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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관 Sep 07. 2023

하루키 오마주 소설 2

제목미정


2.


 아침에 눈을 떴을 때 몹시 피곤했다. 꿈에서 나는 심장이 너무 뛰었는데 그게 아침에 눈을 뜨고 나서도 계속되었다. 꿈은 그야말로 악몽이었다. 나는 거울에 내 얼굴을 비쳤다. 머리가 새 하얗게 변해있었다. 한 가닥도 남김없이 하얗게 새 있었다. 눈썹도 하얗게 변해 있었다. 꿈속에서 어린아이 같지 않은 작은 인간을 먹은 사람은 나였던 것이다. 실루엣으로만 보였지만 그 움직임은 확실하게 나였다. 이건 스푸트니크의 연인들 소설 속에 나오는 이야기와 흡사했다. 나는 나의 모습을 본 후 머리가 하얗게 변해버린 것이다. 머리가 지끈거렸다.      

 그런 꿈을 꾸고 일어나면 밤새도록 5세 아이가 몽둥이를 들고 지치지 않고 때린 것처럼 몸 여기저기가 욱신거렸다. 시계를 보니 출근시간이 임박했다. 얼굴만 씻고 옷을 갈아입고 집을 나서려 했다. 침대 옆에는 어젯밤에 책장에서 꺼내서 읽은 하루키 에세이가 있었다. 그 책을 책장에 다시 꽂았다. 집을 나와서 출근길에 올랐다. 버스에서 꾸벅꾸벅 졸았다. 졸다가 깨었을 때 사람들이 힐긋힐긋 나의 머리를 쳐다보았다. 그때 책을 꽂을 때 하루키의 소설책 사이에 에세이를 꽂은 생각이 났다.      


 이상하다. 나는 하루키의 한국출판물은 거의 다 가지고 있는 편이다. 거의 다 있다는 말은 하루키가 쓴 소설이나 에세이는 다 가지고 있지만 한국의 여러 출판사에서는 같은 제목으로 여러 출판사에서 개정판으로 다르게 출판을 해서 전부 가지고 있지는 않았다. 시간이 지나 겉표지만 다르게 해서 재출간하는 경우가 많은 작가가 하루키였다.      


일큐팔사나 태엽 감는 새 같은 경우 3권이나 4권으로 분리되어 있는데 통합본으로 재출간을 하거나 역시 겉표지를 다르게 해서 재출간을 하기도 했다. 하루키의 출간 세계는 아주 넓다. 전부 가지고 있을 필요도 없고, 전부 가질 수도 없다. 그래서 출간된 같은 제목의 다른 버전의 모든 책을 다 가지고 있진 않지만 하루키의 소설과 에세이는 전부 가지고 있다. 하루키의 책이 김영하나 황석영, 이문열의 책 보다 압도적으로 많아서 나는 하루키의 책은 소설과 에세이를 따로 분리해 놓고, 장편과 단편도 따로 분리를 해 놓았다. 그리고 나온 연도순으로 책을 정리해서 꽂아 두었다. 이런 리듬으로 십 년이 넘는 시간 동안 책을 읽고 꽂아두고 했다.      


그런 의미로 에세이가 책장의 소설과 소설 사이에 들어갈 일이 없다. 생각을 해보니 아침에 나는 그 에세이를 소설만 꽂혀 있는 란에 꽂아 넣은 것이다. 나의 착각일지도 모르지만 나는 대체로 이런 일에 실수가 없다. 책을 좋아하고 책을 매일 읽는다면 이런 일을 실수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매일 걷는 것처럼, 아침에 일어나면 이불을 왼쪽으로 펼치는 것처럼, 옷을 입을 때 오른손을 먼저 넣는 것처럼 습관이 된 행동은 그런 실수를 용납하지 않는다.      


 오늘은 집에 들어가서 제일 먼저 그것을 확인해야 한다. 그렇게 생각이 들었다. 회사에 가서 사람들과 인사를 주고받았다. 그런데 사람들이 머리색이 하얗게 변한 것에 대해서 함구했다. 모르는 것일까. 그럴 리는 없을 텐데. 나에게 관심이 없어서 그럴지도 모른다. 오히려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회사에 있는 동안 잠을 제대로 들지 못해서인지 머리가 지끈 거렸고 어딘가에 붕 떠 있는 것 같았다. 흐리멍덩 한 채 점심시간을 맞이했다. 회사에 있는 동안 악몽 때문인지 너무 피곤해서 머리가 몸에서 분리되어 어딘가에 떨어져 있는 것만 같았다. 흐리하고 멍청한 채로 점심시간을 맞이했다.


 동료들은 그런 나에게 와서 안부를 물었다. 김 대리부터, 정이 씨, 윤하 씨까지 나에게 와서 괜찮으냐고 물었다. 내가 회사 생활을 나쁘게 하지는 않은 모양이었다. 그러나 모두가 안부를 물을 뿐이지 머리에 대해서는 다들 모른 척했다. 이상한 일이다. 그런데 기묘한 점을 발견했다. 다들 와서 안부를 묻는데 나의 눈을 보며 말하는 것이 아니라 나의 눈에서 조금 비켜간 곳을 쳐다보며 말을 하는 것이다. 아주 기이했다. 아마도 밤새 뒤척이며 악몽을 꾸느라 피곤해서 그렇게 느꼈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생각하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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