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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옥미 Apr 18. 2023

벚꽃 앤딩이 슬프지 않은..

인생의 봄을 잊지 말라고 미소 지어 줘서 고마워. 


늘 바쁘게 살다 보니 어느 계절이 좋은지 보다 계절마다 불편한 것을 떠올릴 때가 많았다. 봄은 황사와 미세먼지로 싫어했었다. 여름은 덥기도 하지만 숨길 수 없는 살들을 드러내야 하는 것이 싫었고, 가을은 체감상 느끼는 기온이 그나마 좋았지만, 점점 다가오는 추위로 쓸쓸함이 밀려오고, 길에 떨어진 똥내 나는 은행 열매 때문에 싫었다. 눈의 낭만 따위는 없다. 눈길에 차가 한번 돌아본 사람은 눈을 싫어할 수밖에 없다. 눈뿐 아니라 추위에 오들오들 떨며 살았던  시골살이가 너무 강해서일까 겨울은 더더더 싫었다.


한 겨울에 세금이 많이 오르면서 전기세 폭탄을 맞았다는 기사를 봤다. 우리 책방도 많이 나왔나 싶어 확인했더니 전기세 포함한 관리비가 작년에 평균 60-70만 원 정도였다. 올해는 50-60만 원 사이에 나왔으니 덜 나온 셈이다. 음 선방했다. 작년에는 감성 돋게 한다고 캠핑용 석유난로까지 켰었는데 올 겨울은 3-4번 정도밖에 틀지 않았다. 전기세가 덜 나온 만큼 많이 춥지 않은 겨울이었나 싶지만 내가 느끼는 겨울은 춥고 길었다. 다시는 봄이 올 것 같지 않은 깊은 우울에 빠질 만큼 힘든 겨울을 보낸 것 같다.


50 중반을 훌쩍 넘긴 나이는 60대를 향해 가고 있다. 아마 정신력 콘테스트가 있다면 상위권에 오르지 않을까 싶을 만큼 버티고 견디는 세월을 지나온 듯하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정신이 지배할 수 있을 만큼의 힘이 있었다. 그러나 작년부터 나의 정신력은 육체를 지배하지 못했다. 마음대로 할 수 없는 몽뚱이는 점점 가치를 잃어버린 사람이 된 것처럼 느껴졌다. 열심히, 치열하게 산 사람이라 그럴까? 병이 생기고, 하는 일을 감당하는 것이 힘겨워지면서 이 자리를 언제까지 지킬 수 있을까? 매일 그 생각을 하면서 긴 겨울을 보냈다.


22년 책방에서 바라본 벚꽃


3월 어느 날 책방에 들어서면서 창밖에 눈물이 찔끔 날 만큼 환희에 가득 찬 벚꽃이 보였다. 눈을 비비고 다시 봤더니 여전히 앙상한 나뭇가지에 마른 잎이 바람에 팔랑거리고 있다. 환영이었다. 

"뭐지? 내가 본 환영이 도대체 어디에서 본 거지?"

번득 떠올랐다. 작년 벚꽃이 만발할 때 핸드폰으로 찍어 둔 그 광경이다. 갑자기 마음이 설레기 시작했다. 멀게만 느껴졌던 봄, 얼어버린 가슴에 따스한 기운이 스며들 그날을 기대하는 마음이 생겼다. 여전히 쌀쌀한 날씨였지만 따뜻하고 포근해질 것이라는 당연한 이치를 새삼 깨닫다니... 갑자기 작년의 환희가 왜 보였을까? 계절 때문에 마음이 살랑거리다니. 내가? 놀랄 일이다. 나이 먹으면서 겪어보지 못한 갬성 충만함이 당황스럽다. 


산 밑이어서 그런지 다른 곳 보다 벚꽃 개화시기가 늦은 편이다. 다른 지역의 벚꽃 사진이 SNS에 올라오기 시작했다. 설레는 마음으로 책방 창가를 자주 내다봤다. 작은 꽃순이 올라오고, 다음 날에는 꽃봉오리가 보였다. 그다음 날에는 한 두 송이가 피기 시작했다. 너무 급하다. 오후에는 팝콘이 터지 듯 여기저기에서 피기 시작했다. 3일 만에 수북하게 하양분홍이 만발했다. 며칠 출근하면서 창가에서 보이는 벚꽃 만날 생각에 일찍 집을 나섰다. 책방에 도착하면 창가에 가까이 가지 않았다. 책방 입구에 들어서서 그 자리에서 멈춘다. 나무는 보이지 않고 흐드러지게 핀 하양분홍 벚꽃만 가득한 장관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23년 4월 벚꽃


인생의 겨울이 있다고 하지 않은가? 나에게는 작년이 그랬다. 겨울이 그리 춥지 않았다 해도 시베리아 벌판에 홀로 버려진 휑한 가슴을 다스리기 힘들었다. 추위에 경직된 몸을 녹일 수 있는 것은 따스한 온기 품은 봄이 와야 하는데 멀게만 느껴졌다. 벚꽃 환영을 본 이후부터 봄은 가까이 다가왔고 현실이 되었다.

벚꽃이 흐드러지게 핀 날 공원으로 나갔다. 입고 나갔던 겉옷을 벗어 팔에 걸치고 천천히 걸었다. 연둣빛 새순, 노란 개나리, 산수유 꽃이 여기저기에서 돋아나고 있다.  눈을 들어 올려다보면 하양분홍이 내려다보고 있다. 움츠리지 않고 어깨를 편다. 참 낭만적이다.



책방에서 벚꽃 향연을 볼 수 있는 날은 길어야 일주일에서 열흘 사이다. 벚꽃이 만개하고 나면 무슨 법칙이 있는지 꼭 비가 내렸다. 만개한 날 바로 다음 날 비가 내렸다. 바람과 함께. 떨어지는 벚꽃과 이별을 고하느라 비 오는 날도 창가에서 떠나지 못했다. 일 년에 단 며칠, 올 해는 더 빨리 피고 빨리 졌지만 충분했다. 마음 다해 기다렸고, 따뜻하게 날 안아줬고, 짧지만 더 깊은 마음에 담았다.


다시 힘겨운 겨울이 올 수 있다. 늘 봄일 수 없듯이. 봄의 향연도 때가 지나면 그 영광도 사라질 것이다. 또다시 겨울과 같은 힘겨운 날이 올 수 있다. 하지만 이것 또한 지나가리라는 말처럼 봄은 반드시 다시 온다. 불편함과 싫은 이유만 찾았던 분주했던 지난 날들, 그때만이 누릴 수 있는 행복이 내 곁에 있었음에도 무디고 무뎌진 나의 오감은 눈치채지 못했지만 이게 웬일인가? 오감뿐 아니라 감성 감각이 깨어나 현재를 누리고 만끽할 수 있는 힘이 생겼다. 시린 겨울을 보냈기에 봄이 들려주는 세밀한 소리에 귀 기울일 수 있었다.


조금만 돌아보면 곳곳에서 들려주고, 보여주고, 느낄 수 있게 해 준다. 3월의 환영으로 힘을 내라고, 여유 있게 살아도 괜찮다는 속삭여준다. 속살을 드러내야 하는 땀나는 여름도, 파랑 하늘과 어우러지는 단풍 든 노랑 은행나무도, 하얀 눈송이도하늘에서 내리는 축복으로 사랑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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