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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맹수봉 Jan 30. 2023

외성적 내향인과 우울증으로 구성된 엄마의 육아생존기 1

우울증 치료 305 / 나를 알아가기.


몇 년 전부터 MBIT가 굉장히 유행하기 시작했다. 유행에는 또 발맞춰 나가줘야하니 재미로 한번 해보기는 했었으나 다양한 사람들의 성격을 구분 지어 한 묶음씩 묶어둔다는 게 별로 내키지가 않았다.  게다가 나는 내향인으로 나왔는데 친구들은 내가 외향인 같다고 하니 괜스레 신빙성이 없는 것 같아 그 뒤로는 기억에서 지우고 살았다. 다시 생각해 보니 나에 대한 평가를 ‘내‘가 인식한 나보다 ‘타인’이 인식한 나를 더 우위로 두고 ’ 나는 외향적인데 왜 내향적이라고 나왔지?‘ 하는 의문을 가졌던 것 같다. 왜 타인의 시선에 더 신경을 썼던 걸까.


우울증에 걸리고 나서 모든 시공간이 멈춘 것 같은 날들을 보내다가 정신과 감정이 조금씩 돌아올 무렵 우울증은 내게 나를 돌아볼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 주었다. 잠깐 멈춤의 의미에서 나쁘지 않았던 것 같지만.. 아니다. 우울증은 나빴다. 많이 나빴지.


찬찬히 돌아본 나는 삼십 년 넘게 나를 오해하고 살아왔었다. 오해가 쌓이고 쌓여 내가 생각한 나는 이상스럽고 사회에 부적응한 인간이 되어버렸다. 다른 사람들은 누군가를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함께 무언가를 함으로써 더 즐거워하는 것 같은데 , 그런 모임들이 버겁게 느껴졌고 술자리라도 한번 다녀오기라도 하면 집에 와서 파김치가 되어 몇 시간은 누워있었다. 넋이 나가서 다른 것들을 해낼 수가 없었다. 근데 또 막상 사람들을 만나면 깨방정 떨면서 잘 놀기는 한다. 좋아하는 주제가 나올 때면 쉬지 않고 떠들고 타인의 이야기들에 리액션도 나쁘지 않아서 유쾌한 모임을 이어갔다. 아이러니한 날들이 반복되다 보니 점차 사람들의 모임을 기피하게 되었고 스스로를 점차 작은 방에 가두기 시작했다.


최근에 친구가 MBIT를 묻길래 다시 해봤는데 여전히 나는 ‘내향인’이 나왔다. 친구들도 변함없이 여전히 놀라워했다. ”뭐? 네가 내향인이라고? 말도 안 돼 ㅋㅋㅋ“라며.


내 정체는 뭘까. 역시 우울증에 걸려서 성격이 이상한 걸까? 의문은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우선 ‘내성 - 외성’의 개념은 타고나기를 사람들과 어울리는 게 어렵고 쉬운 정도를 뜻합니다.

반면 ‘내향 -외향’은 본인의 관심사가 내면(내 안의 세계)과 외부(실제 세계) 중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에 대한 개념에 가깝죠.

여기서 주목할 점은 ‘내성 – 외성’, ‘내향 – 외향’을 조합하면 총 네 가지 유형(외성 + 외향, 외성 + 내향, 내성 + 외향, 내성 + 내향)이 나오는데, 이를 살펴보면 기존의 ‘내향 – 외향’ 구분만으로는 설명이 부족했던 부분들을 조금 더 정밀하게 이해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다소 특이한 경우가 바로 ‘외성 + 내향’의 조합인데, 이들은 사람들과 잘 어울리면서도 동시에 자신의 내면세계를 능숙하게 탐험할 줄 아는 일종의 하이브리드 성향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중략)
하이브리드는 굉장히 적응을 잘하는 유형이지만, 오해를 많이 산다는 단점이 있어요.

