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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년 클레어 Oct 09. 2024

내가 가장 평안할 때(14) 지혜

인간 본성에 대해 정직할 때, 삶은 단순하고 청량해진다

오늘은 어제 묵상한 아래 주제를 나누고 싶어, 보석 같은 작가님들을 소개합니다 는 송구스럽지만 다음 주에 발행하겠습니다. [연재 브런치북] 투덜이 털보와 마음숲은 차차주 발행이 되겠지요.


회사 업무가 폭증이라 1주일에 글을 한편씩만 발행하려니 아쉬움이 들지만, 직장생활과 균형을 이루는 것도 중요하다 생각되기에, 아쉬움은 글쓰기로 달래 보려 해요.  


각 브런치북이나 매거진별로 이전 회차들 중에서 다 읽지 못  횟차를 읽어 보셔도 좋을 듯합니다 :)  



  




사실 '나르시시즘'이라는 단어가 자기애를 가리키게 된 것은 아이러니한 일이다. 왜냐하면 최악의 나르시시스트는 본인이 사랑할 만한 통일된 자아 자체가 없기 때문이다. 바로 이 점이 그들 모든 문제의 근원이다.   

ㅡ 로버트 그린의 <인간 본성의 법칙> 중 ㅡ    




최근에 로버트 그린의 <인간 본성의 법칙>이란 책을 읽기 시작해 이번주엔 다 읽을 수 있을 듯하다. 920페이지에 달하는 벽돌책인데, 요즘 쓰기 시작한 동화에 도움이 될까 싶어 집어 들었다. 저자가 중간중간 전해주는 촌철살인의 멘트가 인상적이었다.


"사람들은 내가 가장 멋지게 보일 수 있는 가면을  쓴다. 겸손하고, 자신감 있고, 성실한 모습을 가장한다."


이미 알고 있는 인간의 본성과 내면을 정밀하게 다가가서, 타격하고, 건져 올리는 솜씨가 남달랐다. 이 책이 베스트셀러라 해서 유심히 보았는데, 이 지점에서 점수를 후하게 주고 싶었다.


이 책에서 열거하는 인간들의 수법이랄까, 처세술이랄까, 하는 부분들은 경악을 일으키다가는 이내 애처롭기까지 했다. 그렇게까지 해서 아등바등 살아야 하나 싶다가도, 그렇게라도 해야 살아남는 게 인생인가, 애잔한 마음이 들었다.


올해 여름, 짝꿍 천재와 함께 중국 화산(華山)의 짐꾼 부부 관련 다큐멘터리(하단 영상 링크 참조)를 보았을 때와는 정 반대의 느낌이었다. 있는 모습 그대로, 투박하고 투명한 이름 없는 부부의 고단한 삶을 보며, 처세술의 공해가 가득한 도심에서 벗어나 향긋하고 청량한 시골길을 걷는 느낌이었다.



https://youtu.be/5yM9Gso6YUA?si=-7RFsQe9b2EzxBGS

중국 화산의 짐꾼 부부


해당 다큐멘터리 첫 장면을 보고 내가 긁적인 메모글을 다시 보았다. [연재 브런치북] 투덜이 털보와 마음숲  에 어느 대목엔가 쓰려고 순간의 느낌을 메모한 글이었다.


"깎아지른 듯이 달아오른 산봉우리. 외길 외엔 거추장스러운 듯 벼르고 거둬낸 산세, 마치 태초의 주인이 작심하고 빚어 올린 그곳 화산을 부부가 걷고 있었다.


관광객들에게 팔아야 할 식사용 식재료를 나르는 고단한 벼랑 끝 부부. 어렸을 때 동네에서 가장 아름다웠다던 아내는 왜 더 편한 길을 버리고 이 고행의 길을 선택했을까. 더 쉬운 길, 그 유혹은 도처에 널려있건만 말이다"


인간은 누구나 자신의 원래 모습보다 더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 한다. 가장하고 치장하고 포장하고 조작하기도 한다. 그런 인간의 본성에 비춰 보건대, 화산을 오르는 부부는 마치 그 세상 원리에 삶의 고통으로 대치하고 있는 듯했다.


인생의 무대에서 제대로 연기하는 사람들이 진짜일까, 투박하게 날 것을 드러내는 존재가 진짜일까. 그 무엇에도 딱히 흡족함을 느끼지 못하는 우리는, 두 가지 아이러니 사이에서 방황하는 갈대가 아닐까.

 


세상이 모두 무대요,
사람은 모두 배우일 뿐이죠.
누구나 퇴장도 하고 등장도 해요.
사는 동안
한 사람이 여러 역할을 맡게 되죠.
ㅡ 셰익스피어 ㅡ



그때 브런치 시작하고 채 한 달도 되기 전에 썼던 글인 카프카의 < 변신 >이 생각났다. 부제가 "겨져야 할 사람들, 숨겨져야 할 내면들"이었다. 끈적한 외면과 투박한 날 것이 상존하는 모순된 세상을 서성이다 문득 생각했다.


글쓰기란 이 모순에 직면하는 것이고 그것을 세상에 드러내고 빚어내는 여정이 아닐까. 프란츠 카프카의 <변신> 을 다시 한번 읽어 봐야겠단 생각이 든다.
















※제 짝꿍은 브런치 작가활동은 전혀 하지 않아요. 비슷한 필명'들'에 헷갈리지 마셔요 :)

*사진, 그림 출처 : 핀터레스트(pinterest)



*요즘 제 재량으로 전도서 말씀 몇 절씩 발췌해서 큐티 중입니다. 어쩜 인간의 본성에 대해서 이리도 꿰뚫고 있는지 감탄하며 한절 한절 달게 묵상하고 있습니다. 





