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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관 Sep 09. 2023

하루키 오마주 소설 4

제목미정


4.


 이 말은 집 안에 누가 들어왔다는 말이다. 나는 집 안을 둘러보았다. 손에는 칼을 들었다가 다시 내려놓았다. 칼을 휘두를 자신은 없었다. 도대체 내가 칼을 과일을 깎는 것 이외에 사용하려고 손에 쥐다니.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만 같았다. 잘 설명할 수 없는, 어떤 알 수 없는 무엇이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집에서 일어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방구석에 세워둔 오래된 야구방망이를 들었다. 칼보다는 이쪽이 훨씬 낫다. 야구방망이 역시 이런 식으로 휘두르려고 손에 쥐기는 처음이었다. 살면서 처음 겪는 일들은 몇 번이나 당할까. 나는 천천히 집을 둘러봤다. 하지만 없어진 물건 같은 건 없었다.


 적어도 내가 확인하기에는 그랬다. 누군가 집으로 들어와서 무엇을 가지고 가지는 않았다. 사실 집 안에 값이 나갈 만한 건 거의 없었다. 집에서 밥도 잘해 먹지 않아서 주방기기도 없고 식품도 컵라면 몇 개가 있을 뿐이다. 어쩌다 과일, 그중에서 배를 구입하면 칼로 깎아 먹을 뿐이다. 그 외에 사과나 참외 같은 과일이나 채소는 그저 잘 씻어서 껍질 째 먹었다. 내가 사는 집에서 무엇인가를 가지고 가야 한다면, 하고 아무리 생각을 해도 없다. 티브이도 없고 흔한 컴퓨터 한 대도 없기 때문이다. 없어진 것이 없다.  

    

 그렇다면 왜 들어왔을까. 어떻게 집 안에 들어왔을까. 누가 들어왔다고 해도 들어온 사람이 책장의 책만 빼서 읽고서는 다시 집어넣어 놨다? 이건 말이 안 된다. 책은 도서관에서 읽으면 된다. 도서관에 훨씬 많은 책이 있으니까. 굳이 나의 집에 몰래 들어와서 그런 수고를 할까. 이상해도 한참 이상하다. 몹시 이상하고 굉장히 이상하다. 기묘하고 기이하다. 책장에 꽂힌 하루키의 책들은 순서에 있어서 내가 꽂아둔 순서와 달랐다. 분명 누군가가 장난을 하거나 나를 놀려줄 심산으로 이렇게 해 둔 것 같았다. 그렇지 않으면 이런 일이 가능할 리가 없다. 그렇다면 이제는 누가? 점점 미궁 속이다. 머리가 아팠다. 한 순간에 바늘로 머리의 이쪽을 반짝하며 찌르는 것 같았다. 아무리 둘러봐도 누군가가 집으로 들어온 흔적을 찾을 수 없고 없어진 것도 없다. 그렇다면 책이 원래대로 책장에 꽂혀 있지 않은 것은 내가 그렇게 했다는 말이다.      


 하지만 내가 그동안 몸에 밴 습관을 억지로 무시하고 왜 이렇게 꽂아 두었을까. 피곤해서? 아니다. 이전에도 피곤했던 적은 많았다. 피곤하다고 해서 책을 아무렇게나 꽂아두곤 하지는 않았다. 알 수 없다. 생각하기를 포기하고 씻고 침대에 누웠다. 먹은 것이 서브웨이 샌드위치가 전부라 배에서 허기가 몰려왔다. 하지만 일어나서 컵라면을 먹거나 몸을 움직일 생각이 들지 않았다. 이상한 일에 대해서 생각을 하다가 곧바로 잠이 들었다.      

여기는 어떤 마을이다. 스산하고 해가 떠 있지만 구름에 가려 희미하게 보였다. 바람은 불지 않지만 몹시 추운, 냉기가 가득한 마을이었다. 사람들이 보였다. 하지만 그들의 얼굴에서 표정이라는 것이 전부 빠져나가 있었다. 그리고 그들에게는 그림자가 없었다. 여기 마을 사람들은 그림자를 억지로 떼어내고 지냈다. 그림자를 떼어내고 점점 마음을 잃어버린다. 그래서 감정이 소거된 채, 차가운 겨울을 보내는 것이다. 이 마을은 세계의 끝에 있는 마을이다. 나는 그 마을에 들어와 버린 것이다. 여기서 빠져나가는 건 너무나 어렵다.


 갑자기 숨이 막혔다. 허리를 구부리고 숨을 할딱거리고 있으니 어느새 문지기가 와서 나에게 물을 주었다. 물을 좀 마시면 괜찮아지지. 누구나 이 마을에 처음 오면 겪는 일이야, 문지기가 말했다. 그의 말은 어쩐지 허공에 매달려 웅웅 거리는 공 같은 목소리였다. 울리는데 울리지 않는, 메아리 같은데 음절이 끊어져 있는, 그런 묘한 소리였다. 저를 좀 내보내주세요. 저는 여기 마을과 어울리지 않는 사람입니다. 그러자 문지기는, 누구나 그런 말을 한다네, 하지만 이미 정해져 있는 일이야, 정해진 거라구. 이미 정해져 있다는 건 그렇게 할 수밖에 없다는 말이지. 자네의 그림자는 내가 잘 잘라서 저기 그림자 광장 안에 넣어 두었지, 하루에 한 번은 그림자를 만나게 해 주지.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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