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겨울왕국, 눈 내린 월정사와 선재길
영하 1도.
1월 중순의 선재길은 의외로 포근했다. 근래에 보기 드문 따듯한 겨울이라 오대천 하류 진부에서 열리는 평창 송어 축제도, 화천 산천어 축제도 아직 시작을 못하고 있다고 했다. 상류 계곡을 끼고 있는 이곳 월정사 기온이 영하 1도 수준이라면 다른 곳의 사정은 더 생각할 필요가 있을까 싶을 정도로 춥지 않은 겨울 월정사를 만났다.
오대산 월정사는 유서 깊은 사찰이다. 대한불교 조계종 제4교구의 본사로 강원도 중남부에 있는 60여 개의 절을 관리하고 있는데, 삼국유사에 따르면 서기 643년(선덕여왕 12) 자장율사가 중국에서 부처님 사리와 대장경 일부를 가지고 돌아와 이 절을 창건했다고 한다. 대웅전 앞마당에 버티고 선 8각 9층 석탑(국보 제48호)은 웅장하지만 다소곳하고, 담백하지만 아기자기한 멋스러운 자태를 자랑하는 고려시대를 대표하는 탑이다.
포근한 날씨에도 오가는 사람이 드물다. 여간해서 즐기기 어려운 월정사의 호젓함이다. 늘 불자들과 관광객, 등산객들로 북적이는 월정사 대웅전 앞마당이 오늘따라 낯설다. 월정사에서 상원사에 이르는 선재길을 사람들은 단풍으로 기억한다. 가을 선재길의 단풍은 수려하고 찬란하다. 낮은 곳에 있으니 친근하기도 하고, 긴 구간에 늘어서 있으니 고맙기도 하다. 그러나 눈 내린 겨울의 월정사와 전나무길, 선재길은 가을 못지않다. 하얗게 내려앉은 눈꽃이 버거운지 전나무 가지들이 부드럽게 허리를 구부린다. 흰 눈과 푸른 전나무 잎들이 절묘하게 동거하는 겨울 월정사 숲길은 한국의 겨울왕국이다.
오래된 그루터기에서 생각의 타래를 풀다
왕복 18km의 선재길 걷기를 시작했다. 찬기운을 머금은 겨울바람에 발걸음도 시원하다. 하늘과 땅에 번갈아 시선을 주며 2Km 정도 걸었을까? 갑자기 길 한가운데를 떡하니 버티고 있는 메마른 나무 그루터기를 만났다. 잘려나간 지는 꽤 오래된 듯, 윗부분이 검은색으로 바랬고 둘레는 이쪽저쪽을 가릴 것 없이 오래된 각질처럼 부서져 내리고 있었다.
선재길에서 만난 오래된 그루터기 굵기로 보면 꽤 오랫동안 살았을 나무는 애초에 자리를 잘못 잡아 불운을 맞은 듯했다. 먼 옛날 그저 하루에 몇 번, 월정사와 상원사를 오가는 스님들에게만 자신을 허락했던 선재길에 이렇게 많은 사람이 찾아올 줄 그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 어느 날 갑자기 '아낌없이 주는 나무'가 되어버린 나무의 생이 가엽고 고맙다.
사람의 짓궂음은 어디까지일까?
'한번 밟고 지나갈까?'
갑자기 그루터기를 밟고 지나가고 싶다는 뜬금없는 생각에 사로잡혔다. 굴곡 없는 길을 너무 편하게 걸어온 때문일까? 옆으로 살짝 빗겨 걸으면 나무도 나도 불편함 없이 지날 길에서 불필요한 딴지를 걸어 본다.
생각해 보면 우리 삶도 비슷한 듯하다. '일상으로부터의 탈출'이라는 그럴듯한 포장지 뒤에 숨어 어쩌면 우리는 수많은 딴지 걸기로 각자의 삶을 자극하고 있는 건 아닐까? 부유한 사람들의 맹수 사냥에서부터 소시민의 멀쩡한 그루터기 밟기까지, 상대방에 대한 딴지 걸기라는 점에서는 서로 다르지 않다.
