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화하면서 상대의 마음을 읽고 반응하면 대부분 자신의 마음을 알아봐 준 것에 놀라며 마음을 열었었다. 주위에 힘든 사람을 보면 무조건 만나러 갔다. 얼굴을 마주하고 진심으로 대화를 하면 전화나 문자로 얘기하는 것보다 훨씬 가까워지고 문제 해결에도 도움이 되곤 했다. 젊은 시절에 정신질환자 사회복지 시설에 근무를 하기도 했었고 상담도 배웠고 많은 사람을 만나는 일을 하다 보니 사람 마음을 읽는 힘을 가지고 있다고 믿었다. 적어도 얼마 전까지는... 그동안 만난 수많은 사람들에게 난 어떤 사람이었을까?
혼자 있었던 적이 별로 없었다. 사람들이 옆에 있었고 난 뭔가를 제시하고 도움을 주는 사람이라고 여기며 살았던 것 같다. 그런 위치라 여기며.. 요즘은 점점 자신이 없어진다. 어쭙잖은 조언과 대안을 제시하는 것이 상대에게 더 힘들게 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도움을 주고 싶은 마음에 나도 모르게 좋은 말로 폭력을 행사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 때면 불안한 마음이 들고 사람을 만나 이런저런 말을 하는 것조차 두렵다. 지금까지 잘 못 살아온 것이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든다. 사람과의 관계를 잘하는 사람이라고 여기며 살았던 것이 점점 무너진다. 실수가 나오고 왜 이런 식의 표현밖에 할 수 없었는지 후회되는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조언이나 해답을 제시하는 것도 망설여지고 점점 말이 삼켜졌다.
그러니 맘이 편할 수가 있나. 매일 고뇌하는 철학자처럼 인생의 짐을 지고 걷는 순례자 같다. 하루가 버겁게 느껴져도 내 맘이 힘들다는 것을 겉으로 표현하기 어렵다. 어른이 돼서, 누군가의 도움이 돼야 하는 위치에서, 내가 무너지고 나약한 모습을 보이는 것이 싫기도 하지만 실상 터놓고 말할 사람도 없다. 아주 가끔 쏟아낼 곳이 없어서 SNS에 힘든 마음을 살짝 비추기라도 하면 염려하는 마음에 어린 청년들까지 이런저런 조언을 하기도 한다. 고마운 마음을 표현하면 상대는 뭔가 대단한 성과를 얻은 것 같은 기세 등등한 모습을 보인다. 내가 누군가에게 도움을 준 사람이다. 뿌듯해하는 모습을 본다.
그동안 내 모습이 이러하지 않았나 하는 데까지 사고가 미친다. 어쭙잖은 대안을 제시하고 힘내 보자고 설득하고 함께 눈물 흘리며 위로했던 것이 다 가짜 같고 위선같이 느껴졌다. 그만한 내공이 있는 사람인양 기세 등등 한 교만함이 꽉꽉 채워져 다른 것이 자리할 틈이 없었던 사람은 아니었을까?
이제 마음을 잘 읽는 사람이고 싶지 않다. 대화하면서 그 눈빛이 무얼 말하는지 분석하고 속으로는 어떤 생각을 하면서 말하고 있는 것일까 머리 굴리고 싶지 않다. 조언하는 사람이고 싶지도 않고 그렇다고 답을 제시받는 사람도 되고 싶지 않다.
내가 사유하는 생각들이 날 지치게 할 때도 있고 자괴감에 자기혐오까지 이르게 한다. 오늘은 아무것도 하기 싫고 무기력한 날이다.
아무 말 안 해도 옆에 있어 주기만 해도 맘이 편해지는 사람이고 싶다. 내 옆에도 그런 사람이 있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