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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맹수봉 Mar 01. 2023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는 게 내적트라우마라니?

우울증 치료 338일



우리 집 큰 친구의 어린이집에 트러블이 생긴 지 몇 주가 흘렀다. 수료식까지 얼마 남지 않은 시점이었기 때문에 , 처음 시작한 어린이집 생활을 잘 마무리해주고 싶어서 수료식까지는 다니기로 남편과 합의를 본 상태였다. 그 이후의 거취는 아직 결정이 나지 않았기 때문에 근처 어린이집들에 전화를 돌리던 중이었다. 몇 번의 연락을 거듭한 끝에 집 근처에 눈여겨봐두었던 어린이집에 입소를 할 수 있게 되었다. 4세 때 입소를 하게 되면 큰 이변이 없는 이상은 7세까지는 ‘아이들’ 원해서 다닌다는 그런 마성의 어린이집을 갈 수 있게 되었다.


입학 전 상담을 위해서 온 가족이 다 함께 어린이집을 방문하였다. 우리 집 작은 친구를 유심히 보던 원장선생님은 이 아이는 어린이집을 보낼 생각이 없으신지 물으셨다. 저번에 유선상으로 상담을 받을 때는 4세 반은 대기를 걸어놓더라도 어려울 수 있다고 하셨는데 , 직접 아이들을 데리고 함께 상담을 오니 마침 4세 반에 자리가 된다고 하셨다. 우리 쪽에서야 너무나 반가운 제안이기는 했다. 숲어린이집이었고 멀리 나가지 않아도 대지가 넓어서 실컷 숲을 뛰어놀 수 있는 곳이었다. 봄이면 함께 텃밭에 씨앗을 뿌리고 여름이면 물놀이를 계속할 수 있으며 토마토와 상추등을 직접 따먹을 수 있다. 가을이 되면 물들어가는 동산을 누빌 수 있으며 눈이 펄펄 내리는 겨울이 되면 뒷마당에서 눈썰매를 탈 수 있는 곳이다.


고민을 할 이유가 크게 없었다.


우리 집 작은 친구가 쫄쫄쫄 거리며 여기저기 누비고 노는 것을 보시더나 분명 아이도 즐겁게 놀 수 있을 것 같다고 , 염려가 되시면 여름정도까지는 점심까지만 먹고 낮잠은 집에서 재우시는 것도 방법이라고 작은 팁을 주셨다.


흠, 그럼 그래볼까.


미지근한 반응을 보이던 남편이 나의 변한 눈빛을 알아차린 건지 (?) 아이를 보내는 게 좋겠다며 굳은 의지를 보였다. 그렇게 해서 당장 3월 2일 새 학기가 시작하는 날부터 우리 두 아이들이 함께 등원하기로 이야기를 마쳤다.


아이가 한참 엄마를 좋아하고 따라다니는 개월 수인데 , 엄마가 집에 있으면서 구우우우우우지 아이가 울고 불고 하는데 어린이집을 보내야 하는가 싶은 의문이 일렁였다. 어떤 것이 아이에게 더 나은 선택인지를 모르겠어 골이 아파왔다.


원장선생님이 그런 내 생각을 아신건지 빙그레 웃으시면서 이야기를 건네셨다.


“아이들은 학기초에 울고불고하면서 며칠 동안 난리가 나요. 세상이 끝나는 줄 알죠. 그러나 그걸 받아들이고 나면 아이들에게는 새로운 세상이 열리는 거예요”


그런가. 하하

모르겠다.


육퇴를 하고 고요한 식탁에 앉아 머리를 쥐어뜯고 있었다.

남편이 살그머니 다가와서 우울증 치료를 위한 연장선이라고 생각하라고 했다. 둘 다 어린이집을 보내고 잠시 쉬어가자고.


난 어렸을 때 할머니손에 컸다. 외할머니는 따듯하셨고 삼촌과 이모는 어린 조카들과 잘 놀아주셨다. 초등학교 고학년 때는 친할머니 친할아버지와 살았는데 정 붙이기 힘들 정도로 매서웠던 것으로 기억된다. 이런 거 저런 걸 떠나서 시골에서의 일상은 늘 바쁘게 돌아갔다. 집의 어른들은 밭일도 하셔야 하고 살림도 하셔야 했다. 그 틈바구니에서 나와 동생은 커갔다.  집에 들어갔을 때 반겨주는 엄마가 있는 아이들이 늘 부러웠다. 쉬는 날이면 가족들과 함께 어딘가를 가는 아이들이 부러웠다.


어디서부터 인지의 왜곡이 시작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 아이들과 함께 있어주어야만 아이들의 정서가 안정될 것이라는 생각이 뿌리 박혀버렸다. 나와 동생의 정서가 흔들리는 까닭은 어쩌면 너무 바빴던 부모님으로 인해 안정되지 않은 정서 때문에 아닐까? 하는 의심의 씨앗이 싹이 튼 것 같다. (우울증이 합리화되고 그래야 내가 살아갈 수 있을 것 같아서  부모님과 환경 탓.. 그러니까 남 탓을 많이 하고 있다는 사실을 최근에 깨달았다.)


그렇기 때문에 4세가 된 26개월의 우리 집 작은 친구를 어린이집에 보낸다는 것은 아이의 정서에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 같아 내가 미칠 지경이었다.


