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을 따라가는 한국의 데이트 문화
최근 들어 한국에서 첫 만남을 카페로 대신하는 것에 대해서 여러 말이 많아지고 있습니다. 한동안 국룰이었던 "남자는 밥, 여자는 커피/디저트" 공식에 익숙해있던 사람들은 "나를 별로라고 생각하나?" "돈이 아까워서 그런가?" 등등 여러 가설이 머릿속에 맴돌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결론부터 말하면 이는 한국이 미국과 같은 선진국을 따라가면서 일어나는 사회, 경제적 변화의 자연스러운 일부일 뿐이고 미국에서는 커피 데이트가 이미 보편화되어 있습니다. 미국의 유명한 데이팅 어플 중 하나의 이름도 "Coffee Meets Bagel"입니다. 이렇게 된 이유는 젠더 역할의 변화도 있지만, 경제, 사회적인 요소 역시 강하게 작용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럼 카페 소개팅이 본격화되는 세 가지 이유에 대해 하나씩 알아봅시다.
한국에서의 2000년대는 전통적인 가족질서가 아직 남아 있었지만, 미국에서는 이미 30년 넘게 기존 커뮤니티 질서의 붕괴가 논의되고 있었습니다. 미국의 사회학자 Robert Putnam은 그의 저서 Bowling Alone(2000)에서 미국의 청년들이 더 이상 로터리 클럽, 동호회, 교회 등을 나가지 않고 부모님 세대에 비해 홀로 살아가고 있다는 점을 분석한 바 있습니다. 그와 더불어 1960년대부터 급속히 진행된 서버브화(suburbanization)로 인해 사람들이 더 먼 거리에 뿔뿔이 흩어져 살게 된 것도 사회적 자원의 손실에 한몫했습니다. 한마디로 미국인들이 더 이상 지역사회 활동에 참여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렇다 보니 미국에서 유기적인 "자만추"는 대학교 이후로는 거의 찾아보기 힘들게 되었고, 현대 미국인 커플의 대다수는 온라인으로 처음 만난 상대입니다. 자만추에 비해 어플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이 뭘까요? 마치 기업 지원서처럼 짧은 시간 안에 내 프로필을 여기저기 뿌릴 수 있다는 점입니다. 시간이 없는 현대인에게 여러 명을 동시에 만날 수 있다는 건 매력적인 제안입니다.
지금은 미국 20-30대 생활의 일부가 된 Tinder, Hinge로 계속 만남을 이어가다 보면 대단한 부자가 아닌 이상, 당연히 계속해서 밥을 사줄 수가 없게 됩니다. 실제로 뉴욕에서는 두 명이서 중간 급 식사를 하려면 한국 돈으로 13만원 이상이 깨지고, 2차를 간다면 칵테일 한 잔에 2만 6천원씩 내야 합니다. 오마카세 같은 걸 가면 1인당 20만원은 나올 것 같습니다. 15-20%의 높은 팁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결국 만남 횟수는 전보다 늘었지만 외식 물가와 팁이 크게 올랐기 때문에, 타협안으로 나온 것이 비교적 저렴하면서 분위기 있는 카페나 브런치 데이트입니다. 일단 만나서 얘기 나눠보고 마음에 들면 밥 먹으면 된다는 겁니다. 한국은 다행히도 살인적인 15-20% 팁은 없지만 서울 물가가 전보다 올랐기 때문에, 만남 횟수를 늘리고 싶다면 미국처럼 만남 1번에 투자되는 비용이 줄어들어야 할 수밖에 없습니다.
계속된 인플레이션으로 인해 2023년 서울 직장인의 평균 밥값이 10,000원을 넘어섰습니다. 서울이 다른 글로벌 대도시에 비해 그나마 자랑할 수 있었던 저렴한 밥값도 이젠 옛말이 되었고 배달음식도 편하다고 막 시켜 먹다간 본인이 배달을 뛰어야 될지도 모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캐치테이블 앱을 켜보면 그 비싼 오마카세, 와인바들은 항상 예약 매진입니다. 역설처럼 들리시나요? 이것도 살펴보면 그리 이상한 현상은 아닙니다. 한국 정도의 GDP, 경제력을 갖춘 나라에서 충분히 고급 미식을 소비할 수 있습니다. 국민들이 잘 살게 되면서 음식에 대한 기대치가 그만큼 상승했기 때문입니다. 옛날에는 경양식집에서 돈까스 먹는 게 대단한 외식이었고, TGI 프라이데이, 베니건스가 강남의 고급 식당이던 시절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2024년 이런 곳에서 첫 데이트를 하겠다고 하면 높은 확률로 좋은 소리 못 듣습니다.