어떤 오해냐면요.
‘쟤 뭐야? 친한 척은 잔뜩 하더니, 연락은 절대 먼저 안 하네.’

하이브리드는 사회성이 좋기 때문에 그래야 하는 자리에서는 리더 역할도 곧잘 하고, 주변으로부터 재밌고 친절하고 센스 있는 사람이라는 평가를 자주 들어요. 하지만 타고난 내향형이기에 그럴 필요가 없을 때는 대부분 집콕족이 되죠.

그리고 내향인의 특성상 혼자만의 시간을 방해받는 것을 꺼리기 때문에 연락도 잘 안되기 마련인데, 바로 이런 부분으로 인해 주변 외향인에게 오해를 사게 됩니다. 재밌는 사실은 하이브리드는 내향형이므로 다른 사람들에게 별반 관심이 없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주위에서 나에 대해 무슨 말들이 오가는지 모르고 있다가 나중에야 나의 평판에 대해 우연히 알게 되고는 합니다.

이런 일들이 반복되면서 하이브리드는 인간사 세상만사에 염증을 느끼게 되고, 결국 마음의 문을 닫은 채 자발적 아싸가 되는 경우도 종종 생기죠.
<내향인을 위한 심리학 수업> 중에서


찾았다! 역시 책에는 없는 게 없네. 나 내향인이 맞구나. 다만 좀 특이한 조합인 외성적 내향인이 바로 나구나.  성격이 이상한 게 아니고 그저 이런 성격인 것뿐이구나. 나는 진짜 세상멋진 하이브리드형 인간이었구나. 멋진 내 자신.


<내향인을 위한 심리학 수업> 책을 계속 읽어가면서 너무 내 이야기 같은 게 많아서 복채를 주고 싶을 정도였다. 소름이 너무 돋아서 닭이 되어버린 것 같다고 하면 심각한 과장이려나.


 내향과 외향은 에너지의 충·방전 방식이 정반대이기 때문에 자신이 어느 쪽에 해당하는지를 정확히 알고 있는 것이 매우 중요해요.

내향인들은 사람들과 어울릴 때 에너지가 방전되며 혼자 있는 시간을 통해 에너지를 충전합니다.

반면 외향인들은 사람들과 어울리면서 에너지를 충전하고, 어울릴 사람이 아무도 없을 때 에너지가 방전되는 시스템이죠.

<내향인을 위한 심리학 수업> 중에서


복채 얼마드리면 될까요 선생님?

사람들을 만나는 게 버거운 게 아니라 배터리충전을 제대로 하지 않다 보니 방전이 금세 되어버리는 거였구나. 게다가 충전방식도 잘못선택을 해서 종종 두꺼비집이 내려가버리는 번아웃 시기가 찾아 왔었나 보다.


어린아이들은 에너지 레벨이 높기 때문에 버겁다는 생각을 종종 했었다. 기가 빨린다고 해야 하나. 배터리가 초고속으로 방전이 되는 느낌. 반대로 나의 남편께서는 아이들이랑 많이 뛰어놀던 직업을 소유하고 있었는데(과거) 아이들에게 되려 기를 받아와서 젊음을 유지하는 비결이라고 했었다. 몇 번 그를 도와주러 사업장에 방문을 했을 때, 그는 힘차게 물살을 거슬러 올라가는 연어같이 퍼덕거렸고 , 나는 점점 썩은 동태눈이 되어갔다.


그렇다면 내향인엄마는 어떻게 육아를 이어가면 좋을까? 아이들의 높은 에너지를 어떻게 감당해내야할까. 고민에 대한 답은 쉽사리 나오지 않았다. 예전에 봤던 <내향육아> 책을 다시 펼쳐봤지만 공감은 많이 되었지만 이렇다 할 답을 얻지는 못했다. 그녀에겐 아이가 하나였고 나에겐 둘이기 때문에.


다시 책에게 물었다.

그러자 책이 답해주었다.