나: 오빠, 혹시 우리 작은 친구를 어린이집에 일찍 보내서 정서안정에 안 좋은 영향을 미치면 어쩌지?


남편 : 음, 우리 집 애들은 다 괜찮아. 일단 너의 정서안정을 먼저 생각해 보는 건 어때?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진짜 웃음 밖에 안 나오는 현답이었다 ㅋㅋㅋㅋㅋ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러게 우리 집에서 정서안정이 가장 안돼서 약 먹고 있는 사람은 나구나. 나야. 그렇구나.

오랫동안 아이들을 가르치는 직업을 가지고 있었던 남편이었기 때문에 , 아이들의 성향이나 발달에 대해서는 남편의 의견을 더 존중을 하는 편이다. 그런 남편이 우리 아이들은 이미 잘 해내고 있고 잘 해낼 것이라는 이야기를 건네자 이제 남은 건 내가 나를 넘어서야 하는 시기임을 깨달았다.


두통이 심해졌다. 최근 들어서 스트레스성 두통이 좀 있는 편이었는데 아이들 어린이집고민덕에 겹겹으로 두통이 쌓여갔다. 잠도 오지 않고 심지어 아무것도 할 수 없어서 <일타스캔들> 드라마를 보기 시작했다.


내가 마주한 장면은 , 엄마에게 버려져서 ‘이모’를 엄마라고 부르며 살아가던 극 중 남해이는 중학교 때 그 사실을 친한 친구에게만 털어놨으나 반전체에 소문이 났고 그 친구마저 등을 돌리는 일이 있었다. 상처를 많이 받은 남해이.

그리고는 고등학생이 된 지금 엄마라고 부르고 따르는 ‘이모’의 삶을 위해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여 다시금 이모가 친모가 아니며 이모는 결혼을 한 적이 없다며 많은 사람들이 보는 방송을 통해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다음 날 학교를 가던 아침이었다. 극 중 남해이의 이모로 나오는 남행선은 아이가 또 과거와 같은 상처를 받을까 싶어 걱정스럽게 안아주자 남해이는 씩씩하게 말을 이어갔다.


“이모, 내가 읽은 책에서 그랬는데
개인이 가진 내적 트라우마는
마흔 살이 되기 전에 극복해야 한대.
그래야 성숙한 인간이래”     


그리곤 그녀는 주먹을 불끈 쥐고 학교로 걸어 들어갔다.


그래 , 나도 이제 성숙해야지. 극복해야지.


나의 아이들이 나처럼 죽음을 생각하고 우울증에 버무려질까 두려움이 상당한 편이었던 것 같다. 나의 아이들이 훗날 우울증에 걸렸다는 상상만 해도 미쳐버릴 것 같다. 나의 과거와 비슷한 경험들을 하게 된다면 나의 아이들이 높은 확률로 우울증까지 이어지지는 않을까 염려에 염려가 거듭되었던 것 같다. 나와 아이들은 다르다. 다른 개체이고 다른 삶을 살아갈 것임을 인정해야 하는 시기가 지금에야 찾아온 것 같다.




사랑하는 나의 아가들아 ,


엄마는 너희들의 마음의 체력을 위해 너희들의 유년기에 최선을 다했고 앞으로도 그럴 예정이란다. 그러니 사랑하는 나의 아이들아 이제는 너희 몫이란다. 살아가면서 수많은 폭풍이 몰아칠 수 있지만 엄마랑, 아빠는 언제나 너희 곁에 있을 것이며 너희 편이 될 거야. 실수하고 실패할 수 있지 , 그러나 엄마처럼 늘 도망은 가지 않았으면 해. 엄마는 너무 오랜 세월 동안 ‘도망’ 치는 것을 방어기제로 삼아서 어려운 순간들마다 도망을 쳤어. 마주할 용기가 없었거든. 실패를 하면 아무도 엄마를 사랑해주지 않을 거란 생각을 가지고 있던 것 같아. 도망만치다 보면 괜찮을 줄 알았는데 그게 마음이 쌓이고 쌓여서 우울증을 낳은 것 같아.


사랑하는 나의 아가들아 , 엄마가 폭풍을 대신 맞아줄 수는 없어. 그러나 너의 젖은 몸을 말려줄 수 있고 , 감기에 걸리면 보살펴줄 수 있어. 네가 필요하다면 함께 손잡고 그 폭풍을 맞아줄 수 있단다. 그 폭풍을 내가 없애줄 수는 없어.


그러니 이제는 너희가 세상으로 나아갈 시간이구나.  


엄마는 엄마의 자리에서 늘 두 팔 벌리고 서있을게.

그러니 잘 다녀오렴.


(뭐, 잠깐 어린이집가는게 이렇게 비장한 일이가 싶지만서도 내겐 정말 큰결정이었다는걸 알아주셨음... ㅋㅋㅋㅋㅋㅋㅋ 적으면서도 괜히 창피하네 ㅋㅋ)




마흔 살이 되기 전에

내적 트라우마를 ‘극복’해보려고 노력을 시도했으니

이제 나도 성숙한 인간으로 한걸음 내디딘 걸까.


나에게도 , 아이에게도

새로운 세상이 열리는 시기인가 보다.


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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