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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안나 Sep 06. 2020

<사마에게>

또 다른 사마를 위한 영화

      



  <사마에게>는 2019년 칸 영화제에서 최우수 다큐멘터리상을 수상하며 세상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21세기 최악의 내전으로 일컬어지는 시리아 내전의 참상을 캠코더 영상으로 기록한 한 여성의 용기 있는 행동은 전 세계 사람들에게 전쟁의 비극을 알리고 전쟁 난민에 대한 인식을 재고시키고 있다.



  2010년 북아프라카와 중동을 흔든 반정부시위 물결을 타고, 2011년 시리아에서 발발한 민주화 평화시위는 참가 학생들에 대한 고문과 살해로 이어진다. 이로 인해 수십 년에 걸친 아사드 부자의 독재정치와 잔인한 진압방식에 분개한 시민들로 구성된 반정부군이 정부군과 정면충돌하며 유혈사태가 발생하게 된다. 이후 주변 아랍국가들과 강대국들의 이해관계로 인한 개입이 이어지면서 현재까지 내전은 종식되지 않고 있다. 이 가운데 수백만 명의 무고한 국민이 죽임을 당하고, 천만 명이 넘는 전쟁 난민이 발생하고 있으며, 이들의 목숨을 건 탈출이 전 세계로 이어지고 있다.     



  <사마에게>는 알레포 대학에서 일어난 민주화 시위에 참석했던 와드가 이후 정부군의 무력진압을 목격하고 카메라로 촬영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와드에게 있어 촬영은 알아사드 정권에 대항하는 적극적 행위이며, 무자비한 살상에 맞서 싸우는 동지들의 투쟁을 기록하고 세상에 알리겠다는 저널리스트로서의 사명감을 뜻한다.



2016년 12월 정부군에 의해 포위된 알레포를 탈출하기 직전까지 촬영된 오 년간의 영상 속에는 도시 상공을 오가는 전투기, 끝없이 투하되는 폭탄과 각종 살상 무기 등이 등장한다. 그로 인해 도시는 점차 폐허로 변해가고, 병원은 폭격으로 사망한 시체들, 바닥의 흥건한 피, 사람들의 울부짖음으로 메워진다. 가장 안타까운 것은 아무 죄도 없는 아이들의 부상과 죽음이다.




죽음의 공포 속에서도 동심을 잃지 않고 폭격이 남긴 물웅덩이에서 수영하며, 검게 탄 버스를 색칠하곤 기뻐하던 아이들이 속수무책으로 죽어가는 장면에서, 자국민을 살상해서라도 정권을 이어가고자 하는 독재자의 사악한 탐욕에 분노하게 된다. 그리고 이렇게 목격하게 되는 아이들의 이어지는 죽음은 몇 년 전 뉴스를 통해 마주했던 터키 해변에 엎드려 익사한 시리아 난민 세 살 남아의 시체를 떠올리게 한다.  


  



  일제 침략과 6·25전쟁을 불과 한 세기 안에 겪었음에도 현재의 경제성장과 국력에 취해 남북분단의 상황마저 때로는 주지하지 못하는 우리에게, 시리아 난민에 관한 뉴스는 지구 반대편 이야기처럼 낯설었다. 여전히 대한민국은 단일민족임을 내세우며 타민족의 유입을 달가워하지 않고, 다문화에 대한 거부감과 우려를 표하는 이들이 많다. <사마에게>는 우리나라의 역사가 지닌 상흔을 돌아보게 하고, 지구공동체라는 용어가 지닌 공존과 공생의 가치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과거 일본에 의해 주권을 빼앗기고 수탈과 위협에 생명의 위험을 느낀 수많은 국민이 중국을 비롯한 주변국으로 이주했고, 6·25전쟁과 이후 이어진 군부독재를 피해 서방국으로 삶의 터전을 옮긴 이들이 수없이 많았다. 그리고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의 평온함 뒤에는 6.25 전쟁 시 자유 수호라는 대의에 목숨을 바친 유엔 연합군의 희생이 자리하는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동아시아 최초로 난민 협약을 맺고 난민법을 제정한 나라임에도 불구하고, 국민은 난민 입국을 반대하는 시위와 청원을 이어가고 정부는 과거의 도움에 대한 보답을 답보하고 있다.      





  저널리스트를 꿈꾸었던 와드와 의대 졸업을 앞두고 있었던 함자는 내전의 소용돌이 속에서 동료들의 죽음을 목격하며 혁명에 대한 의지를 굳혀가게 된다. 형제와 같은 동지를 잃자 혁명의 의미는 더욱 중요해지고, 정부의 위압에 굴복하고 알레포를 떠나는 이들을 지켜보며 남겨진 자들은 더한 고통을 겪게 될 것임을 예감한다. 이러한 폭격의 한가운데에서도 와드와 함자의 사랑은 이어지고 새로운 생명이 잉태된다.




 태어난 딸의 이름은 하늘이라는 뜻을 지닌 ‘사마’이다. 공습이 없는 깨끗한 하늘을 소원한 와드의 바램과는 달리 천사와 같은 미소를 지닌 사마는 전투기에서 투하되는 폭탄과 총격의 소리에 무감각한 아이로 자란다. 반정부군의 패색이 짙어가는 상황 속에서 와드는 이런 세상에 태어나게 한 자신을 용서해 주길 어린 사마에게 부탁한다.




  혹자는 이러한 참상 속에서의 아이의 출산을 무책임하다며 비난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삶과 죽음은 끊임없이 순환하는 것이며 모든 생명은 축복받고 이어져야 한다. 시시각각 마주하는 죽음의 그림자 속에서 사마는 와드와 함자에게 살아야 할 이유이자, 자유를 위해 투쟁하는 모든 이들의 버팀목이자 희망이다. 사마가 정의로운 세상을 마주할 수 있길 소원한 와드는 함자와 함께 목격한 수많은 죽음을 온 힘을 다해 영상으로 남겼고, 시리아 정부의 실상을 알리는 증거가 되었다. 또한 시리아 난민들의 고충과 비극을 낱낱이 보여주며 난민 수용을 지지하는 목소리를 고취시키고 있다.     



  <사마에게> 속 누구도 자신들의 고향이자 삶의 터전인 알레포를 떠나고자 하지 않았다. 고향을 떠남은 이들이 마주하는 최악의 선택인 것이다. 죽음의 공포에도 이들은 애써 미소 짓고 서로를 위로하며, 재치 있는 대화로 두려움을 중화시키고자 애쓴다. 그러나 <사마에게>의 끝에는 어쩔 수 없이 결국 알레포를 포기하고 마지막으로 탈출을 감행한 와드 가족이  무사히 둘째를 출산하는 장면이 자리한다. 죽음의 짙은 그림자 속에서 끝없이 용기를 내고 사마를 지키고자 한 와드와 함자, 이들 부부의 사랑은 아름답다. 하지만 아직도 시리아의 내전은 이어지고 있으며 부모를 잃은 수많은 난민 아동들은 죽음의 위협에 속수무책으로 놓여 있다. 난민 아동들은 굶주림과 추위 속에서 생명을 위협받으며, 아동노동 착취와 성매매 대상으로 전락하는 경우가 대다수이다. 우리가 또 다른 사마들을 염려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사마에게>를 지켜본 우리는 앞으로 과연 무엇을 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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