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를 통해 보는 젠더 갈등
그들[하층 카스트]에게 도움이 필요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난 공직에서의 할당제를 선호하지 않는다. 그것은 우리 사회를 2등 국가로 나아가게 할 뿐이다. 나는 인도가 1등 국가가 되기를 원한다. 2등을 장려하는 순간 우리나라는 끝이다.
- 자와할랄 네루, 인도 독립운동가이자 초대 총리
오늘날 한국의 젠더갈등의 본질은 결국 누가 혜택을 받고 누가 불이익을 받고 있는지에 관한 논쟁입니다.
그중에서도 가장 대표적으로:
1) 교육의 기회
2) 취업의 기회
즉 누가 더 높은 교육적 성취를 통하여 더 양질의 직장에 취직, 상류층으로 가는 사다리에 올라탈 수 있는가를 가장 민감하게 다룹니다. 산업화, 정보화된 사회일수록, 고등교육의 기회는 성인으로서 끼울 수 있는 중요한 첫 단추와도 같습니다. 그래서 고등교육 입학에 정책적으로 국가나 기관이 개입함으로써 더 많은 사회적 약자들을 위로 올려보내 주면, 그 사람들이 돈을 더 벌고 높은 사회적 위치에 가서 불평등을 해소하는 데 앞장서 줄 것이라는 믿음이 현대 할당제의 근간이 되었습니다.
사실 한국은 다인종 국가가 아니었기 때문에 일부 장애인, 유공자 등을 제외하고는 정책적으로 약자를 정의하고 혜택을 부여하기 시작한 지는 그리 오래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이런 일을 건국 초기부터 해온 나라들도 있습니다. 바로 수백, 수천의 카스트가 존재하는 인도가 그 주인공이었는데, 독립 이래 오늘날까지도 인도는 할당제(reservation)를 놓고 무시무시한 줄타기를 하고 있는 중입니다. 할당제를 잘못 건드렸다간 도시 전체가 불바다가 되기 때문입니다.
인도 남부 케랄라 주의 기준을 살펴보면 후진계층(Other Backward Classes) 즉 사회적 약자층을 인도가 어떻게 정의하고 있는지 쉽게 볼 수 있습니다. (길어서 전부 나열하지는 않았습니다)
1. 사회 부문 (80%)
- 막노동을 하는 여성과 아이들의 비중이 주 평균보다 25% 높을 것.
- 슬럼가나 시골에서만 주로 생활하고 있을 것.
- 도로나 우물 등을 사용하지 못하도록 차별받는 불가촉천민일 것.
2. 교육 부문 (10%)
- 10학년까지 진학한 비중이 주 평균보다 20% 낮을 것.
- 졸업자 비중이 주 평균보다 10% 낮을 것.
- 7-15세 자퇴학생 비중이 주 평균보다 15% 높을 것.
3. 경제 부문 (10%)
- 가정평균소득이 주 평균보다 20% 낮을 것.
- 구성원 대부분이 목축업, 어업, 가내수공업 등 전통적 혹은 비선호 직업에 종사하고 있을 것.
(출처: The Kerala State Commission for Backward Classes)
케랄라주는 위 세 개의 소분류에 각각 80-10-10의 비중을 매긴 것을 볼 수 있는데, 이는 불가촉천민 혹은 수드라로 분류되는 극빈층이 아직 많기 때문에 이들을 중점적으로 챙기려 했던 것 같습니다. 즉 아무나 약자 타이틀을 남용하는 것을 막기 위해 최소 이 정도로 차별받고 후진적이며 가난해야지 지원해 주겠다는 뜻입니다.
인도의 약자 분류는 아마 인도라는 나라가 존재하는 한 계속해서 진화할 것입니다. 가장 최근인 8월에는 인도 대법원에서 Creamy Layer 룰을 OBC 외에 SC, ST(Scheduled Castes, Scheduled Tribes)에도 적용하라는 판결이 떨어져 논쟁을 재점화시키기도 했습니다. Creamy Layer란 간단히 말해서 위의 모든 조건을 충족하는 카스트 혹은 부족의 일원이라도, 소득이 일정 수준 이상이면 혜택을 받지 못하게 하는 일종의 소득상한선입니다. 즉 아무리 하층 카스트라도 흙수저 위부터는 자기 힘으로 학원 가고 대학 갈 수 있으니 지원해주지 말자는 것입니다.
(카스트 할당제에 대해서는 이전 글에서 더 상세히 다루었습니다)
만약 인도의 정교한 약자 분류를 한국에 도입해 본다면, 다행히도 불가촉천민은 없으니 교육 - 경제 - 사회 순으로 중요도를 둘 것 같고, 최소한:
1) 교육: 상위권 대학 진학률이 타 집단보다 낮을 것
2) 경제: 평균소득이 타 집단보다 낮을 것
3) 사회: 타 집단보다 차별, 범죄를 더 빈번하게 겪을 것
이 세 가지는 충족시켜야 국민 모두의 공감을 살 만한 정책적, 사회적 배려를 논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특히 교육과 소득 수준은 소수자의 위치 상승에 절대적인 역할을 하므로 1, 2차적으로 고려되어야 하며, 미국에서의 아시안들이 그렇듯이 교육 수준도 높고 소득 수준도 높지만 여전히 사회에서의 간접/직접 차별이 존재한다면, 그것은 할당제 같은 정책보다는 시민단체나 정치의 힘으로 풀어가야 할 문제일 것입니다.
인도의 예시에서 보았듯이, 사회의 최하층에 존재하며 목소리도 제대로 내지 못하는 잊혀진 자들이 존재하는 이상, 약자라는 타이틀을 함부로 휘둘러서는 안 됩니다. 정부 또한 약자를 선정하고 혜택을 배분함에 있어 길게 내다보고 매우 신중하게 결정해야 합니다. 약자에 넣어달라는 사람은 많지만 빼달라는 사람은 거의 없는 것이 현실이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후진계층(OBC)의 명단은 줄지 않고 늘어만 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만일 약자의 수가 정말로 증가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라면, 우리는 할당제의 효력에 대하여 의구심을 가지지 않을 수 없다.
- 인도 대법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