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없어졌지만 ‘함 사세요~’하고 동네에서 외치고, 집으로 들어오기까지 발밑에 지폐 한 장씩 놓던 시절이다. 그때는 ‘이 집에 딸 시집가요’를 사방에 알리는 형식이었다. 그 돈 받아서 신랑 친구들은 호텔서 진탕 술 마시고 예식에 늦게 오는 실례를 하기도 하고, 그 돈으로 신랑에게 선물도 사주고~
오징어 얼굴에 눈구멍도 뚫어 가면처럼 쓰고 친구 여러 명이 '함 사세요'를 외치면 동네에서 아이들이 주루루 나와서 낄낄 웃기도 했던! 박통 돌아가셨을 때 통금이 있어서 친구네 함 들어오는 날 늦게 신랑친구들이 신부집에 들어와 난 늦게 집에 가느라 마음이 조마조마했던 일이 생각난다.
'그때를 아십니까' 시절 같다.
우리 집에는 곧장 들어오기로 했다. '실랑이 부리다가 혼사 깨질 일 있냐'고 으름장을 놓으면서. 기억도 가물가물하다. 그분도 나처럼 늦게 공부하고, 학원 선생도 하고, 살려고 노력해서 아들 둘도 놓고 잘 살더니...
아니 잘 살지 못했으니 이혼했겠지. 아내가 물리실에 근무한 다했는데~
내 역사의 앞부분을 열었던 사람인데 하늘 갔다니 기분이 묘하다. 우리도 순서가 점점 다가오는 것 같은 기분? 남편도 좀 다르게 느껴지나 보다. 혼자 다녀오겠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