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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관 Sep 06. 2023

하루키 오마주 소설 1

제목미정


1.


 우물 안은 너무 깜깜했다. 내 손을 들어서 보고 있지만 손이 보이지 않았다. 나는 그런 깊은 우물 속에 앉아서 공포에 질려 있다. 몸을 꼼짝할 수가 없다. 전혀 보이지 않는 어둠은 밧줄에 묶여 있지 않음에도 나를 전혀 움직일 수 없게 만들었다. 몸을 조금이라고 움직이면 더 깊고 끈적끈적하고 촉수가 가득한 어둠 속으로 빠져 버릴까 봐 전혀 움직이지 못하고 있다. 움직일 수 있지만 움직일 수 없는 무서움이 나의 온몸과 정신을 강하게 잡고 있었다. 겁이 나서 소리 내 울고 싶었다. 하지만 그럴 수는 없다. 그렇게 해버리면 아까부터 딱! 딱! 하며 바닥에 소리를 내던 야구 방망이가 나의 머리나 얼굴 어딘가를 가격할 것만 같다. 무섭고 두렵다. 딱딱. 그 소리가 나를 미치게 했다. 그리고 점점 그 소리가 커졌다.      


 잠에서 깨어나면 꿈이 너무 선명해서 몸이 땀으로 흠뻑 젖어 있었다. 근래에 계속 이 비슷한 꿈을 꾸고 있다. 꿈이 계속 무섭다. 악몽을 꾸지 않으려고 잠들기 전까지 몸을 혹사시켰다. 월차도 쓰지 않고 열심히 일을 했다. 동료가 가정에 문제가 생겨 업무에 차질이 생길 것 같으면 내가 대신 업무를 맡아주었다. 동료들은 힘들지만 나에게 부탁을 했고 나는 흔쾌히 들어주었다. 동료들 대신 업무를 봐주는 것 말이다. 거래처에는 내가 항상 갔다. 머리를 굴려 업무보고서도 내가 쓰고 일을 마치면 운동을 두 시간 내내 거의 쉼 없이 했다. 운동은 생활의 활력을 가지게 하는 목적이 있지만 나는 모든 생활의 활력을 운동에 쏟아부었다. 그래야 집에 들어가면 그대로 뻗어서 잠이 들어 꿈 따위 꾸지 않고 일어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운동과 운동 사이의 쉬는 시간을 10초를 넘기지 않으려 했다. 덕분에 운동이 끝났을 때 얼굴 반쪽이 흘러내릴 정도로 망가졌고 팔과 손가락에 힘이 없어서 볼펜으로 글자를 적는데 평소 나의 글씨체에서도 완전히 벗어났다.      


 그 덕분에 운동 막바지에도 잠이 왔다. 잠을 참아가며 샤워실에서 꼼꼼하게 씻었다. 바로 집으로 가서 침대에 드는 거야.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씻었다. 손가락에 수건을 돌돌 말아서 비누칠을 하고 겨드랑이와 사타구니도 꼼꼼하게 비누칠을 했고 발가락 사이사이도 꼼꼼하게 씻었다. 편의점 햄버거로 저녁을 해결하고 집으로 들어와 옷을 갈아입고 침대로 기어 들어갔다. 잠이 어질어질할 만큼 쏟아졌지만 옷을 갈아입는 동안 잠이 또 달아났다. 달아났다고 하지만 멀리까지 가지 않았다. 나는 그것을 알 수 있었다. 이불을 덮고 조금만 있으면 쏟아질 잠이다. 나는 책장에서 책을 한 권 꺼냈다. 술렁술렁 읽을 수 있는 책이어야 한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였다.      


 달리고 있을 때 머릿속에 떠오르는 생각은, 하늘은 떠 있는 구름과 비슷하다, 여러 가지 형태의 여러 가지 크기의 구름, 그것들이 왔다가 사라져 간다. 그렇지만 하늘은 어디까지나 하늘 그대로 있다. 구름은 그저 지나가는 나그네에 불과하다. 그것은 스쳐 지나서 사라져 갈 뿐이다. 그리고 하늘만 남는다. 하늘이란 존재하는 동시에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실체인 동시에 실체가 아닌 것이다. 우리는 그와 같은 넓고 아득한 그릇이 존재하는 모습을 그저 있는 그대로 수용하고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까지 읽고 나서 나는 그대로 잠이 들었다. 더 읽고 싶지만 나는 잠이 오는 것을 그대로 받아들였다. 이제 아침까지 실체인 동시에 실체가 아닌 것처럼 꿈도 꾸지 않고 그대로 Zilch상태로 있다가 아침에 눈을 뜨면 된다.      


 구름은 어째서 같은 모습이 없는 것일까. 나는 하늘에 떠 있는 구름을 올려봤다. 구름이 마치 나의 옆에 있는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그런데 시시각각 변하는 구름 속에 회색 구름이 모양을 유지한 채 나를 바라보는 것 같았다. 나는 높은 곳으로 올랐다. 구름은 여전히 그 모습을 유지한 채 나를 따라오고 있었다. 이상했다. 나는 그때 내가 아주 높은 대관람차 안에 있었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바람막이 같은 것이 설치되어 있지 않았다. 그 회색구름이 나의 곁으로 다가왔다. 맙소사.      


 대관람차는 심하다 싶을 정도로 천천히 움직였다. 이상하지만 대관람차에는 나만 타고 있는 것 같았다. 손님이 아무도 없는 것이다. 어째서 내가 이런 기구에 탔는지 기억이 없다. 대관람차 안에는 쌍안경이 있었다. 나는 그 쌍안경을 들고 밖을 보았다. 저기 멀리 아파트가 보였다. 그 아파트는 내가 살고 있는 아파트다. 그리고 나의 방이 보였다. 방에서는 누군가 움직이는 것이 보였다. 한 사람이 아닌 것 같았다. 여러 명이었다. 어린이들 같았다. 하지만 어린들의 움직임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도대체 나의 집에 누가 들어왔단 말인가. 그때 아이들보다 키가 좀 더 큰 사람이 방으로 들어왔다.


 그 사람은 창 앞에 서서 가만히 있었다. 마치 마네킹처럼 움직임이 거의 없었다. 그런 모습이 실루엣처럼 보였다. 그리고 그 사람은 고개를 약간 뒤로 꺾어서 입을 벌렸다. 그 순간 믿을 수 없는 모습이 나타났다. 아이들 세, 네 명이 그 입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아이들의 크기는 입으로 들어갈 때에는 점점 그 크기가 작아져서 입으로 들어갔다. 나는 심장이 크게 뛰었다.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아이들이 다 한 사람의 몸으로 들어가고 난 후 그 사람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천천히 움직이더니 창의 커튼을 걷었다. 나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 사람은 나였다. 나는 심장이 크게 뛰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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