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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브라질소셜클럽 Jan 27. 2024

생크림 케이크와 인도 카스트의 공통점은?

나를 하층민으로 분류해 달라

2015년 카스트 할당제 반대 시위


여러분은 현대 인도에 카스트 제도가 왜 남아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상위 카스트의 힘이 너무 세서? 나라가 부유하지 못해서? 국민들의 의식 수준이 낮아서?

그것보다 더 중요한 이유는 먹고사는 문제와 직결되어 있습니다.


카스트 제도가 없어질 수 없는 이유는 바로 하위 카스트가 제도를 지지하기 때문입니다.


"약자가 자신들을 억압하는 제도를 지지한다고? 이게 무슨 소리?“


얼핏 들으면 말이 안 되지만, 정부와 학교, 직장에 하위 카스트를 위한 지원과 할당제가 있다고 하면 얘기가 완전히 달라집니다. 내 가족이 애매한 중산층이라면 하위 카스트에 속하는 것이 훨씬 이득이 됩니다. 인도도 엄연한 자본주의 국가인 만큼 결국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계급보다, 눈으로 보이는 좋은 학력과 안정적인 직장입니다. 내가 이웃보다 카스트에서 조금 높다고 그것이 밥을 먹여주진 않습니다.


이런 현상은 인도뿐 아니라 선진국인 미국에서도 나타납니다. 미국의 혼혈 학생들은 학교와 직장을 지원할 때 더 유리한 쪽으로 인종을 고르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것은 이기심이 아니라 특정 인종에 이득을 주는 제도가 그렇게 만든 것입니다. 눈앞의 이익을 보고 그것을 마다할 사람은 세상에 없습니다. 인생이 걸려있는 대학입시와 취직을 위해서는 더더욱 그렇게 해야만 합니다.

 

"비슷한 값이면, 약자로 분류되더라도 지원을 받는 쪽에 속하는 것이 낫다"


이것을 염두에 두고 현대 카스트의 본질을 알아봅시다.




지정 카스트(Scheduled Caste)

사농공상?


대부분 한국인은 학교나 유투브 등 매체를 통해서 이 피라미드를 접했을 겁니다. 사실 이 그림은 아주 큰 틀에서만 유효하고 현재의 카스트 제도를 이해하는 데는 별로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중세 시대라면 모를까, 오늘날 크샤트리아라고 군대에 가는 것이 아니고, 바이샤라고 장사를 하는 것도 아닙니다. 그럼 진짜 카스트는 어떻게 생겼냐고요? 아래의 리스트처럼 생겼습니다.


위 표는 인도의 사회정의부 공식 웹사이트에서 다운로드한, 우타르프라데시주의 지정 카스트(Scheduled Caste; SC) 목록입니다. 인도의 28개 주 모두가 이렇게 긴 리스트를 법으로 정해두고 있습니다. 위의 성을 가진 사람은 정부의 공식 승인절차를 거쳐 "카스트 증명서"를 발급받아 지원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 지원의 종류는 장학금과 대학, 공공기관 할당제, 의회 의석까지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전방위적 혜택들로 채워져 있습니다.


복잡한 인도 전형 카테고리 (PwD = 장애인)


즉 지정 카스트(SC)의 공식 할당률이 15%라면, 인도의 대학교는 최대 15%까지 지정 카스트 전형을 뽑아야 합니다. 인도 최고의 명문대 IIT도 마찬가지입니다. 15%면 좀 많은 것 아니냐고요? 아직 시작도 하지 않았습니다.


지정 카스트와 더불어 지정 부족(Scheduled Tribe; ST)도 있습니다. 이는 가난한 소수민족이나 시골에 사는 커뮤니티들을 따로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졌으며 ST의 공식 할당률은 7.5%입니다. SC와 ST 둘을 다 합치면 인도 전체 인구의 약 25%가 됩니다.


할당제를 모두 채우면 40%의 자리만 남습니다.


SC, ST로 불리는 약자보호 시스템이 처음 대두된 것은 1950년부터였으며, 1979년 만달 커미션(Mandal Commission)에서는 기타후진계층(Other Backward Classes; OBC)이라는 카테고리를 추가로 만들어 27%까지의 할당률을 적용하게끔 권고하였습니다. OBC에 해당되는 숫자는 정확하게는 알 수 없으나 인도 전체 인구의 약 40%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SC, ST, OBC 세 취약계층을 모두 합치면 인도 전체 인구의 65%가 됩니다. 그러나 거기서 끝나지 않고 인도 정부는 경제적 취약계층(Economically Weaker Section; EWS)을 2019년 새로 만들어서 10%의 할당률을 적용하였습니다. 여기에는 위 세 계층에 들어가지 못하지만 연소득 80만(8 lakh) 루피 이하인 사람들을 포함시켰습니다. 계산해 보니 대충 한국돈으로 한 달에 100만 원 이하로 벌면 되는 것 같습니다. 문제는 인도 직장인의 평균 월급이 100만 원이 안 되기 때문에 꽤 많은 사람들이 여기에 속할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인도 대학은 여성에게 5% 할당률을 추가로 적용합니다. 이 말은 여성에게 5% 낮은 점수 커트라인을 적용한다는 의미입니다.