혼자만의 시간과 공간을 보장해야 한다고 했다. 잠을 자듯, 내향인은 혼자 있는 시간이 꼭 필요하다고 했다. “회복틈새”를 지니라고 한다.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온전히 내 모습 그대로인 채 쉴 수 있는 그런 공간이 필요하다고 했다.


현실적으로 24평 아파트에서 네 명이서 살 부대끼고 살아가면서 저런 공간을 누릴 수 있기는 있을까? 하는 물음엔 0.1초도 망설임 없이 “NO”를 답할 수 있다.  


다른 사람들과 시끌벅적 상호작용하며 즐거움을 느끼는 외향인과는 달리, 나만의 세계에서 홀로 잔잔한 평화로움을 즐기는 내향인으로서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일들인 사회생활이 어렵고 껄끄럽게 느껴질 수 있죠.
(중략)
무엇보다도 혼자만의 시간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내향인에게 끊임없이 이어지는 각종 자극과 사람들 속에서 부대끼는 시간은 내면의 에너지를 방전시키고 번아웃을 선사합니다. - <내향인을 위한 심리학 수업> 중에서


일요일 어느 날, 남편이 출근을 하고 7세의 우리 집 큰 친구와 4세의 작은 친구 셋이서 하루를 온전히 보내야 했다. 날이 따듯하고 아이들 컨디션도 좋고 하면 도서관도 가고 놀이터도 가고 할 수 있는 일이 무궁무진 하지만 한파가 들이닥쳤고 아이들은 콧물을 연신 흘리고 있었다. 이제 막 생리를 시작한 나 또한 상태가 썩 좋지는 않았다. 아무리 우울증 약이 약발을 잘 받는다고 해도 호르몬대자연 기간을 전부 다 거스를 수는 없었다. 사랑이 넘치는 우리 아이들은 엄마랑 같이 하고 싶은 게 어찌나 많으신지 몸이 열개정도는 되어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드는 오전이었다. 모든게 자극으로 느껴졌다.


심호흡을 한번 하고 우리집 큰 친구에게 물었다.


“엄마 지금부터 책을 읽고 싶은데 얼마나 읽어도 될까?”


큰 친구 : “음… 44분까지?”


나: “그럼 와서 타이머를 돌려줄래?”


큰 친구 : “좋아 , 엄마 이만큼 읽도록 해!”


더러운 집은 못본척해주시길 ㅋㅋ.


선심을 쓰듯 60분을 돌려놓고 간 나의 큰 친구. 작은 친구는 엄마 곁에도 있다가 오빠 곁에도 있다가 오며 가며 놀아주었고 , 큰 친구는 혼자서 역할 놀이를 하며 시간을 보내주었다. 아이들의 이야기소리를 배경음악 삼아 아무 생각 없이 책을 읽어나가니 머릿속이 정돈되어 가는 것 같았다. 조금씩 숨이 쉬어지고 아이들에게 저녁밥을 해먹이고 씻겨서 재울 수 있는 정신력이 생기는 것 같았다.


10분쯤이 흘렀을 까 , 우리 집 큰 친구께서 볼멘소리를 낸다.


“엄마, 내가 책 읽을 시간 많이 주었는데 왜 감사해!라고 말 안 해?”


“응..? 어..? 응 그래 감사해 ㅎㅎㅎ”


60분을 다 채우고 싶었지만 중간에 30분으로 시간을 줄여놓고는 알차게 혼자만의 시간을 채워나갔다. 아직도 내향인 엄마로의 육아는 벅찬 날이 많지만 그럼에도 ‘나’를 알아가는 날들 덕분에 이제는 아이들과 어떻게 시간을 보내야 하는지 조금씩 알아가고 있다. 아이들과의 일과 속에 “나만의 회복틈새”를 잘 섞어 본다. 더 늦기 전에 알게 되어 참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이것도 다 우울증 덕에 나를 돌아보며 생긴 변화이니 ,

우울증에게 고맙다고 큰절이라도 해야 하나..



 아이들도 커가고 , 나도 커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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