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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의 하늘보다 오늘의 하늘이 10

286

by 교관


286.


“클라이언트의 중요한 작업분량은 새벽에 당신이 사장님의 컴퓨터로 보내주어서 다행이라고 하더군요. 전혀 진척이 없을 것 같은 교통체증도 언젠가는 풀리듯이 이렇게 밤이 되니 모두들 퇴근을 하고 곳곳에서 사랑을 나누잖아요”라고 말하는 는개는 또 한 모금의 와인을 마셨다. 마동은 아무리 생각해도 새벽에 자신이 작업을 한 기억은 없었다. 당연한 것 아닌가. 하고 생각을 했다. 조깅을 하고 들어와서 옥상으로 올라간 기억밖에 나지 않았다.


그 와중에 나는 언제 작업을 해서 오너에게 보내줬단 말인가. 오너에게 클라이언트의 꿈 리모델링작업이 들어갔다면 그건 정확하게 내가 한 것이 아니었다. 나의 내면에 존재해 있는 어떤 무의식이 작업을 한 것이다. 언제 그런 일을 순식간에 한 것일까. 레이아웃을 정리하고 조각나있는 꿈의 스크린을 하나로 그러모으는 작업을 하는 것도 시간이 오래 걸리는데 그 짧은 시간에 작업을 해서 오너에게 보냈단 말인가. 대칭의 나와 비대칭의 내가 대립을 했고 내면 속의 또 다른 나의 변이 때문에 나는 혼란스럽기만 했다. 휴대전화에도 오너에게서 온 부재중 전화는 없었다. 모르는 번호와 회사의 전화번호, 는개의 부재중 전화번호만 깜빡거렸었다. 나는 내 안에 내재하고 있는 자아가 몇 개인지 그 자아가 어떤 모습으로 변이 하는지 알 수 없었고 이젠 더 이상 궁금하지도 않았다. 하지만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은 현실이다. 그레고르처럼 이것은 현실에 직면한 것이다. 이제 가족에게 더 이상 오빠로서 아들로서의 그레고르가 아닌 것이다. 그레고르는 자신이 처한 현실을 인지하고 점점 자아가 사라져 갔다. 어느 날 갑자기 갑충이로 변해버린 그레고르와 나 자신을 나란히 세워놓고 봐도 다를 건 없었다. 새로운 자아의 개체에 대한 발로가 어디서 나오는지 나는 전혀 종잡을 수 없었다. 형사가 내일이면 찾아올 것이다. 최원해는 도대체 어떻게 된 것일까. 어디로 사라진 것일까. 두려운 것은 최 부장이 어떻게 된 것에 분명히 내가 관여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누가 말해주지 않아도 알 수 있는 것이다.


“어머 비가 와요. 창밖을 보세요. 비가 창에 부딪혀요. 당신의 집에는 형광등이 없어서 좋아요. 형광등불빛은 뭐랄까. 가열차게 어떤 작업을 요구하는 빛 같아요. 책이라도 반드시 봐야 할 것 같거든요. 이렇게 노란빛의 조도가 낮은 빛은 사람을 허물어뜨리는 빛 같아요. 잠이 와요. 저 좀 잘게요.”


작은 하품을 하고서 는개는 마동의 품에 안겨서 잠이 들었다. 숨을 쉴 때마다 잘 다듬어진 가슴이 살짝 움직였다. 마동은 휴대전화 리모트컨트롤 애플리케이션으로 노트북의 전원을 껐다. 생각지도 못한 돈이 생긴 화면 속의 에바가 화면에서 갑자기 뚝하며 사라졌다. 요즘은 좋다. 휴대전화로 모든 것이 가능하다. 이렇게 모든 것이 가능한 시대에 마동은 역행하는 기분이 들었다. 점점 강을 거슬러 올라가는 연어처럼 시간을 거꾸로 헤엄쳐가는 탐탁지 않은 방황을 하고 있는 것이다. 에어컨을 틀지 않았지만 는개는 땀을 흘리지 않고 새근새근 새끼 고양이처럼 잠에 빠져들었다. 마동은 는개의 얼굴을 보기 위해서 얼굴 위의 머리카락을 살짝 걷었다. 는개는 산모배속의 아기처럼 몸을 꼭 말고 마동의 가슴에 더 바짝 붙었다. 마동은 휴대전화를 터치해서 실내의 조도를 더욱 낮췄다.


두두 두두둑. 빗방울이 창을 때리는 소리가 크게 들렸다. 오케스트라에서 북을 치듯 울렸다. 아침이 찾아오면 마동의 감기는 더욱 지독해질 것이다. 점점 몸이 말라갈 것이다. 문득 햇빛에 바싹 말린 식용 개구리가 생각났다. 수분이 다 빠져나가버린 개구리는 더 이상 개구리가 아니었다. 개구린데 개구리가 아니라고 하는 것은 어딘가 이상했다. 태양을 쳐다보지 못하고 추위를 더 느낄 것이며 구토도 심해질 것이다. 피부는 거칠어지고 뇌의 여러 구간과 핵에서 분열이 일어날 것이다.


의사가 말한 것처럼 마동의 뇌기능은 일반인들과는 다르게 변이하고 있었다. 마동의 뇌는 보통 인간의 뇌 속에 있는 뉴런이나 시냅스를 두 배나 많이 가지고 있다. 마동은 자신의 뇌에 필요 이상으로 꽉 들어찬 뉴런과 시냅스에 대해서 생각했다. 자의력으로 뇌의 공간감을 나뉠 수 있다고 의사에게 들었다. 마동자신이 전두엽에서 하는 일을 두정엽에서, 두정엽에서 하는 일을 측두엽에서 할 수 있다고 했다. 이렇게 뇌가 구간에서 확실하게 하는 일을 서로에게 협력하는 듯 보이지만 결국에는 강요와 질서를 요구하고 마음의 순수한 부분을 잠식하게 된다. 무의식 속에 숨어 지내던 이드를 불러내게 된다는 것이다.


이드라는 것은 어떤 모습으로 나타나는 것일까.


그런 세계와는 무관하게 는개는 마동의 가슴에 아기처럼 안겨 행복한 얼굴을 하고 잠들어 있었다. 행복하게 잠든 모습과는 달리 그녀의 등뼈는 애처롭기만 했다. 마동은 는개의 등을 쓰다듬었고 는개가 살며시 미소를 지었다.


그녀는 몇 년 동안 어떻게 참았을까. 왜 하필 오늘에서야 이야기를 꺼내놓았을까. 좀 더 일찍 이야기를 했더라면 좋지 않았을까.


미리 했더라도 어쩌면 달라지는 건 아무것도 없을지도 모른다. 상처받는 깊이만 더 깊어질 뿐이다. 마동은 3일 전부터 마동자신에게 끊임없이 질문을 하고 있다. 물론 답은 목신 판이 어딘가에 숨겨놓아서 절대 찾을 수 없었다. 그렇다고 해서 질문을 멈출 수는 없었다. 질문을 하지 않으면 마동자신은 그대로 아파트에 귀속된 노인처럼 될 것만 같았다. 마동은 그동안 사용하지 않아 외계에서 온 물품처럼 보이는 모니터로 티브이를 틀었다. 집에 티브이는 없었지만 17인치 컴퓨터 모니터가 거실에 있었다. 그 속에서 뉴스가 나오고 뉴스에서는 마동이 살고 있는 아파트의 소식을 속보로 내보내고 있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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