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팠다. 그냥 아팠다는 설명으로는 부족한... 무릎이 꺾이고, 허리가 꺾이고, 머리가 꺾이는 무기력함을 느꼈다. 가슴 중앙을 찔러대던 묵직한 통증은 밤낮을 가리지 않았고, 두피의 따끔거림에 손을 대기 두려웠다. 다만 고열과 기침을 동반하지 않았기에 식은땀과 오한의 반복에도 동네 병원을 오고 가며 주사와 링거에 의존하며 이 주 가까이를 보냈다. 심한 몸살이라고 했다... 과도한 스트레스가 주된 원인이라고...
스페인을 다녀왔고, 미뤄두었던 자격증 시험을 치고, 소논문 등재를 마치고, 학위 논문을 마무리하는 과정에서 가족을 챙기고 글을 썼다. 물론 그 사이 소파 위에서 혹은 의미 없는 TV 시청 속에서 흘려 보낸 시간들도 자리했겠지만... 나름 치열한 몇 년간의 시간을 보냈다고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다.
코로나로 모든 성장과 순환이 멈춘 듯한 2020년, 나는 그간의 과정을 마무리하고자 고군분투했고... 감사하게도 어려운 경계를 넘어설 수 있었다. 하지만 마무리가 가까워오며 그간의 지친 몸과 마음이 신호를 보내오기 시작했다. 머리카락과 피부는 탄력을 잃어갔고, 소화는 어려웠으며, 정신없이 잠이 쏟아지거나 아니면 뜬 눈으로 밤을 지새워야 하는 날들이 이어졌다. 그리고는 식은땀과 두통에 몇 걸음을 옮기기도 어려웠다.
그렇게 맞이한 지난 일요일 저녁, 전날 먹은 죽조차 제대로 소화시키지 못해 헛구역질과 가슴 통증으로 잠을 이루지 못한 나는 대학병원 응급실을 찾았다. 주말이라 동네 병원은 문을 열지 않았고, 그간의 치료에도 점점 심해지던 통증에 불안감이 깊어졌기 때문이기도 했다.
응급실 입구에서 체온을 측정하던 간호사에게 고열로 격리병동으로 이동해야 한다는 말을 들은 나는 당황했다. 그간 식은땀과 오한을 오고 가도 다행히 열은 없다고 했었는데... 혹 코로나에 감염되었다면 나의 주변 이들이 걱정이었고, 생각보다 건강상태가 심각하다면 앞으로의 치료가 걱정이었다... 격리병동으로 옮겨져 환자복으로 갈아입고 심전도 검사와 엑스레이 검사, 피검사와 소변검사가 이어졌다. 이어 정밀 피검사가 필요하다며 또다시 양팔의 혈관을 찔러대던 간호사는 자신은 힘드니 다른 간호사를 보내겠다며 돌아갔다.
다음날 예정되어 있는 수업을 미룰 수 없어 혹 수업 도중 쓰러지는 사고를 미연에 방지하고자 방문한 응급실에서 난 그간 경험해 보지 못한 중환자실에 버금가는 의료진과 각종 검사를 마주하고 있었다. 혈액의 높은 염증 수치와 고열의 원인을 찾기 위해 CT 촬영이 이어졌고, 다시 찾아온 다른 간호사는 허벅지 안쪽의 대동맥에서 혈액을 뽑아가기도 했다. 넓은 격리 병실 안, 하얀 천장의 밝은 조명과 각종 의료 장비들, 크고 작은 링거 병들이 의료진들의 오고 감 속에 살짝살짝 흔들리는 모습이 낯설고도 서늘했다.
그간 계획하고 실천하며 이겨낸다면 내가 원하는 나의 모습을 갖춰 나갈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의자에 앉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점차 체중은 늘어가고, 변해가는 외형에 한두 마디씩 내뱉는 주변인들의 우려에 삶을 살아가며 얻는 것이 있으면 잃는 것이 있을 것이라는 터무니없는 변명으로 스스로를 위안했다. 물론 계획대로 이루어낸 나의 성취는 이러한 선택과 집중이 있었기에 가능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한다. 하지만 건강을 잃는다면 과연 무엇이 남을 것인가를 나는 이번의 경험을 통해 깊이 돌아보게 되었다.
다행히 지금은 어느 정도 건강을 회복하였다. 열은 내려갔고, 혈액의 염증 수치 원인은 소장과 대장 사이의 문제일 것 같다는 진단이 내려졌고, 약과 식이요법을 통해 조절을 이어가면 큰 문제는 없을 것 같다는 것이 담당의의 소견이었다. 검사 결과를 확인하기 위해 방문한 대학병원의 모습은 코로나 사태로 인한 전시상황이었다. TV에서 보던 상황들이 눈앞에 펼쳐졌고, 병원을 오고 가는 많은 환자들과 의료진들을 바라보며 나는 많은 생각에 잠겼다.
먼저 감사했다. 몇 년간을 혹독하게 몰아치기만 했던 나의 신체를 회복시켜준 의료시스템과 의료진들의 전문성에 감사했고, 혼란스러운 코로나 사태에서 최선을 다하며 방역과 치료에 힘쓰는 그들의 책임감과 헌신에 감사했다. 그리고 끝내는 탈 난 모습을 드러냈지만 지금껏 나의 욕심을 묵묵히 수행해준 나의 신체에 감사함을 느꼈다. 또한 마지막으로 나의 늦은 도전을 응원해주고 지켜봐 준 나의 사랑하는 가족들과 지인들의 존재에 깊은 감사함을 느꼈다.
삶의 목표는 중요하다. 물론 뚜렷한 지향점은 없더라도 하루하루를 성실히 살아내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의미를 지닐 수 있다. 하지만 이어지는 삶 가운데 크고 작은 목표들은 우리를 좀 더 생동하게 하고 유의미한 성취를 이어가게 한다. 이제 나는 내가 노력해 온 길에서 인정받는 사람이고 싶고, 그간의 신체적 게으름을 회복해가는 사람이고 싶고, 보다 나에게 집중하는 사람이고 싶다.
그리고 그 길에서 무엇보다 아름다운 사람들과 함께하고 싶다. 내가 사랑하는 나를 사랑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