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간 출사가 끝나고 다시 숙소로 돌아왔다. 일곱 명의 게스트와 일상님까지 8명이 다이닝 룸에 둘러앉았다. 와인을 잘 아는 희희님이 와인 마시는 법을 알려주었다. 와인도 다른 술처럼 온전히 한 잔을 비우고 다음 잔을 따르는 건 줄 알았는데, 와인은 첨잔을 하면 더 맛있어진다 했다.와인병을 들자 원샷을 하려 했던 것이 부끄러웠다. 다이닝룸과 조명은 와인과 잘 어울렸다. 디귿집 한옥의 다이닝룸을 바깥에서 본다면 정말 와인바인줄 착각했을 것 같다.
다들 블로그와 인스타그램 등 헤비 sns 유저였기 때문에, 와인을 따르고, 함께 건배를 할 때에도 동영상과 릴스가 빠지지 않았다. 함께 만든 '짠메랑'과 '릴스'에 서로를 태그 하다보니마치 오래된 진짜 친구들 같았다.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모여서인지 여행지에 대한 대화도 즐거웠다. 혼자 가기 좋은 여행지에 대한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다들 기억에 남는 여행을 이야기했고, 여행지 얘기는 또 다른 공통 관심사인 출사와 운동 등으로 넘어가서 대화가 정말 물 흐르듯이 흘러갔다.분위기가 무르익고 간단한 게임도 했는데 정말 많이 웃었다. 딱 아쉬움을 남긴 채 강제 취침을 하게 되었다. 나는 피곤했고 따뜻한 온돌바닥과 침구가 너무 포근해서 바로 잠에 빠져들었지만 다른 방 게스트님들은 밤새 소곤소곤 얘기하다 잠들었다 했다.
총닝, 아침의 러닝
생각 외로 너무 편안한 밤을 보내고 좋은 컨디션으로 일어났다. 총닝은호우총, 금관총, 금령총이 있는총을 도는 러닝이라는 의미라고 했다. 총닝은 7시 30분에 예정되어 있었는데 산책보다는 카메라를 들고 출사를 가고 싶었기 때문에 원래는 산책을 갈지 고민이었다. 하지만 막상 7시 반이 되자 카메라를 챙겨 산책 대열에 합류하게 되었다. 아침 산책 참여는 자유로운 사항이었지만 새벽 출사를 나간 게스트 한 명을 빼고 나머지는 신기하게도 전부 참여했다. 다들 너무 부지런해서 놀라웠다.
대릉원 쪽으로 가서 한 바퀴 돌고 돌아오게 되었는데, 고분 위쪽에 상당히 오래되어 보이는 고목이 여러 그루 자리 잡고 있었다. 마치 누구인지 모를 고분의 주인이 나무로 환생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길 가다가 만난 동네 주민분들이 더 좋은 산책길도 알려주셨지만 시간이 맞지 않아 가지 못해 아쉬웠다.
함께한 두 번째 식사
헤어지기 전에 리니 님이 가고 싶어 했던 한정식 집에서 점심식사를 하기로 했다. 골목 안쪽에 있는 한옥 식당이었는데, 식당이 평소보다 한 시간 늦게 열어서 가게 앞에서 줄을 서서 기다렸다. 도시락 대량 주문이 있어서라고 하셨는데 옮기는 모습을 보니 거의 40~50인분 정도 도시락을 주문한 것 같았다. 신기하게도 우리 뒤로 줄이 점점 길어졌고 기대감도 점점 높아졌다.
마침내 첫 손님으로 입장한 우리는 햇볕이 잘 드는 창가 자리에 앉았다. 소불고기와 제육볶음, 그리고 대략 열 가지가 넘는 반찬들까지. 정갈하고 입맛을 돋우는 음식들이 나왔다. 지어진 밥에 문제가 생겨서 밥을 새로 해서 내어주신다고 했는데 그래도 금방 따뜻하고 윤기가 흐르는 맛있는 밥이 나왔다. 어떤 문제였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무 밥이나 대접하지 않겠다는 장인정신이 느껴져서 오히려 좋았다. 밥이랑 반찬들이 너무 맛있어서 한 두입 먹자마자 "저는 두 그릇 먹을래요!"라고 외쳤다. 하지만 아쉽게도 배가 불러 두 그릇은 먹지 못했다. 특히 간장 계란 조림이 일품이었고, 메인 메뉴 두 가지는 정말 최고였다.
신라의 도슭
도슭은 '도시락'이라 한다. '라선재'에서 만들어주신 도시락을 마루에 모여 앉아서 설명을 들으며 먹었다. 대표님이 직접 바쁜 와중에 오셔서 설명을 해주신 점이 감동이었고 정말 좋은 시간이었다. 신라 귀족들은 고기와 술 같은 음식을 먹었지만 백성들이 산과 들에서 나는 재료들로 만든 것 같은 느낌의 도시락이었다. 가을과 잘 어울리는 보자기로 예쁘게 포장된 나무 도시락은 일회용품을 줄이고자 하는 노력도 담겨있었다. 잡채와 새우구이, 은행구이, 산적, 전 등으로 구성된 먹기 아쉬운 예쁜 도시락을 받았다.
호스트 일상 님이 도시락 메뉴 선정과 라선재 도시락을 신라에 도슭 프로그램으로 들여오느라 무척 애를 쓰셨다는데, 그 노력이 느껴져서 도시락이 더 소중하게 느껴졌다. 식사를 마치고 식었지만 여전히 바삭하고 갓 구웠을 땐 정말 맛있었을 것 같은 매작과와 어젯밤 마셨던 감잎차로 티타임을 가졌다. 신기하게도 감잎차가 더 맛있어졌다. 일상님이 좀 더 차를 더 맛있게 우리기 위해 방법을 바꾸셨다고 했다. 새로 오신 게스트 두 분도 함께해서 더욱 즐거운 시간이었다. 경주의 오후는 무척이나 따스했다. 신라의 도슭 프로그램을 끝으로 경주와 이상한 일상을 떠나야 했는데 너무 아쉬웠다. 이토록 완벽한 혼행이 오랜만이었기 때문이다. 로컬 여행, 마음이 잘 통하는 여행자들과의 여행이라서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