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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ay Feb 28. 2020

함께 한 정은 통한다

 홈스테드 작별 인사 -Community Homestead 28

오늘은 이곳에서의 마지막 날이다. 처음에는 적응하느라 힘들었는데, 이제는 떠나야 한다는 것이 아쉽다. 자연과 일상으로 어우러져 생활했던 두 달여간의 시간을 마무리하는 오늘이 특별하게 다가온다. 한국인 최초로 방문을 했고, 밑도 끝도 없이 아이 둘을 데리고 봉사활동을 오겠다고 한 아줌마~ Ray!!


아침부터 혼자 분주하다. 지난 만찬회 때 찍은 사진들과 아이들이 손수 고른 이벤트, 생활사진 170으로 만든 동영상을 캐서린에게 전해 주었다. 아이들이 있는 집이라 자주 어울렸던 앨리네와 조안네 사진들도 따로 파일을 만들었다. 파일 용량이 크다 보니 이메일로는 어림없다.


바쁘지만 그래도 Orion하우스 식구들과 먹는 금요일 점심식사에 정성을 쏟아본다. 이틀 전 냉동고에서 목뼈를 챙겨 와서 미리 양념을 해 놔서 오늘은 야채만 추가해서 요리를 하면 된다. 어제 남은 두부를 굽고 김치 겉절이를 내어 놓는다. 빵, 치즈, 샐러드 위주였던 점심식사가 오늘은 조금 풍성하게 채워졌다. 원래는 감자탕을 만들고 싶었는데 시래기도 없고 여유가 없어서 뼈찜으로 준비를 했다. 살이 많지는 않지만 야채와 소스의 맛이 어우러져서 다들 맛있게 먹어준다. 함께 두 달을 생활한 식구들에게 감사를 표현하고 싶었다. 아이들을 낳아 기른 후부터는 음식을 만들어서 나누는 것에 대한 의미가 많이 부여 되는 것 같다. 누군가와 마음을 나누는 것, 즉 관계의 기본이 아닐까?


“Ray! 논문 마무리는 잘 되어가나요?”

“네~ 윌. 배려해 준 덕분에 많이 했어요. 50% 정도는 한 것 같아요.”

“시간이 더 필요하지 않나요?”

“네~ 그러면 좋은데, 오후에는 피자 만들러 가야죠. 저녁에 밤을 세서라도 하면 되죠.”  

“그래요? Ray가 그렇게 바쁘면 다른 사람이 도와줄 수 있을 것 같은데요?”

오늘도 윌의 배려로 컴퓨터 앞에 앉아서 논문을 수정할 수 있었다. 기대하지 않았는데 이렇게 챙겨주니 나에게는 정말 큰 힘이 된다.


금요일 저녁은 포트락 파티가 있어서 덕분에 공동체 식구 전체와 한꺼번에 작별 인사를 할 수 있게 되었다. 어떻게 감사를 표현하면 좋을까 고민하다가 아이들에게 SOS 요청을 했다.

“얘들아, 너희 지난번 엄마 생일 선물 언제 해 줄 거야? 엄마 생일 선물로 너희들이 여기에 와서 피아노 연습한 것을 홈스테드 식구들한테 마지막 인사로 들려주면 겠어. 어떠니?" 

간신히 아이들의 승낙을 받았다. 포트락 파티에 어제 담근 오이소박이와 배추김치를 챙겨 갔다. 날씨도 좋고 분위기도 좋다. 그런데 식사를 끝내고 정리를 하는 순간 사람들이 보이지 않는다.

이상하다? 인사도 하고, 피아노 연주도 해야 하는데?’

엄청 실망하려는 사람들이 하나둘 다시 들어다. ‘휴~ 다행이다.’


캐서린이 먼저 말문을 터주었다.  

“사실 봉사활동을 하러 가족단위로 오는 것은 흔하지 않아요. 문화도 다르잖아요. 그런데 전혀 걱정할 필요가 없었어요. 너무 잘 적응해주었고, 우리에게 다른 문화를 접할 수 있는 기회를 주었어요. 오늘 Ray와 아이들에게 작별 인사를 할 사람 없나요?”   

