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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철물점 Mar 18. 2020

하늘색을 닮은 바람소리

겨울 선재길에서 7화(거제수나무 쉼터에서는 귀를 열고 하늘을 보자)

욕심은 눈을 멀게 하고


1행: 五色令人目盲(다섯 색깔은 사람의 눈을 멀게 하고)

노자의 도덕경 12장 1행은 '다섯 색깔은 사람의 눈을 멀게 하고'라는 문장으로 시작한다. 이 문장만을 놓고 보면 노자가 전하려고 하는 뜻이 무엇인지 도무지 짐작이 가지 않는다. 다섯 가지 색깔이 무엇인지도 구체적으로 지목하지도 않았을 뿐만 아니라 사람의 눈을 멀게 한다는 의미가 무엇인지도 알기 어렵다. 마지막 6행을 읽기 전까지는 말이다.


이 세상은 화려한 색깔로 가득하다. 꽃과 나무, 식물과 동물, 하늘과 바다를 포함하여 어느 것 하나라도 저마다의 색으로 치장하지 않은 게 없다. 색은 만물의 존재 방식이다. 사람은 또 어떤가? 예쁘고 화려한 옷감을 탐하고 두드러지게 아름다운 색깔의 꽃을 좋아한다. 어디 그뿐인가? 그 화려함에 대한 욕구는 마침내 자신의 겉모습을 화려하게 치장하는 노력으로 이어져, 언제부터인가 우리는 외모를 꾸미는데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인다.


자연에 존재하는 것을 그저 바라보는 마음이라면 화려한 색은 오로지 즐거움의 원천이다. 가끔은 고민과 걱정을 잊게 하고, 생명의 놀라움에 경외감을 느끼게 한다. 눈이 깨끗해지고 마음이 정화된다. 자연이 주는 위로이자 사람과 자연의 끈끈한 연대이다.


그러나 사람의 욕구는 거기서 멈추지 않는다. 그 꽃을 그냥 두고 볼 아량은 애초에 없었다는 듯 화려함을 탐한다. '꽃은 꺾어야 제맛'이라는 말은 인간의 내면에 자리  탐욕의 면모를 유감없이 드러낸다. 언어는 생각을 드러내고 생각은 언어를 통해 제 모습을 나타낸다.


아름다운 것에 대한 욕망은 사람의 눈을 멀게 한다. 아름다운 꽃도 내 것이 아니면 아름답지 않다. 화려한 옷도 내 옷이 아니면 시기의 대상일 뿐이다. 예쁜 것을 예쁘게 보지 못하고 아름다운 것을 아름답게 보지 못한다. 눈이 먼 것이다. 욕심이 눈을 멀게 한 것이다.


음악은 귀를 멀게 하고


2행: 五音令人耳聾(다섯 소리는 사람의 귀를 멀게 하고)

도덕경 12장 2행은 '다섯 소리는 사람의 귀를 멀게 하고'라는 문장으로 시작된다. 1행의 뜻을 이해한 독자라면 2행의 내용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자연스레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세상은 온갖 소리로 가득하다. 높은 소리, 낮은 소리, 목소리, 울음소리, 웃음소리......


여러 소리가 어울리면 화음을 이루고 아름다운 화음은 사람을 유혹한다. 호메로스의 서사에서 오디세이를 유혹하는 사이렌의 이야기는 아름다운 소리에 인간이 얼마나 나약할 수 있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다양한 종류의 음악과 노래가 없는 세상을 상상하기란 결코 쉽지 않다. 거리를 지나는 사람들의 귀에 꽂힌 이어폰을 우리는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이렇게 오늘날 우리는 다양한 음악과 가수의 노래에 우리의 정신과 마음을 빼앗긴다.


노자는 자연 그대로의 것을 중히 여기는 사상가이다. 2행의 내용은 인위적으로 합성된 소리에 마음을 빼앗기는 사람들을 경계하려는 노자의 생각을 담고 있다. 화려한 색깔에 대한 탐욕이 사람의 눈을 멀게 하듯, 음악과 풍류에 대한 탐닉이 사람의 귀를 멀게 한다는 생각을 2행에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매월 실시되는 민방위 훈련에서 우리는 사이렌 소리를 듣는다. 인간을 유혹해 죽음에 이르게 하려던 아름다운 목소리의 주인공 사이렌. 그 요정의 이름이 경각심을 일깨우는 사이렌(siren)의 원이 되었다는 것은 의미 심장하다. 귀를 유혹하는 아름다운 소리에도 우리는 항상 경계의 마음을 지녀야 한다는 것을 노자는 그렇게 일깨우고 있다.


하늘색을 닮은 바람소리


선재길 거제수나무 쉼터에서 만난 자연의 빛과 소리에 마음이 열렸다.

눈과 귀를 자극하는 인위적인 노래와 음악, 그리고 멋진 가수들의 화려한 군무에서 잠시 눈을 돌려 자연의 소리와 움직임에 우리의 눈과 귀를 맡겨 보는 것은 어떨까. 억지로 꾸미지 않은 자연 그대로의 새소리, 바람소리, 물소리의 담백함과 생긴 그대로의 산과 들과 나무와 숲과 하늘의 모습에 우리의 눈과 귀를 맡겨 보자.

거제수 쉼터 의자에 누워 바라본 하늘

월정사를 지나 상원사로 향하는 길목에는 언제나 나를 반갑게 맞이하는 소박한 쉼터가 있다. 얕은 산자락에 계곡을 앞에 두고 자작나무처럼 하얀 피부를 가진 거제수나무를 벗 삼은 작은 테이블 2개와 의자 4개. 소박하지만 아름다운 거제수나무 쉼터.

거제수나무 쉼터 안내 표지판

 거제수나무 쉼터에 들르면 쉼터 의자에 등을 기대고 누워 하늘을 보자. 누군가 다른 동행이 있다면 같이 누워 하늘에 눈을 맞추고 자연의 소리에 귀를 열자. 잔잔한 바람에 일렁거리는 거제수나무의 흔들림을 바라보자. 파란 하늘이라면 더욱 좋고, 구름 낀 하늘이라도 나쁘지 않다. 바람소리, 나뭇가지 부딪는 소리, 물소리가 어우러진다. 거제수나무가 가늘고 하얀 손가락을 하늘로 뻗쳐 알 수 없는 글자로 내게 말을 걸어온다. 그 사이로 흰 구름이 흐르고 여행 떠나는 비행기도 하얀 무늬를 수놓으며 머물다 간다. 시간이 흐르는지, 바람이 흐르는지, 구름이 흐르는지 도무지 알기 어려운 순간이 오면 모든 걸 잊고 눈과 귀가 보고 듣는 것에만 마음을 맡기자.

 그리고 노자의 마지막 문구를 떠올려 보자.


去彼取此 거피취차!! 저것을 버리고 이것을 취한다.


나는 거제수나무 쉼터에 올 때마다 이상과 도덕과 관습에 얽매인 불안과 근심의 마음을 버리고, 지금 이 순간의 하늘색과 바람소리를 마음에 담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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