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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재 Jun 17. 2024

동거 시작을 알리자 예비 시부모(?)님이 나를 찾아왔다

2019년 08월, 예비 시부모님과의 첫 만남

[2019년 08]

☑ 남편 한 줄 정보: 김현우. 1990년생. 천하태평 단순함의 끝판왕. 남의 속 뒤집어지는 줄도 모르고 불난 집에 기름 붓는 재주가 있음. 


이쯤에서 나와 남편을 참 오랫동안 괴롭게 했던 주제를 하나 꺼내야겠다. 바로 ‘고부갈등’. 이것은 남편과 동거를 시작했던 7년 전부터 시작되었으며 아직까지도 현재진행형인 상태로, 내가 남편과 결혼을 미루고 미뤘던 결정적 이유이기도 하다. (우리는 동거만 6년을 했다.)


바야흐로 7년 전, 우리는 본격적인 동거 시작과 함께 각자의 부모님께 이 사실을 알리기로 했다. 나는 며칠 고민 끝에 부모님을 찾아가 결혼을 한다면 현우 감독과 하고 싶다는 말과 함께 그와 동거를 하고 싶다는 솔직한 마음을 털어놓았다. 긴 대화 끝에 부모님은 몇 가지를 당부하시곤, 나의 결정을 믿고 존중해 주었다. 보수적인 부모님이 예상외로 한 번에(?) 동거를 허락해 주자, 나는 기쁨에 취해 현우 감독의 사정은 전혀 알지 못했다. 


한결 마음이 가벼워진 나는 현우 감독 또한 별일 없이 허락을 받을 것이라 생각했다. 때문에 대수롭지 않게 그 또한 부모님께 말씀드렸는지 물었고, 그는 아무 일도 없다는 듯 “썩 좋아하시진 않았지만, 그래도 말씀드렸어. 걱정하지 마”라며 나를 안심시켰다. 바보 같은 나는 그 말을 철썩 같이 믿었다. 그의 부모님이 우리 집 앞에 쫓아오시기 전까지. 


어느 날, 현우 감독과 합친 짐정리를 하며 평온한 주말을 보내고 있을 때였다. 갑자기 그의 휴대전화가 울렸다. 나를 피해 밖에서 한참을 통화하던 현우 감독은 심상치 않은 표정으로 돌아와 입을 뗐다. “부모님이 널 보러 오신대” 엥? 나는 그 자리에서 까무러칠 뻔했다. 씻지도 않고 누워있는 데, 갑자기 이렇게 만난다고? 당황해서 허둥지둥 대는 내게 현우 감독은 또 하나의 시한폭탄을 던졌다. “이 근처라서, 30분 정도 후에 도착하신다네. 간단히 인사하고 밥이나 먹고 오자”


그가 항상 허허실실 태평한 사람인 줄은 진즉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내게 시한폭탄을 던져주고도 아무렇지 않아 하는 그를 보니 속이 터질 것만 같았다. 하지만 30분 후라니. 내겐 싸울 시간도 없었다. 곧 있으면 예비 시부모님(?)이 오신다. 나는 서둘러 준비를 하면서도 속으로 ‘왜 미리 약속을 잡지 않고 이렇게 오셨을까’라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었다. 


대망의 첫 만남. 현우 감독의 부모님과 현우 감독, 그리고 나까지 네 사람은 집 앞에 있는 식당에서 모였다. 얼렁뚱땅 만나긴 했지만, 그래도 잘 보이고 싶은 마음에 맛있기로 유명한 곳의 쿠키도 사서 전달했다. 조용히 자리에 앉아 어색한 미소를 짓고 있는데 아버님이 입을 떼셨다. “결혼은 언제 할 거니?” 나는 너무 놀라 눈이 튀어나올 뻔했다. 나와 현우 감독은 연애를 시작한 지 고작 7개월 차였다. 당황한 내가 현우 감독을 쳐다보자 그는 아무렇지도 않게 식사를 시작하고 있었다. 


결국 나는 결혼을 염두해 두고 있긴 하나 아직 구체화시킨 단계는 아니고, 우리가 만난 기간도 1년이 채 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마치 압박면접을 보는 듯한 기분에 집에 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하지만 질문은 계속 됐다. “결혼도 당장 할 게 아닌데 동거는 왜 시작했니?” 머리를 텅 맞은 기분이었다. 짧은 순간 속으로 별 생각이 다 들었다. 분명 현우 감독은 내게 동거 사실을 부모님께 잘 알렸고,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했는데. 이 분들은 왜 내게 이렇게 따져 묻는 것일까? 