“Ray와 아이들이 이곳에 처음에 와서 많이 놀랬었죠. 지저분한 부엌, 저희가 미리 청소를 했음에도 많은 벌레들이 있었던 오두막, 벌레들.... 그래도 잘 적응했고, 저희에게 매일 맛있는 음식을 해 주었어요. Orion하우스에게는 참 행복한 시간이었습니다.”-윌

“저는 Ray랑 함께 해서 너무 좋았어요. 고마워요. 제가 노래를 하나 선사할게요~ 굿바이~ 굿바이~~”-조이

“Ray는 매주 월요일 저에게 맛있는 저녁식사를 해 주었어요. 한국 요리도 너무 맛있었어요. 또 왔으면 좋겠어요.”-샐리

“Ray가 매주 수요일 이곳 커뮤니티센터에서 청소를 깨끗이 해 주었어요. 그런 모습에 감동했어요.”-제니

..............................


작별인사가 끝나고 선물까지 받았다. Orion하우스 식구들최근에 재미를 들인 보드게임 CATAN세트를 선물 받았다. 그리고 홈스테드 대표로 제니할머니가 공동체 이름으로 판매하는 도마와 엽서, 양초를 주셨다. 두 달밖에 생활하지 않았는데 이런 선물을 받다니... 감격이다. 평소아이들은 다른 봉사자들이 떠나는 작별 인사 때마다 “엄마! 우리도 이렇게 해 줄까요?” 궁금해했는데, 지금까지 본 작별 인사 중에서 제일 화려한 것 같다.


“여러분 고마워요. 이제 적응을 한 것 같은데, 벌써 떠나야 할 때가 되었네요. 저희 가족은 이곳에서 자연과 여러 사람들이 공존하며 나누는 삶을 보고 많은 감명을 받았어요. 아이들은 자연과 동물들을 너무 사랑해요. 이 곳에서의 경험이 앞으로 우리 삶에 큰 의미가 있을 거예요. 아이들이 매일 저녁 커뮤니티센터에서 피아노 연습을 한 거 아시죠? 여러분에게 감사의 표시로 피아노 연주를 하려고 해요.”

먼저 지민이가 ‘밀과 보리’를 두 번 연주하고, 그다음 민서가 ‘엘리제를 위하여’를 연주했다. 민서는 연습을 시작할 때는 힘든 곡이라 자꾸 틀리고 부담스러워했는데 이제는 완벽히 소화하고 있다. 모두들 숨 죽여 들어주고 감동을 해 준다. 아이들도 누군가에게 온전히 관심받는 그 순간을 아주 진지하게 받아들여 준다. 연주를 듣는 동안 내 마음이 찡해져 온다.


함께 나눈다는 것,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는 것에 가슴이 뭉클해지고 힘이 나는 시간이다. 저녁노을을 보내며 홈스테드 식구들과 포옹을 했다. 앞으로 남은 일정에 대해 축복을 받았다. 그들의 마음을 체온으로 느낄 수 있었다. 이들에게 우린 어떤 사람으로 기억될까? 맛있는 밥을 해 주는 사람, 항상 아이들과 다니는 사람, 항상 청소를 하는 사람, 영어가 서툴러 의사소통이 어려운 사람, 커뮤니티센터에 피아노를 연주하러 오는 사람, 혹은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사람... 어떤 기억이든 감사할 것 같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조안네 집에 들러 사진을 저장해주고 마지막 인사를 나눴다. 해가 이미 저물어 별들이 반짝반짝거린다. 어두운 길을 걸으며 하늘 위로 펼쳐지는 풍경들에 행복하다.

“엄마. 여기는 공기가 정말 좋고, 별도 이렇게 많이 보여서 너무 좋았어요.”

“그러게 말이다. 떠나려니 아쉽지?”

“네. 여기서 생활할 수 있어서 참 좋았어요. 게다가 선물까지 받았잖아요. 너무 좋아요.”

홈스테드를 통해 아이들 온전히 만나는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진심을 다 했더니 그 진심을 알아준다. 정은 통하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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