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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관 Jun 22. 2024

하루키 오마주 소설 2 -8

제목미정

2-8


https://brunch.co.kr/@drillmasteer/3996


그때 발이 축축해짐을 느꼈다. 아니 물이 발목까지 찼다는 것이 느껴졌다. 콸콸콸 흐르는 물소리는 진짜였다. 물은 무릎까지 차올랐고 물살은 거세졌다. 점점 물은 차올라서 다리가 전부 잠겼다. 게다가 검은 물이 빠르게 흘러서 벽면에 난 둘 같은 것들을 잡지 않으면 그대로 떠 내려갈 판이었다. 이대로는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어디에도 도달하지 못한 채 그대로 물에 휩쓸려 죽을 것만 같았다. 밑으로 내려가는 것은 힘들었다. 발을 어디에 디뎌야 할지 도무지 알 수 없었다. 그때 발이 미끄러지면서 나는 물에 휩쓸려 떠내려가다가 어딘가에 허리를 찔렸다. 정신이 갑자기 까마득해졌다. 몸 안에 있는 모든 것들이 전부 빠져나오는 것 같았다. 허리 부분이 찢어진 것 같았다. 칼날처럼 뾰족한 것이 몸 안을 파고 들어와서 장기의 어떤 부분을 찔렀다. 정신이 아찔해지는 것이 느껴졌다. 피가 펑펑 나오고 있지만 물에 씻기고 있었다. 벽면에 튀어나온 부분을 나는 두 손으로 꽉 잡고 매달렸다. 이젠 벽면이라고 할 수 없다. 지하 구덩이를 흐르는 물줄기는 이제 허리까지 차올랐다. 검은 어둡고 검은색이었다. 비릿한 냄새가 거세게 흐르는 가운데에서도 났다. 이제 감각은 귀와 코로 집중을 분산해야 했다. 그러나 기러기에 정신이 가물가물했다.

   

화분이 좀 있었으면 좋겠어. 이란이가 말했다. 화분에 뭘 심으려고? 나는 물었다. 뭐 이것저것. 이란이가 말했다. 이것저것 뭐? 나는 물었다. 음, 콩나물, 양파하고 파, 배추도 심고 싶어.라고 이란이가 말했다. 나는 웃었다.


꽃도 아니고 그게 뭐야?


꽃은 여기서 나가면 얼마든지 볼 수 있어. 길거리에도 꽃이 있고, 학교에도, 건물 앞에도 꽃이 있잖아. 그런데 콩나물 하고 파는 볼 수 없으니까 직접 길러서 자라는 모습도 보고, 다 자라면 맛있게 먹어야지.


이란이는 행복해했다.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니 나도 행복했다. 이런 행복은 널려 있을 것 같은데 손으로 잡으려면 참 어렵다. 분명 발아래에 한가득 있을 것 같은데 매일 누릴 수 없다. 나는 손을 내밀었다. 이란이도 손을 내밀었다. 손을 뻗어 이란이의 손을 잡는데 잡히지 않았다. 바로 옆에서 이란이의 손을 잡았지만 잡히지 않았다. 나는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손은 마치 허공을 잡는 것처럼 허우적거렸다. 이란이는 나에게 손을 내밀었지만 나는 이란이의 손을 잡을 수 없었다. 나는 죽은 것일까. 하지만 이란이가 나의 손을 잡았다. 느껴졌다. 아악 그러나 찔린 곳이 너무나 아팠다. 입에서 끄으으으윽 하는 소리가 날 정도였다. 나는 이란이의 손을 꼭 잡았다. 그럴수록 정신이 가물가물했다. 그러다가 눈이 감기려고 할 때 나의 몸이 쑤욱 끌려가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이봐요, 정신 차려요. 이런 물살에서 정신을 잃으면 큰일이 난다고요.


누군가 나에게 말을 하는 것 같았다. 물의 거센 흐름의 소리 속에 섞여 잘 들리진 않았지만 누군가의 말소리는 나에게 확고하게 전달해야 한다는 의지가 있었다.


빨리 올라와요. 지금 저 소리 안 들려요?


물 콸콸콸 세차게 흐르는 소리 사이를 뚫고 기괴하고 기분 나쁜 소리가 들렸다. 살아있는 어둠의 소리였다.


저 소리는 뭐죠?


나는 나의 목소리를 듣고 깜짝 놀랐다. 종이에서 바람이 빠져나가는 것 같은 이상한 소리였다. 그때 나를 끌어당기는 소녀가 말했다.


저건 야미쿠로의 소리예요. 일단 올라오세요. 힘을 주세요.


나는 소녀의 손을 잡고 다리에 힘을 주고 벽면을 타고 올라갔다. 허리의 피부가 찢어져 고통이 심했다. 그 안으로 물이 들어가서 숨 쉬는 것도 힘들었다. 하지만 나는 이 물살을 거슬러 벽면 위로 올라가야 한다. 올라가니 한 사람이 겨우 걸을 정도의 길이 있고 양 옆으로 물이 흐르는데 물살이 대단했다. 소녀는 나를 끌어올리고 앞으로 걸어갔다.


야미쿠로라는 게 뭐죠?


지하세계에 살고 있는 괴물이에요. 가끔 지하에 빠지는 사람을 잡아먹어요. 심장에서 먼 순서대로 뜯어먹습니다. 야미쿠로의 특징이죠.


나는 순간 내가 팔다리가 뜯겨 가면서 야미쿠로에게 먹히는 상상을 했다. 끔찍했다.


야미쿠로는 어떻게 생겼죠?

 

아직 본 사람은 없어요. 그래서 여러 생김새로 짐작합니다. 그러나 세상에서 무서운 것들의 모습은 다 하고 있어요. 야미쿠로에 잡히면 생김새를 보기도 전에 대부분 팔다리가 물어 뜯겨 정신을 잃고 얼굴을 보기 전에 죽고 말죠. 죽는다는 거 어렵다는 사람은 지하에 빠져나오지 못하면 야미쿠로가 깔끔하게 해결해 줍니다.


아래를 보고 걷다가 소녀가 멈추는 바람에 그녀의 등에 얼굴이 부딪혔다. 폭신한 느낌이 얼굴에 닿았다. 소녀는 통통한 편이다. 소녀는 나의 한 손을 잡고 있었다. 내가 조금만 느슨해진다 싶으면 잡은 손에 힘을 주었다. 나는 정신이 아찔해지면서 깜빡깜빡했다. 아마 출혈이 심했던 모양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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