똥은 정말 더러워서 피하는 걸까?
그루터기 가장자리의 허물어짐을 보며 나는 그루터기 밟기를 포기했다. 대상이 사물이든 사람이든 잔바람에도 제 몸 간수 못하는 연약한 것들에는 분별없는 몸보다 따듯한 마음이 앞선다. 그렇게 무심한 순간에 엉뚱한 생각이 또 나를 불러 세운다. 오늘은 정말 생각이 많은 날이다.
'똥은 정말 더러워서 피하는 걸까?'
'온통 길바닥이 똥으로 뒤덮여 피할 곳이 없었다면 나는 어떻게 했을까?'
저 그루터기가 똥이었다면 나는 애초에 밟을 생각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뛰어넘었거나, 멀찍이 곁을 스쳐서 도망치듯이 최대한 재빠르게 그 자리를 피했을 것이다. 왜냐하면 더러우니까. 여기까지라면 평소 진리라고 생각했던 관념과 내 행동은 일치한다. 그런데 온통 길바닥이 똥으로 뒤덮여 다른 곳으로 피할 수 없었다면 나는 어떻게 했을까? 여기에까지 생각이 이르자, 생각의 생각이 꼬리를 물었다.
사람은 누구나 거친 돌투성이 길보다 폭신폭신 낙엽으로 뒤덮인 보드라운 길을 걷고 싶을 것이다. 어느 누가 걸림돌 없이 편안한 길을 마다하고 돌투성이 거친 길을 가고자 하겠는가. 그러나 길을 걸어 본 사람은 누구나 안다. 길 자체가 돌이고, 돌이 곧 길인 곳이 있다는 것을. 돌투성이 길을 걸어야 할 때가 있다는 것을 말이다.
다듬어지지 않은 자연 속에서 우리는 돌길을 만난다. '꽃길만 걸어요'라는 제목의 드라마가 있단다. 하지만, 우리 인생에 항상 꽃길만 있는 것은 아니다. 지금은 많이 다듬어졌지만, 내가 대학에 다니던 시절만 해도 지리산 일주 등산로는 거친 돌길 구간이 많았다. 돌길 구간을 만나면 피할 수 없다. 그저 담담하게 밟고 가는 수밖에. 비가 오는 날에는 흙물 튀기며 신발을 적시는 흙길 구간보다 돌길 구간이 차라리 낫다는 친구들도 많았다. 길이 없으니 돌길도 고마운 시절이었다.
흙길과 돌길이 나란하다면 나는 흙길을 걷겠다. 돌길과 똥으로 뒤덮인 길이 나란하다면 나는 돌길을 택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걷는 길에 항상 옵션이 있는 것은 아니다. 달리 선택할 옵션이 없다면 나는 어떤 길이든 그 길을 갈 것이다. 나뿐만 아니라 누구나 그렇게 하겠지만. 흙길을 만나면 흙길을 걷고, 돌길을 만나면 돌길을 걷고, 똥으로 가득한 길을 만나면 또한 그 길을 걸을 것이다. 다른 피할 곳이 없다. 달리 피할 작은 공간이 허락되지 않는다면, 낭떠러지가 아님에 감사하며 그 길로 과감하게 한 걸음 내딛을 것이다.
똥은 더러워서 피하는 게 아니다.
똥은 더러워서 피하는 게 아니다. 굳이 밟지 않더라도 피해 돌아갈 길이 있기에 우리는 똥을 피할 수 있는 것이다. 생명의 외나무다리에 똥이 가득하다면 우리는 서슴없이 밟고 나아가야 한다. 다른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인생을 살다 보면 내가 피하고픈 무엇인가를 어쩔 수 없이 만나야 하는 순간이 있다. 삶의 외나무다리다. 그 앞에서 우리에게 필요한 건 작은 용기다. 생각을 바꿀 용기, 한 발 내딛을 바로 그 용기만이 필요해진다.
나는 오늘 그루터기를 밟지 않았다.
밟지 않고도 둘러갈 작은 틈만 있다면, 나는 앞으로도 그루터기를 밟지 않기로 했다. - By 철물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