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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재 Aug 18. 2024

갓난쟁이의 엄마,
보람이 죽기로 결심한 이유

서로의 눈치를 보는 딩크부부

나는 아이를 매우 사랑하는 딩크족(Double Income, No Kids)이다. 내가 딩크족을 선언한 것은 남편을 만나면서부터였다. 나와 남편이 직업상 서로가 아닌 제3의 누군가를 돌보고 살필 여력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결혼 전부터 나는 남편이 ‘결혼’을 입에 올릴 때마다 내 인생에 아이 없다며 선을 그었고, 드라마에 나오는 것처럼 퇴근 후 자신을 맞아줄 여우 같은 마누라와 토끼 같은 자식을 꿈꿨던 남편은 슬쩍슬쩍 그 선을 넘어보려고도 노력했지만 어림도 없었다. 결혼조차도 ‘나 하나도 벅차다’라는 같은 이유로 거절했던 나를 오랜 시간 설득하는 일이 쉽지 않았음을 누구보다 잘 아는 그는 마냥 자신의 뜻만을 내세울 수만도 없는 노릇이었을 터. 우리 부부는 그렇게 암묵적으로 ‘아이’에 대해 이야길 꺼내는 것은 금기시하게 되었다. 그 때문에 나는 거리에서 우연히 아이들과 눈이 마주쳐도 남편의 눈치를 보느라 인사조차 건네지 못하는 처지가 되었고, 남편은 TV에서 귀여운 아이가 나와도 즉각 채널을 돌리며 내 눈치를 보았다.


이런 우리 부부에게 오랜 친구인 지훈이 딸을 낳았다며 부부 동반 모임을 갖자고 전화하였다. 내심 남편이 그날 바빴으면, 멀리 출장을 갔으면 바라기도 했지만 결국 우리 부부는 갓난쟁이에게 잘 어울릴 배냇저고리를 하나 사서 함께 친구네 집으로 향했다. 아이는 정말 말 그대로 천사처럼 예뻤다. 내 친구 지훈의 눈과, 그의 와이프 보람의 귀를 빼다 박은 것이 너무 신기했다. 우리가 선물한 옷으로 갈아입고 예쁜 머리핀을 꽂은 아이는 더할 나위 없이 모두에게 완벽한 행복이었다. 한참 동안 아이의 옹알이에 감탄하고 배밀이에 박수를 치며 그에게 푹 빠져있었다. 얼마쯤 지나서였을까. 뒤늦게 친구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무릎이 툭 튀어나오고 한 편에는 우유 자국이 덕지덕지 붙어 있는 바지를 입은 지훈과 목이 다 늘어진 티셔츠를 입고 왼쪽 손목에는 수상한 스카프를 감아놓은 보람이. 


하지만 추레한 옷은 개의치도 않는다는 듯이 누구보다 행복한 표정으로 이야기하던 그들은 으레 우리 부부에게 아이 계획이 있느냐 물었고, 나는 여지없이 “없다”고 대답했다. 고개를 돌리지 않아도 서운한 남편의 표정이 온몸으로 느껴졌지만, 우리 두 사람 모두 괴로워질 희망 고문을 하고 싶진 않다. 보람은 그런 내 표정을 읽었을까. 위로라도 하려는 듯 본인도 쉽지 않은 결정을 했다고, 아이가 너무 사랑스럽고 예쁘지만 불과 한 달 전, 자신도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었다며 손목에 감겼던 스카프를 풀었다. 그리고 그 자리에는 아직 아문 지 얼마 되지 않은 선명한 상처가 있었다. 


아이가 태어난 후 보람은 일 분, 일 초도 자신의 시간을 갖지 못했다고 한다. 그러다 보니 보람의 자아는 자연스레 사라졌고, 오직 엄마로서의 역할만 남아있었다고. ‘엄마’가 처음인 보람은 모든 것이 벅차 매일을 울었다고 했다. 그마저도 아이의 눈치를 보며 살금살금 방으로 들어가 입을 틀어막고 소리 죽여 끅끅거리는 것이 일상 다반사였다며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그 시간마저도 자비 없는 아이는 아무것도 모른 채 보람을 찾았다. 찾고, 또 찾고. 잠깐의 외출은커녕 화장실도 쉽게 가지 못했던 보람은 이 집에 아이와 갇혔다고, 아니 꼭 버려진 것만 같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24시간 아이에게 맞춰 보람은 기꺼이 아이의 시녀, 하인, 두 손발이 되었고 제 삶을 완전히 잃었다고 생각되었을 때 자신도 모르게 손목을 그었다고 했다. 손목에서 흐르는 뜨거운 피에 정신을 놓을 무렵 저 문 너머로 울리는 아이의 울음소리에 보람은 정신을 부여잡았단다. 피투성이가 된 손목을 부여잡고 문을 열고 나오자마자 보람은 아이를 안아 들고 “괜찮아, 괜찮아”라며 자지러지게 우는 아이를 달랬단다. 눈물과 피를 뚝뚝 떨구면서. 그 후 보람은 지훈과 함께 꽤 오랫동안 병원을 오갔다고 덤덤하게 말했다. 


