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사수발일기
5월은 가정의 달이다.
가정의 달.
가정.. 의.. 달..
가정 파산의 달이.. 되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5월 3일 어머님 생신
5월 5일 친정아빠 생신, 어린이날
5월 8일 어버이날
5월 10일 친정엄마 환갑
5월 14일 아버님 생신
5월 15일 스승의 날
우울늪에 한참 빠져있을 때는 생신이나 소소한 날들을 챙길 기력조차 없었다.
살아 숨쉬기도 귀찮았으니.. 치료가 차츰 진행되면서 조금씩 마음의 여유가 생겨나고 400일이 지난 요즘에야 타인을 돌아볼 여력이 생겼다. 서프라이즈 이벤트를 하고 싶은 생각도 들고.
어떤 선물을 해드릴까 거듭 고민하던 순간이었다. 그 찰나의 순간에 앞으로 내가 챙길 수 있는 생신과 기념일들이 몇 번이나 될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돈이 많이 들고 말고의 여부를 떠나서 다정한 기억을 선물해드리고 싶었다. 잠깐이라도 크게 웃을 수 있는 순간을 선물해드리고 싶었다.
고민에 고민을 거듭한 결과
어머님께는 보석함 문을 열면 돈다발이 튀어나가는 서프라이즈를,
아버님께는 화분의 난초를 쑥 뽑으면 돈이 줄줄줄 뽑히는 것을 선택했다.
선물을 개봉하며 한동안 껄껄 껄껄 웃음이 이어졌다.
친정엄마는 환갑을 맞이하셨고 , 아빠는 사정상 환갑을 못 챙기고 넘어갔던 게 내내 마음에 걸려서 집에서 한상을 차려드리기로 결정했다. 대망의 당일. 친정엄마는 재차 전화를 걸어 “수봉아, 엄마가 피자라도 한판 사갈까?”를 연신 물으셨다. 친정엄마는 합리적 의심을 하고 계셨다. 차려진 건 많은데 먹을 게 없을까 봐.. 젓가락이 길을 잃을까봐..엄마의 불안감을 이해 못 하는 바는 아니지만 , 자존심이 있지 (?) 나는 피자를 끝내 허하지 않았다.
심지어 아이들과 케이크도 만들었다.
역시나 별것 없는 레시피다. 레시피라고 말하기도 창피할 정도.
1. 우리밀로 만든 카스텔라를 산다.
2. 유기농 요거트를 산다.
3. 잘 익은 유기농 참다래를 산다.
4. 요거트에 레몬청과 꿀을 섞는다.
5. 바른다.
6. 참다래를 올린다.
7. 나름 허브로 멋을 부려본다.
자 친구들 준비되었나.
시작해 보도록 하지.
바른 것보다 먹은 게 더 많았다. 요거트를 두병사올걸 후회가 밀려온다. 아이들이 고사리 같은 손으로 참다래까지 올려주었고 화룡점정의 마음으로 허브를 가져다가 데코를 했더니 아드님께서 대머리에 머리카락이 난 것 같다는 멋진 감상평을 남겨주셨다. 다행스럽게도 (?) 엄마의 여동생 그러니까 나의 이모가 떡케이크를 보내주셨다. 이모 큰절받으세요.
남편이 쉬는 날이라 아이 둘을 케어해 줌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을 데리고 한상을 차려낸다는 건 생각보다 더 번잡스러웠다. 그래도 괜찮았다. 오늘이 엄마, 아빠의 마음에 오랫동안 담겼음 하는 바람이 더 컸기 때문에 발바닥에 불이 나도록 손바닥에 땀이 나도록 열심을 다했다. 전날 오이김치도 만드는 열심을 보였다.
다섯 시 정각. 부모님이 오셨다.
요란한 환영과 함께 준비한 선물들을 투척했다.
엄마와 아빠가 웃기 시작하셨다.
함께 할 수 있어서 기뻤던 저녁이었다.
“너희 모두를 사랑한다고 말했으면 싶을 때가 있어”
두더지가 말했어요.
”그렇지만 말하기가 어려워 “
”그래?“ 소년이 되물었어요.
”응. 그래서 이런 식으로 말해.
‘우리가 여기 함께 있어서 기뻐’“
”그렇구나“ 소년이 덧 붙였어요.
”나도 우리가 모두 여기 함께 있어서 기뻐“
<소년과 두더지와 여우의 말 / 찰리 맥커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