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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맹수봉 May 03. 2023

육아의 단맛이 올라올 때, 양파처트니

식사수발일기


인스타그램을 구경하고 있었는데 , 양파처트니 이야기가 올라왔다.

가만있어보자 , 내가 양파처트니를 언제 만들었더라..

블로그의 기록을 찾아보니 2017년에 한 바가지를 만들었네. 오랜만에 그 뭉근한 단맛이 생각이 나서 아이들을 재워둔 야심한 시각에 칼과 도마 그리고 양파를 꺼내 들었다.



레시피는 정말 별게 없다.


준비물 

양파, 발사믹, 올리브유, 소금 혹은 간장, 인내심, 팔근육


1. 굴러다니던 양파 2-3개 썰어준다.

2. 눈이 매워질 무렵 눈물을 한번 훔친다.

3. 올리브유를 두른 커다란 프라이팬에 중 약불로 볶아준다.

4. 투명해지고 단내가 날 때즈음  

간장 1/2 아빠숟가락 (혹은 소금 솔솔솔)

발사믹 2-3 아빠숟가락을 넣고 열심히 볶는다.

(우리 집엔 발사믹이 없어서 발사믹과 비슷한 한살림 사과농축식초를 넣고 만들었다)

5. 팔이 빠질 것 같아도 포기하지 않고 계속 볶는다.

6. 와 이렇게 볶아야 함? 할 정도로 볶는다.

7. 한 20-30분 정도 지나서 양파가 제모양을 잃고 흐물거릴 즈음 맛을 본다. 미친 맛이 당신을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양파를 썰땐 눈물 나게 매웠고

양파를 볶을 땐 팔이 빠질 것 같아 욕지거리가 나올 정도로 매운맛이었는데  , 막상 들큰하게 볶아진 양파를 보고 있자니 침이 고여서 그냥 잠들 수가 없었다. 빵 한 조각을 굽고 아이들이 저녁으로 먹다 남긴 달걀 샐러드를 올리고는 비주얼만 보면 탔을 것 같은 양파를 올린다.



기가 막힌다. 기가 막혀.

바삭한 빵뒤로 고소한 달걀과 뭉근한 단맛의 양파가 밀고 들어온다. 아까 그 맵디 매운 양파는 온데간데없이 달달함만이 남았다.


갑작스레 아이들이 떠올랐다.  최근 들어 육아가 너무 매웠던 참이었다. 맵찔이에겐 육아가 너무 매운 날들.

코로나가 끝나자 지긋지긋한 감기가 끝날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코감기 , 목감기 , 열감기 , 장염 동반 감기. 미친다 진짜. 거기에 몰래 딱밤을 때리고 싶을 때도 있고 , 소리를 지르고 싶을 때도 너무나 많다. 아이들은 말 잘 듣는 강아지나 버튼을 누르면 바로 실시하는 기계가 아니기 때문에 충분한 시간을 주기도 해야 하고 이해를 시켜야 하는 순간들도 있는데 그게 잘 안된다. 아이들을 그 존재 자체로 받아들여야 하는 순간들도 있는데 역시나 그게 잘 안된다.


아이들이니까 그렇지. 그래 그렇지. 라며 올라오는 답답함을 견뎌내야 하는 시간들을 마주할 때마다 눈이 절로 감긴다.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현실도피랄까. 긴 심호흡을 하고 ‘나는 아이들의 친구가 아닌 부모이자 인생의 선배’임을 기억해 낸다. 그러나 제 분에 못 이겨 바닥에 오줌을 싸는 아이를 , 감기에 걸려 코 찔찔거리며 외투 안 입는다고 입내밀고 있는 아이를 마주하게 되게 되면 , 모든 결심은 로그아웃 해버린다. 아이를 존중하는 법도 엄마의 역할을 해내는 방법도 잊고 화가 단전부터 차오른다.


어금니를 꽉 깨문다.

그래 분명 이 시간들을 엄마로 오롯하게 잘 보내면 그 뒤에 오는 단맛을 난 알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그 매운 순간들을 눈물을 닦아내며 참아낸다. 단맛이 올라올 때 까지. 얼마간의 시간이 ‘잘’ 흐르고 나면 아이들은 그 작디 작은 손으로 내 얼굴을 쓰다듬고 뽀뽀를 해준다. 엄마가 최고라며 아끼는 과자를 입에 하나 넣어준다. 스스로 화를 삭인 아이들이 ‘엄마 죄송해’ 라며 먼저 다가온다.


아 , 이래서 부모는 영원히 지는 존재라고 했던가.





이 단맛은 아마 영원토록 잊지 못할 듯싶다.

스쳐가는 찰나의 순간들이지만 뭉근하게 마음속에 남아 있다.

몽글몽글한 아이들의 유년의 기억들.


아침에 일어난 아이들에게 양파처트니를 보여주었다. 다들 고개를 돌렸다. 낯선 모양새를 처음 봐서 마주하자마자 탈락시켰던 것 같지만 엄마는 포기하지 않지. 조금만 떼어서 입술에 묻혀주니 낼름 먹어버린다. 그리고는 배시시 웃는다.


달걀후라이를 하고 잘 익은 토마토를 자른다.

며칠 전 소금, 식초, 꿀, 설탕에 버물여놨던 양배추와 오이를 냉장고에서 꺼내와서 물기를 꾹 짰다. 식빵을 바삭하게 구웠다.


고객님들의 만족도는 최상이었다.




양파 한 망을 더 사 와야겠다.

이번엔 분쇄육도 함께 사 와서 함박스테이크를 만들고 그 위에 양념대신 올려주어야지.


아니다 , 일단 사과, 베이비루꼴라, 양파처트니를 넣고 샌드위치를 한번 더 만들어 먹어야겠다.


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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