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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옥미 Aug 25. 2022

화장실로 쫓겨나기 전에

나의 좋음이 혐오가 되지 않기를...

"와~~ 생화야!!"

코로나로 몇 년을 위축돼서 살다 보니 여행을 엄두도 못 내고 있었다. 이러다 안 되겠다 싶어 올해 겨울을 벗어나지 못한 2월 초에 남편과 일박이일 횡성으로 여행을 갔다. 여행 때문에 들뜨지도 않았고, 에너지는 바닥이라 계획을 짜지도 못했다. 겨우 칫솔이랑 스킨로션 샘플만 챙겨서 남편과 그저 쉬고 싶은 마음에 떠났었다.


미리 예약한 펜션에 들어서자마자 백합 향이 가득 달려와 안아주는 느낌이 들었다. 펜션에 생화를 놓다니. 펜션지기는 아마 시적인 사람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따로 커피를 마실 있도록 카페처럼 꾸민 공간도 세심한 배려가 묻어났다. 서너 송이의 백합 향기로 행복해졌다.  펜션은 그리 크지 않았다. 작은 공간이지만 옷을 벗고 침대에 누웠더니 아늑하니 진짜 쉬는 느낌이 들었다. 시간이 조금 지나자 미리 보일러를 잔뜩 올려놨던 방안 공기는 둘의 호흡이 채워지면서 답답함과 진한 백합 향기로 숨을 쉬기 어려운 상태가 되었다. 아.. 향기로운 백합도 이 작은 공간에서는 버겁기 그지없었다. 잠을 잘 수 없을 만큼 점점 향기가 내 목을 조르고 있었다. 벌떡 일어나 "안 되겠다!!" 대단한 결단을 한 사람처럼 비장하게 백합을 들었다. 바깥은 백합이 얼어 죽기 딱이다. 둘 곳을 찾다가 결국 백합이 쫓겨난 곳은 화장실이었다. 백합 향기는 너무 좋다. 그러나 작은 공간에서 이 꽃향기는 버겁기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잠을 잘 수 없을 만큼 힘들었으니 말이다. 밤에 화장실에 가노라 치면 문을 열어놓고 일을 봐야 했었다.


상황과 때에 따라 좋음이 버거움과 혐오가 될 수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각자의 취향이 있고, 옳음이 있다. 살아온 환경과 가치관이 다른 사람들이 느끼는 정의와, 선은 모호하다. 수학 공식처럼 딱 떨어지면 좋으련만. 이게 좋으니 이렇게 하고 저게 좋으니 저렇게 하면 된다는 답이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우리가 자라 온 시절에는 새마을 운동을 비롯해서 이런저런 운동이 많았다. 먹고사는 일이 가장 우선되었기에 열심히 사는 것, 어쨌든 힘을 내서 버티고 견뎌내는 것이 미덕이고, 파이팅 하며 사는 것이 칭찬거리였다. 무엇인가 가시적으로 이룬 일이 지금까지의 모든 과정을 대변하며 선으로 미화되는 일이 많았었다. 난 그 시대를 겪어왔고, 그렇게 살아왔다.


웰빙, 욜로, 요즘은 워라벨이 유행한다. 말 그대로 유행이다.
잘 산다는 것의 정의가 시대마다 달라지고 있다는 것을 느낀다. 시대를 겪어오면서 지금 내가 결정하고 옳다 여기는 것이 진짜 정의가 아님을 스스로 되뇐다. 타자에 대한 시선이 많이 바뀌었다고 자신 있게 말하면 좋겠다. 누구와도 대화하면서 그럴 수 있고, 그래도 괜찮다고 속으로 주문을 건다. 많은 사람을 만나는 일을 하다 보니 다양한 경험을 한다. 일관적이지 않다. 100명이면 100명이 다르다. 타자에 대해 알려고 애를 썼고 이해해보려고 다양하게 적용도 해봤다. 내가 이해되어야 도움을 줄 수 있다고 믿었던 것 같다. 이해가 되면 내가 좋다고 여겼던 방법, 누군가에게 조언했더니 좋아졌던 방법을 나의 경험을 이야기했다. 도움이 되는 사람도 있었다. 그냥 듣고만 있어도 힘을 받는 경우도 있었다.


"이 백합 너무 예쁘지 않아? 향기 좀 맡아봐!" 백합을 싫어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특히 진한 향기를 싫어할 수도 있다. 나의 좋음을 강요하고 그것이 최고의 솔루션이라고 생각하는 오만함이 타자에게는 폭력이 될 수 있다. 열심히 사는 것이 최선이라고 배우고, 그렇게 살아온 나의 일생은 조금만 힘 내보자라고 하는 격려가 당연했다. 그러나 시대의 사고가 달라지듯이 방법도 달라졌다. 힘든 사람에게 힘내라는 말이 폭력이 되는 시대이다. 그냥 조용히 지켜보고 응원하는 것을 이 시대가 요구한다. 어설픈 아는 척도 지양해야 한다.


그동안 타자를 알려고 바둥거렸고, 무던히도 이해하려고 애썼다. 이제 조금은 알겠다. 나의 좋음이 타자에게 혐오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을, 타자뿐 아니라 정말 좋아서 신나 했지만 조금 지나도 견디지 못할 만큼 싫어질 수 있다는 것을 쫓겨난 백합을 보고 깨닫는다.


이해할 수 없는 일은 그냥 사랑하는 것이다.라고 종종 말을 했다. 그러나 여전히 나의 어쭙잖은 이해로 다가가다가 서로에게 상처를 남기고 있다. 내가 좋아한다고, 사랑한다고, 내 마음을 알아달라고, 내 뜻은 그게 아니라고 아무리 외쳐도 상대가 아프면 아픈 거다. 그럼 나의 좋음이 혐오를 남기는 것이다. 이해하지 말고 그냥 사랑하자. 말처럼 그냥 사랑하는 것이 쉽지 않다.


요즘은 그냥 잠잠해지는 것이 제일 좋은 방법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화장실로 쫓겨난 나의 좋은 마음이 애처롭긴 하지만 어쩌랴 내가 할 수 있는 방법이 없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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