취약 계층을 모두 종합해 보면 다음과 같은 의문이 듭니다.


인구의 65% 이상이 보호받아야 할 약자...?

흔들흔들~


이것을 보고 뭔가 이상하다 느낀다면 정상입니다. 인도인들도 차별주의자라는 소리를 들을까 봐 공개적으로 말은 안 할지 몰라도, 이 납득하기 어려운 제도에 대해 불만이 많습니다.




생크림 케익과 약자 보호 정책


분명 할당제가 생길 당시 그 취지는 좋았습니다. 넓은 인도 땅에는 심하게 낙후된 지역들이 많았고, 전기나 식수도 없고 가난이 대물림되던 극빈층을 약자로 지정하는 것에 대해 도시 사람들도 크게 불만이 없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위에서 최대 60%까지가 SC, ST, OBC, EWS등 약자에 배당된다고 설명했는데, 실제로 할당량을 완전히 채우지는 못하고 있습니다. 아무리 특별전형을 준다 한들 인도 극빈층이 양질의 공교육, 사교육을 받는 도시 학생을 이기기는 쉽지 않으니까요. 그러나 시간이 지나고 인도의 경제가 발전하면서 문제점들이 드러나기 시작했습니다.


 

그중 가장 흥미로운 정책이 바로 "생크림 케이크(Creamy layer)" 이라는 보완책입니다. 이것은 인도의 한 판사가 남긴 말에서 비롯되었습니다.


만일 하나의 카스트에 단일화된 이득을 제공한다면, 그 이득은 마치 생크림 케이크 맨 위에 발려진 크림을 먼저 떠먹듯이, 해당 카스트에서 가장 잘 사는 사람들에게로 집중되지 않겠는가?


이 보완책은 1970년대부터 대두되기 시작해서 1993년 법으로 공식화되었습니다. 이제 인도에서는 저 위의 약자 중 수가 가장 많은 기타후진계층(OBC)으로 인정받으려면 낮은 소득을 증명하는 Non-creamy layer(NCL) certificate를 떼와야 합니다. 정부 공식 문서의 명칭이 "크림케이크 여부 증명서"라니 뭔가 웃기지만 진짜 있는 문서입니다.


이것으로 약자 보호 정책의 문제를 고칠 수 있었을까요? 한국처럼 전 국민이 전산시스템에 세세히 등록되어 있었다면 그랬을지도 모르지만, 아직 많은 거래가 현금으로 이루어지고 자영업자가 많은 인도에서 정확한 소득 측정이 어렵기 때문에, 그 실효성은 제한적이었습니다.




나를 후진 계층에 넣어 달라

2016년 자트 폭동


지정 카스트와 지정 부족에 비해, 기타후진계층(OBC)은 애초부터 그 수가 너무 많았고 연방과 주 차원에서 각각 결정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누가 후진계층이냐 아니냐를 가지고 계속해서 문제가 일어났습니다. 그중 대표적인 사태가 바로 2016년 자트 폭동이었습니다.


인도 북부 하리아나 주의 약 30%를 차지하는 자트족은 90년대부터 OBC에 포함시켜 달라고 소원했지만, 정부와 대법원은 자트족의 수가 워낙 많았고 천민은 아니었기 때문에 계속해서 기각했습니다. 이에 자트족은 2016년 시위를 시작했고 곧 폭동으로 번졌습니다. 이 문제를 복잡하게 만든 원인 중 하나가 주마다 자트족의 지위를 다르게 평가하였기 때문입니다. 폭동 과정에서 카스트 간 폭력과 방화가 발생하였고, 30명이 사망하였으며, 군대와 경찰이 대규모로 투입되고 정치인들이 "고려해 보겠다"라고 안심시키고서야 상황이 종료되었습니다.


이 사태는 OBC의 큰 쟁점 중 하나인 "왜 너네는 되고 우리는 안 되냐"를 여실히 드러낸 표본으로 국제사회에 보도되었습니다. OBC 포함을 원하는 카스트는 자트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 문제는 주 선거 때마다 중요한 쟁점으로 떠오르게 마련인데 OBC 포함을 담보로 특정 카스트, 집단의 표를 동원하기 때문입니다.




인도의 카스트 제도가 시사하는 바는 아직 다인종 국가가 아닌 한국에게는 잘 와닿지 않을 수 있지만, 약자 보호 정책을 적극적으로 펼치는 국가들에게는 좋은 탐구 대상입니다.


인도를 보면서 우리가 짐작할 수 있는 것은 다음과 같습니다.


1. 한번 취약계층으로 분류하여 정책적 이득을 부여하면, 그것을 다시 뺏어오기란 정치적으로 거의 불가능하다.


2. 취약계층의 지정 여부는 여러 사회적, 경제적 지표에 따라 계속해서 같이 변화해야 하며, 그렇지 않으면 진정으로 필요한 약자들에게 도움을 주지 못한다.


3. 같은 취약계층 안에서 나타나는 격차를 감안하는 추가적 장치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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