[생생큐티] 2024년 10월 8일(화) 지혜와 죄성(전도서 7장)

19 지혜가 지혜자를 성읍 가운데에 있는 열 명의 권력자들보다 더 능력이 있게 하느니라

20 선을 행하고 전혀 죄를 범하지 아니하는 의인은 세상에 없기 때문이로다

21 또한 사람들이 하는 모든 말에 네 마음을 두지 말라 그리하면 네 종이 너를 저주하는 것을 듣지 아니하리라

22 너도 가끔 사람을 저주하였다는 것을 네 마음도 알고 있느니라

(전도서 7:19-22)     


사람들은 좋은 조건으로 태어나고 싶어 하고 그 다음엔 능력을 갖고 싶어 합니다. 좋은 조건은 소수의 사람들에게 주어진 천의 혜택이지만, 이 또한 그것을 승계해서 지켜내지 못하면 아예 무(無)로 태어나는 것보다 못합니다.      


19절에서는 ‘지혜’를 능력의 원천으로 손꼽습니다. 지혜가 능력의 기반이라서, 10명의 권력자들보다 더 능력 있게 만들어 준다고도 합니다. 지혜가 사람을 유능하게 한다는 사실은, 누구나 아는 바이므로 이런 기술이 전혀 어색하지 않습니다.     

 

근데 오늘 말씀이 조금 다르게 다가오는 것은, 그 이유를 전혀 다른 맥락에서 찾기 때문입니다.


20절에서는 지혜가 인간에게 중요한 것은 의인이 세상에 없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이 말은 늘 선을 행하고 전혀 죄를 범하지 않는 완벽한 의인이 없다는 말입니다. 이 말은 뒤집어서 모든 인간은 죄 가운데 태어나 죄를 지으며 살다가 죽어간다는 말입니다. 


인간에게 지혜가 필요한 것은, 인간의 삶을 불행으로 몰고 가는 죄가 늘 따라다니기 때문입니다. 인간이 아무리 모든 것 곧 외모, 성격, 능력, 집안, 배우자, 지식 등등 부귀영화와 인간 조건을 특출나게 갖추고 태어나도 죄 문제를 다스리지 못하면 패가망신하기 때문입니다. 즉 죄 문제를 잘 다룰 수 있느냐, 그 여부가 인생 성공을 궁극적으로 좌우하고 무엇보다 행복과 불행을 가릅니다.     




이 지혜는 죄의 추격을 받는 인간의 위험한 여정에 안전장치가 됨과 동시에 타인에 대해서도 동일합니다. 


내가 나의 죄 문제를 인식하고 다룰 수 있는 지혜가 있어도, 타인이 죄의 오물덩어리로 뭉쳐져 내 인생에 수류탄처럼 던져지면 그야말로 내 인생은 속절없이 박살 나는 것입니다. 마치 음주 운전자나 졸음 운전자를 도로 한복판에서 맞닥뜨리는 일과 비슷합니다.


내가 아무리 잘해도 인생이 망가질 수 있고 내가 쌓은 모든 것을 상실할 수 있다는 사실은 끔찍하고 두렵기까지 합니다. 이것은 그저 가정이 아니라 우리 인생 내내 종종 출몰하는 엄연한 현실이라는 점이 더욱 아찔하게 합니다. 한편으론 내가 열심히 산다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 회의를 불러일으킬 때도 있습니다. 이미 죄뭉치인 타인의 삶과 정면 충돌해서 산산조각이 나버린 경우라면, 더 이상 살아야 할 이유조차 찾기 힘들어집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할 수 있는 최선으로 나의 죄를 돌아보고 직면할 수 있어야 하고, 타인의 죄를 들여다볼 때도 심판자가 아니라 동일한 길을 걷는 전우로서 동병상련의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이런 마음이 죄에 기인되어 돌출되는 날카롭고 무거운 감정들에 휘둘리지 않고 평상심을 유지하며 인생을 살 수 있는 지혜를 줍니다.      


그런 점에서 21절-22절은 마음에 와닿습니다.


"또한 사람들이 하는 모든 말에 네 마음을 두지 말라 그리하면 네 종이 너를 저주하는 것을 듣지 아니하리라. 너도 가끔 사람을 저주하였다는 것을 네 마음도 알고 있느니라"


사람들이 하는 모든 말을 전부 알거나 들을 필요도 없거니와, 듣더라도 혹 불편한 말들을 마음에 두며 분개할 필요도 없습니다. 가령 오늘 말씀처럼 종 따위가 나를 저주하는 얘기를 듣는다고 해서 분개할 것도 없습니다. 우리는 누구나 가끔은 다른 사람을 입술로 때론 마음으로 저주하고 있고, 그 사실은 우리 마음이 이미 다 이실 직고 하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인간들이 분개하는 것은 위선이고 거짓입니다. 마치 나는 전혀 그런 말을 한 적도 없고 마음에 품지도, 살지도 않았던 사람처럼 말입니다.      


저는 오늘 말씀을 묵상하며, 인간이 얼마나 죄에 취약한지 생각합니다. 죄의 파괴력이 얼마나 크면,  자기 죄와 타인 죄를 잘 통찰하고 해법을 찾는 지혜를 손에 꼽는지 여러 생각을 하게 됩니다. 제가 마음이 뾰족해지거나 타인의 죄와 허물험한 마음이 일어날 때마다, 마음의 지혜를 추구하고 그 음성에 귀 기울이는 겸손한 사람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그러므로 내 죄로 실족하지 않도록 날마다 회개하여 의를 추구하며, 타인의 죄와 충돌할 위험에서, 할 수 있는 한 잘 피하고 대비하는 지혜로운 사람이 되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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