한국 20-30대의 소득 수준에 비해 물가와 외식에 대한 기대치가 전보다 크게 높아졌기 때문에, 몇 년이면 어제의 고급 식당이 오늘의 가성비 식당이 됩니다. 미국에서는 점차 요식업 임금이 올라가고 소비자 가격으로 전가되는 과정을 예전에 이미 겪었기 때문에, 젊은층이 더 이상 높은 외식비를 감당할 수 없어서 커피 데이트가 기본으로 정착되었습니다. 한국은 최저임금이 올라가고 생활 수준이 높아지면서 그것을 지금 경험하고 있는 것뿐입니다.
오늘날 노동시장에서의 젠더 갭 연구에서 빠지지 않고 거론되는 교수 두 분이 있는데, 하버드대의 Claudia Goldin 그리고 시카고대의 Marianne Bertrand 교수입니다. Bertrand 교수는 OECD 주요국의 남성과 여성 노동참여율을 나이에 따라 분석해 보았는데 독특하게 한국에서만 20대 여성의 노동참여율이 남성보다 더 높았습니다. 왜 그런지는 한국인이면 아마 짐작 가능하리라 생각합니다.
고용률에서도 2009년부터 20대 여성이 남성을 추월하기 시작해 지금은 거의 비등한 상황이고, 평균 임금의 경우 위의 자료에서 보듯 20대까지는 비슷하다가, 결혼을 하고 출산하는 20대 후반 - 30대 초부터 본격적으로 격차가 크게 벌어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현상은 미국에서도 동일하게 나타나며, 해당 골딘 교수 연구는 다른 포스트에서 다루었습니다.
한국은 현재 세계에서 가장 낮은 출산율과 서울 기준 32세라는 높은 여성 초혼연령을 기록한 나라이므로, 바꿔서 말하면 그만큼 임금 격차의 제1원인인 모성 페널티(motherhood penalty)를 받지 않는다는 말이 됩니다. 선진국일수록 출산 전까지 남녀의 임금에는 큰 차이가 없고, 동일 직군일수록 더욱 없습니다.
미국에서도 남성들이 이미 이러한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에, 한쪽이 첫 데이트 비용을 전적으로 지불하는 것을 점차 거부하게 되었고, 결국은 남녀 모두 만족할 수 있는 카페 데이트로 귀결되었습니다. 물론 이민자의 나라인 만큼 그렇지 않은 남자들도 존재하고 실리콘밸리처럼 남초인 지역에서는 남자들이 기꺼이 밥을 사기도 합니다. 그러나 어플로 만나면서 매번 좋은 식당에서 밥을 사줄 정도의 재력이 되는 남자는 많지 않을 것입니다.
맺으면서, 미국의 데이트 양상을 따라가는 것이 과연 좋은지 나쁜지에 대해서는 선뜻 논하기 어렵습니다. 한국은 미국에 비해서 비교적 보수적인 소개팅 이후 삼프터라는 공식이 오랫동안 존재해 왔는데, 이것을 버리고 미국처럼 게임 형태의 가벼운 어플 만남과 애매한 관계로 대체되는 데 대한 반감이 드는 것은 놀랍지 않습니다.
다만 이 포스트에서 말하고자 한 것은 물가와 기대 수준, 어플의 확산, 그리고 여성의 활발한 노동시장 참여 이 세 가지가 모두 미국을 따라가고 있으며, 그로 미루어 보았을 때 연애시장도 마찬가지로 미국의 그것을 답습할 것으로 보인다는 점입니다.
끝으로, 결혼시장(marriage market)이라는 용어를 정착시킨 시카고 경제학자 게리 베커의 명언을 인용하면서 마칩니다.
여성이 남성과 노동시장에서 동등하게 된다는 것은, 결혼시장에서도 마찬가지로 남성과 동등하게 된다는 점을 시사한다.
- Gary Beck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