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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관 Sep 08. 2023

하루키 오마주 소설 3

소설


3.


 나는 동료들과 함께 구내식당으로 갔다. 줄을 서서 카레라이스를 받아먹었다. 주기적으로 나오는 카레라이스를 좋아한다. 카레 속에 고기가 있었는데 씹으니 물컹한 것이 돼지고기 같지 않았다. 젓가락으로 들어서 보니 카레가 묻어 있었지만 내가 늘 봐오던 그런 돼지고기 같았다. 하지만 씹으니 물성이 전혀 돼지고기 같지 않았다. 나는 동료들에게 카레 안에 들어있는 고기가 무슨 고기냐고 물었다. 동료들은 무슨 그런 뚱딴지같은 소리를? 하는 표정으로 나를 보더니 업무에 관한 이야기를 했고 나도 얼떨결에 동참하게 되었다.


 카레에 들어있는 고기는 물컹물컹, 흐물렁 거리는 식감이었는데 목으로 넘어갈 때는 또 목에 꽉 끼어서 그대로 꿀꺽하고 기도 밑으로 떨어졌다. 2주마다 한 번씩 나오는 카레라이스에서 이런 맛이 나는 고기를 먹은 건 처음이었다. 아무래도 밤에 잠을 자면서 꾸는 악몽 때문에 몸에 무리가 온 것이다. 그래서 입맛까지 느껴지지 못하게 된 것이다.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꿈속에서 나는 고립된 곳에서 겁에 질려 벌벌 떨고 있다가 죽음이 직면했을 때 잠에서 깨어났다.      


 아침에 눈을 뜨면 다행인 동시에 다시 시작되는 현실의 악몽 때문에 불행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피곤한 채로 회사에서 업무를 쳐내야 한다는 피곤함이 먼저 들어 버려서 힘들었다. 다행이면서 불행하다. 이게 내가 요즘 평소에 느끼는 기분이다. 업무에 복귀를 해서 오후 업무를 하고 있는 내내 계속 집안의 책장이 신경이 쓰였다. 덕분에 기재해야 할 란에 숫자를 잘못 기재하는 바람에 야근을 하게 되었다. 정말 지옥이 도래했다. 도대체 숫자 하나 틀렸다고 해서 처음부터 다시 작성을 해야 한다니. 이런 비효율적인 방법으로 일을 하고 있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하지만 나 빼고는 모두가 이 믿기지 않는 현실에 적응을 하고 있었다.


 인간이라면 숫자에서 벗어날 수 없다. 숫자는 태어나면서부터 물려받는다. 이름처럼 말이다. 이름과 다른 것은 숫자는 일종의 형태변이를 한다. 집을 이사하면 주소의 숫자가 변한다. 키와 나이, 아이큐 같은 것들이 전부 숫자로 낙인을 찍어 놓는다. 어떤 숫자는 사람의 척도를 지정하기도 한다. 월급이나 주식, 부동산 같은 시세도 전부 숫자다. 시간이 지나면서 환경이 바뀌면 숫자 역시 형태가 변이 한다. 세상에서 중요한 건 글자가 아니라 숫자일지도 모른다. 모든 것이 수치로 나타나고 숫자로 표기가 된다. 나는 그 사이에서 점점 고립되고 있었다.      


 오늘도 야근을 하고 집으로 왔다. 저녁은 서브웨이로 때웠다. 집으로 오자마자 나는 책장을 먼저 둘러봤다. 내가 달리기에 관해서 읽은 하루키의 에세이는 에세이들이 있는 책과 책 사이에 꽂혀 있었다. 나는 다시 한번 더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분명 나는 소설과 소설 사이에 꽂아두고 집을 나왔다. 책장의 책들은 소설은 소설대로, 그리고 장편, 단편 소설로 나뉘어 있고 에세이도 따로 분리되어 있어서 집요하리 만치 책을 빼내면 빼낸 곳에 집어넣는다.


 그런데 아침에 잘 못 꽂은 기억이 있다. 지금 이렇게 소설끼리, 에세이끼리는 이상함이 없었다. 하지만 이상했다. 소설은 소설대로 꽂혀 있었지만 장편 소설 같은 경우 출간된 연도순으로 꽂아 두었다.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가 제일 앞에 있고 그다음에는 ‘양을 쫓는 모험’이 있고 그다음에는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가 꽂혀 있어야 하는데 ‘상실의 시대’가 두 번째에 꽂혀 있었다. 분명 내가 꽂아놓은 순서대로 꽂혀 있지 않았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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