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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관 Sep 11. 2023

하루키 오마주 소설 6

소설


6.


 공원에 있는 벤치에 앉아서 샌드위치를 한 입 베어 먹었다. 한 입 먹고 나니 이상하게도 공허했다. 무엇인가를 먹고 있지만 도대체 언제까지 먹어야 할까. 먹는 행위 자체가 너무 지겹다고 느껴졌다. 인간은 죽을 때까지 무한반복의 연속으로 지낸다. 어떤 사람은 여행을 자주 가고, 돈이 많아 여러 리조트에서 호화롭게 지낸다 해도 매일 먹고 자고 일어나서 대소변을 본다. 이런 무한반복에는 지겨워하지 않는다.


 그건 마치 만취가 되면 다른 모든 기억은 없지만 집으로는 꼬박꼬박 잘 찾아 들어가는 것과 비슷할지도 모른다. 무한반복의 굴레, 이 궤도에서 떨어져 비록 한 순간이지만 빛을 내고 사라질 수 있다면 나는 그 화려한 소멸에 동참할 수 있을 것인가. 생각을 하다 손에 들고 있는 샌드위치를 옆에 놔두었다. 차가운 아메리카노를 한 모금 마셨다. 일주일만 지나면 가을이 올 것 같았다. 하늘이 그걸 말해주고 있었다. 이렇게 계절 또한 무한반복을 한다. 그래도 해가 있는 야외는 아직 덥다. 아직 더운 게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왜 그런지는 몰라도.

      

 이 샌드위치 안 먹을 거면 내가 먹지.라고 옆에서 누군가 말했다. 생각에 몰두해 있느라 옆에 누가 왔는지도 몰랐다. 옆을 보니 이 더운 날 양가죽을 둘러쓰고 얼굴은 도대체 씻은 지가 언제인지도 모를 한 남자가 있었다. 그의 얼굴 피부는 마치 몽골의 평야를 한 번도 벗어나지 못한 사람의 피부처럼 햇빛에 그을릴 대로 그을려서 반질반질했다. 나는 손으로 먹으라는 손짓을 했다.


 이 더운데 옷이 없는 것일까. 양가죽을 둘러 쓴 사나이는 샌드위치를 오물오물 먹으며, 양가죽을 벗으려고 해도 이젠 그럴 수 없다고 말했다. 맙소사. 나는 그저 생각을 했을 뿐인데 나의 생각을 어떻게 알았을까. 그는 샌드위치를 야금야금 먹어치우며 이 샌드위치는 맛이 없다고 했다. 그래도 서브웨이 샌드위치라고 나는 말했다.      

 그는 그게 뭐 어떻다는 거지? 같은 표정을 한 채 오물오물 샌드위치를 씹어 먹었다. 나는 마시던 커피를 먹겠냐고 물었다. 양가죽을 둘러 쓴 사나이는 그렇다고 했다. 한 모금 마신 그는 이 커피는 양박사가 좋아할 만한 맛이라고 했다. 양박사요? 그래, 양 박사 말이야, 양에 대해서는 뭐든 다 알고 있는 양반이지. 그는 꽤나 ‘시’ 같은 인간이야, 그래서 아주 구체적이지. 나는 그 양반과 친구야. 우린 함께 많은 일들을 했어. 그는 꼭 90세가 넘어서 죽었다네. 그때가 꼭 어제 일처럼 생각 나.


 나는 그때가 언제인지 물었다. 1964년의 일이라고 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도대체 양가죽을 둘러 쓴 이 남자는 몇 살이란 말인가. 악몽을 꾸면서 몸이 피곤해서인지 자꾸 이상한 일들이 주위에서 일어나고 있다. 고개를 돌려 그의 나이에 대해서 한 마디 하려고 했는데 옆에는 아무도 없었다.


 샌드위치는 먹고 포장지만 옆에 놓여 있었다. 양가죽을 둘러 쓴 남자는 올 때에도 소리 소문 없이 오더니 갈 때에도 그렇게 소리도 내지 않고 잽싸게 어딘가로 가버렸다. 그 무거운 양가죽을 쓴 채로, 나의 착각일까, 양가죽 사나이는 밤에 잠을 제대로 못 들어서 공원 벤치에서 낮잠을 잔 것일까. 아니다. 샌드위치는 먹고 없었다. 그리고 포장지에는 ‘우리는 모든 것과 제로 사이에 끼인 순간적인 존재 – 양사나이’라고 적혀 있었다.


 내가 본 것은 실재인 것이다. 양의 가죽을 덮어쓴 남자가 내가 먹던 샌드위치를 날름 먹어치우고 내가 생각에 빠져있는 사이에 사라져 버린 것이다. 양사나이는 현실에 존재하고 있었다. 사람들 눈에 띄지 않을 뿐 어딘가에서 예전의 모습을 한 채 덮어쓴 양가죽이 피부에 들러붙어 이젠 피부가 되어 여전히 살아가고 있다. 양사나이는 시간의 교차를 뛰어넘어 버렸단 말인가. 이게 말이 되는 일인가. 하긴 말이 안 되는 이야기는 뉴스에 매일, 끊임없이 나오고 있다. 이상한 나라의 엘리스에서처럼 미치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는 세계가 되었다.


 갑자기 시원한 맥주가 마시고 싶었다. 목이 꽉 막힐 정도로 한 번에 한 캔을 그대로 때려 넣고 싶었다. 이상한 세계에 살아가고 있어도 이상하지 않은 지금이다. 미드 ‘베이츠 모텔’을 보면 도대체 누가 제대로 된 인간일까 할 정도로 인격이 뒤틀리거나 변덕스러운 사람들이 나온다. 모두가 이상하니까 오히려 애초에 나쁜 인간으로 나오는 사람이 제대로 된 인간이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인간을 가장 많이 죽이는 생물에 인간이 4위 안에 들어있다. 그런 세계인 것이다. 인간이 인간을 죽이는 이유는 생존과도 무관하다. 그저 재미로 죽이는 경우가 있다. 제대로 미쳐 있는 세계다.


 베이츠 모텔의 주인공은 노먼 베이츠와 노마 베이츠다. 아들과 엄마가 주인공이다. 엄마와 아들은 모자지간을 뛰어넘는 기묘한 관계다. 얼굴과 얼굴 사이가 아주 가깝고 자주 끌어안는다. 아들에게 여자 친구가 생기면 엄마가 기묘한 질투를 하고 엄마에게 남자가 접근을 하면 아들이 질투를 한다. 아들이 그런 마음을 가지고 있다는 걸 알면서 표시하지 않으려 하는데, 실금 하듯 언뜻언뜻 그런 모습을 흘린다. 아들은 그런 엄마를 알고 있지만 그걸 알고 있는 자신을 내비치지 않으려 한다. 그러나 엄마가 자신의 그런 모습을 알고 있으면서 언급하지 않는 것에 대해서 아들은 또 분노한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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