철물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