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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관 Sep 10. 2023

하루키 오마주 소설 5

소설


5.


 나는 그 말을 듣자 정말 인생이 끝이라는 생각에 읍소하듯 빌었다. 저기, 저는 이 이야기에, 아니 마을의 인원이 아닙니다. 저는 서브웨이 샌드위치만 먹으면 됩니다, 여기 마을의 식량을 먹을 수는 없어요.


 문지기는 듣기 싫다는 표정을 지으며, 괜찮아, 그런 것은 네가 신경 쓸 일이 아니야, 자네는 이곳에서 주어진 일만 하면 돼. 나는 이 문지기가 나에게 일각수의 꿈 읽기를 시키려는 모양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려면 이 마을의 기운이 묻어 있는 기묘한 칼로 나의 눈을 찌를 것이다. 그러고 나면 며칠 동안 빛이라는 걸 보지 못한다. 그러면 나는 이 마을을 영영 빠져나갈 수 없다.


 여기서 빠져나가야 한다. 날이 갈수록 꿈이 점점 현실 같아졌다. 나는 문지기가 잠든 사이에 몰리 직공지구에서 그림자 광장으로 가서 그림자를 데리고 나가려다 문지기에게 걸렸다. 문지기는 괴물 같은 얼굴로 나에게 돌진했다. 나는 기진맥진한 그림자를 데리고 도망가다 그림자가 넘어졌고 문지기가 몽둥이를 휘두르는데 잠에서 깨어났다.      


 젠장, 꿈이 왜 이다지도 생생할까. 넘어졌을 때 무릎이 아픈 것도 진짜처럼 아팠다. 몸을 일으키니 몸을 정말 두드려 맞은 것처럼 욱신거렸다. 이럴 수가. 오전 9시가 다 되었다. 몸이 너무 피곤했다. 밤새도록 잠은 거의 들지 못한 것 같았다. 이번에는 9세 아이다. 9세 아이가 나를 샌드백 삼아 여기저기 몇 시간 동안 마구 때린 것 같았다. 빨리 일어나야 한다. 회사는 이미 지각이다. 그동안 몇 번 지각을 했지만 오늘의 지각은 어처구니가 없다. 늦잠을 자서, 가 이유였다.


 침대에서 일어나니 머리가 깨지듯 아파왔다. 마치 문지기에게 머리를 한 대 맞은 것 같았다. 머리는 감지 못하고 수염도 밀지 않고 그대로 옷을 입고 현관으로 갔다. 책장을 무심결에 한 번 봤는데 거짓말처럼 ‘해변의 카프카’ 1권이 뒤집어져 꽂혀 있었다. 왜, 어째서?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집을 나서야 했다. 일각을 다투는 출근시간 때문에 나는 영화의 슬로 모션처럼 뒤집혀 꽂혀있는 모습을 보고 집을 나왔다. 출근하는 내내 그 생각을 하느라 졸지도 못했다.


 몸은 천근만큼 무겁고 머리는 사고라는 걸 하기 싫어했다. 눈앞은 뿌옇게 보이고 배가 고픈 건지도 잘 알 수 없었다. 뇌의 여러 구간이 정지한 것만 같았다. 더 이상 너를 주인으로 두고 일을 할 수가 없군. 라며 두 손 두 발을 뇌가 다 들어 버린 것만 같았다.      


 오전 업무 시간에 데스크 앞에 앉아서 멍하게 있다가 업무에 또 차질을 주었다. 점심시간을 10분 앞두고 나는 불려 갔다. 팀장에게 크게 한 소리 들었다. 게다가 뭔가를 써야 했다. 경위서 같은 것 말이다. 어제오늘 내가 회사에 준 피해에 대해서 신랄하게 들었다. 나는 딴생각에 빠져 있다가 동료와 회사에 잘못과 손해를 입혔다. 팀장은 그렇게 말했다. 팀장이 그렇다고 하고 그런 것이다. 회사에서 팀장의 말은 곧 법이다. 어쩔 수 없어, 같은 말은 회사에 입사하고 나서 아주 많이 듣는 말이다. 하루라도 안 듣는 날이 없다.


 야근은 안 되겠는데요?라고 하면 어쩔 수 없어, 오늘 까지는 무리입니다,라고 해도 어쩔 수 없어. 팀장은 그렇게 정해진 것이라고 했다. 정말 그렇게 정해져 있는 것일까. 팀장은 나에게 며칠 전부터 왜 그러냐고 했다. 팀장은 며칠 전부터 회사에서 내가 어떻게 하고 있는지, 또 평소와 다르게 업무처리를 어떻게 하는지 5분간에 걸쳐 세세하게 이야기를 했다. 나는 팀장에게 실은 잠을 못 자서 컨디션이 별로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점심시간이 되었다.      


 동료들은 구내식당에 가지 않고 예약해 둔 식당으로 갔다. 나에게도 가자고 했지만 어쩐지 입맛이 없었다. 가서 먹지 않으면 돈만 아깝다. 아침도 먹지 않았지만 배가 고프지 않았다. 그래도 오후 업무를 보려면 뭐라도 먹어야 할 것 같아서 서브웨이 샌드위치를 샀다. 사무실에 와서 먹으려다 서브웨이 근처 작은 공원으로 갔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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