다시 한번 현우 감독을 쳐다보았다. 그는 입을 다문 채 어떤 말도 꺼내지 않았다. 나는 슬슬 기분이 상했다. 정작 두 분의 아들도 가만히 있는데 내가 왜 나서서 이 상활을 설명해야 하는지 당최 이해가 되지 않았다. 나는 어색하게 웃으며 대답을 피했다. 하지만 그 자리는 식사 내내 처참했다. 아이를 몇 이나 낳을 것인지, 돈은 얼마나 모았는지, 부모님은 어떤 일을 하시는지. 나는 제대로 취조(?)를 당했다. 심지어 두 분은 아이를 겨울에 낳는 게 좋다며 아직 계획에도 없는 2세의 생일까지 정해주었다. 


나는 무슨 정신으로 그 자리를 마쳤는지 기억도 나지 않을 정도로 혼이 빠져 집에 돌아왔다. 그리고 옆에 있는 현우 감독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그는 부모님께 나를 소개한 것 자체로 우리 사이가 한 단계 업그레이드 된 것이라 생각하는지, 매우 기쁜 듯 보였다. 나는 그 모습에 더욱 슬퍼져 현우 감독에게 따지듯 물었다. “기분 좋아? 왜 아버지가 묻는 것에 너는 하나도 대답을 안 해? 우리 고작 연애한 지 7개월밖에 안 됐어. 그리고 첫 만남에 이렇게 2세 이야기까지 듣는 게 맞아?”


그는 어이가 없다는 듯 내게 말했다. “부모님이 우리 잘 되라고 하신 말인데 그게 왜? 왜 갑자기 우리 부모님을 욕하는 거야?” 나는 어이가 없어 실소가 터져 나왔다. 아, 이래서 남편이 ‘남의 편’이란 소리가 있는 거구나. 나는 정신을 바로잡고 현우 감독에게 선을 그었다. “나 이제 너희 부모님 안 만나고 싶어. 불편해. 우리가 결혼을 준비하는 단계도 아니고 굳이 자주 만날 필요 없잖아”라는 강수를 두며. 하지만 그는 물러서지 않았다. “만나다 보면 더 친해질 수 있지 않을까? 난 가족끼리 친하게 지내는 게 좋은데”라며 내 속을 한 번 더 긁어놓았다. 


결국 나는 감정적으로 소리를 빽 지르고 다신 이런 만남을 하고 싶지 않다며 침대에 누웠다. 그리고 생각했다. 우리 부모님이었으면 어땠을까. 아마 바쁜 자식들 만나자고 하는 것도 눈치 보여 쉽게 말도 꺼내지 못했을 것이다. 아, 아닌가. 또 내가 생각하는 내 부모와 남이 보는 내 부모는 다를 수 있는 것일까. 머리도 마음도 복잡했다. 오늘 하루의 일이 마치 드라마 속에서나 보던 장면인 것 같아 어이가 없었다. 갑자기 ‘가족사랑’을 외치는 현우 감독도, 그의 부모님도 더 이상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나는 그날 밤을 꼴딱 새우며 내게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지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그 결과, 슬프게도 나는 이 일이 단 한 번으로 끝나지 않을 거란 것을 예감했다. 그리고 그 예감은 정확히 100% 적중했다. 


현우 감독과 6년의 연애를 마치고 결혼한 지 1년이 넘었다. 이 긴 시간 동안 시부모님과 나의 간극은 점점 더 벌어져만 갔고, 꽤 오랫동안 나와 부모님 사이에서 갈피를 못 잡던 현우 감독은 나 때문에 본인까지 부모님과 멀어졌다며 화를 내기도 했다. 나는 그렇게 현우 감독과 그의 부모님이 던진 화살을 고스란히 받아내며 하루가 멀다 하게 이별을 통보했다. 이처럼 우리의 긴 연애는 눈물 마를 날이 없었다. 


이 같은 우리의 역사를 아는 주변 이들은 “너네 진짜 찐사랑이야. 그러니까 결혼에 성공했지. 난 진짜 못할 줄 알았다”라며 놀리곤 한다. 전에는 이 말을 들으면 모르는 소리 하지 말라며 정색을 하고 손 사레를 치곤 했는데, 요즘엔 그냥 웃으며 “맞다”라고 맞장구를 친다. 오랜 시간 많은 수많은 고비를 겪으면서도 결국에 돌고 돌아 서로를 선택하는 것을 사랑 아니면 무엇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 


현우 감독은 아직도 ‘진정한 남편으로 거듭나기’ 프로젝트를 수행 중이다. 그럼에도 아주 가끔씩 중심을 잃고 부모님 편을 들며 나를 들들 볶을 때도 있지만, 전보다 많이 성장했다. 그리고 나 또한 늘 싹싹하지 못한 며느리라는 죄책감에 시달리고 있지만, 그보다 먼저 진정한 아내로 거듭나기 위해 다방면으로 노력하고 있다. 현우 감독과 나, 아직 갈 길이 한참 멀지만 얼마의 시간이 걸리더라도 우리 부부는 우리만의 방법을 찾을 것이다. 늘 그러했듯이 


☑ 예비 시부모님과의 첫 만남: 저의 2세 계획은 제가 알아서 해볼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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