그렇다고 지훈도 사정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아침 9시에 출근해 장장 열두 시간의 일을 마치고 집에 오면 그때부터 지훈의 몫으로 남아있는 육아가 시작됐다. 소파에 잠시 널브러질 새도 없이, 씻고 나오자마자 보람에게 아이를 받아 들고 남은 한 손으론 휴대전화로 업무 정리를 하며 하루를 마무리했다. 지훈은 아이가 태어나기 전, 다니던 큰 회사를 그만두고 본인의 새로운 사업을 시작했다. 눈 코 뜰 새 없이 일에 매진하고 평일, 주말 없이 회사 일을 하느라 정신이 없는 시기였음에도, 아이를 보람에게만 맡겨둘 순 없었다. 그 또한 보람이 시들어 가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최선을 다해 아이를 돌보고 보람을 도왔다. 


하지만 두 사람은 각자의 위치에서 자신의 몫을 열심히 해냄에도 너무 힘들었다고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아이를 너무나 사랑하는 것은 분명하지만 모든 부모에게 있는 그놈의 책임감이 본인들에겐 없는 것 같다며, 사랑을 베풀려고 만난 아인데 원망이 솟구칠 때가 더 많았다고 자책하는 두 사람이 안쓰러웠다. 


두 사람의 이야기를 들으며 나는 솔직히 많이 놀랐다. 보람이 육아 때문에 그렇게 힘들어할 것이라곤 상상조차 못 했다. 아이도 안 가져본 내가 어찌 부모의 책임, 그리고 엄마의 역할과 아이의 존재에 대해 쉽게 말할 수 있으랴. 다만 보람은 우리 중 가장 똑똑한 친구였고, 그 가기 힘들다는 서울대를 졸업한 대기업 연구원이자 당찬 여성, 한번 목표한 일은 어떻게든 이뤄내고야 마는 존경스러운 친구였기에 나는 그녀가 스스로를 포기할 생각을 했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나로서는 무섭고 슬픈 이야기를 보람은 차분하게 이어나갔다. 


보람이 병원에서 나오던 날, 그녀는 지훈에게 이제 ‘절대안정’이 아닌 ‘절대행복’을 추구하겠다고  선언했단다. 아이와 배우자보다 자신을 더 챙기겠다는 말을 덧붙이며. 다소 이기적으로 들릴 수 있지만 본인의 자아가 건강하고 행복해야, 아내와 엄마의 역할도 훌륭하게 해낼 수 있다고 깨달았다고 덧붙이며. 그리고 보람은 내 얼굴을 보며 “나를 잃지 않는 게 중요해”라고 몇 번이나 강조했다. 머리를 댕 맞은 기분이었다. 보람은 역시 멋진 여성이었다. 이제 그녀가 얼마나 멋진 엄마가 될지 벌써부터 궁금하다. 


두 사람의 이야기에 우리 부부가 숙연해지자 분위기 전환을 하려던 지훈은 “육아가 힘들어서 회사에 더 있다 집에 갈 때도 있어.”라고 고백했다가 보람과 나에게 힐난의 눈초리를 받기도 했다. 그렇게 한참 눈물과 웃음이 오가는 두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있는데 아이가 칭얼댄다. 그러자 누가 먼저라고 할 것 없이 지훈과 보람은 아이 앞으로 달려가 온갖 장난감을 흔들어댄다. “우리 아기, 예쁜 아이”라며.


우리 부부는 집으로 돌아오는 길, 그동안 서로 눈치를 보느라 피하기만 했던 주제를 입 밖으로 꺼냈다. 일을 더 하고 싶다고, 나와 그가 아닌 또 누군가를 살필 여력이 없다고 마음속 깊게 묻어두었던 말을 툭 뱉어냈다. 이를 묵묵히 듣다가 자신이 꿈꿨던 가족의 모습에 대해 이야기를 하면서 남편은 눈물을 흘렸다. 하지만 이내 내 결정이 설 때까지 재촉하지 않겠다고, 행여 생각이 바뀌지 않더라도 강요하지 않겠다고 다짐하듯 말했다. 그 순간 나는 불현듯 깨달았다. 그동안 나는 아이의 문제는 낳는다와 낳지 않는다 중 하나를 결정하는 일이라고만 생각했다. 과정 중에 불가피한 언쟁과 누군가의 포기라는 선택이 있을 수 있겠다 정도로만 안일하게 생각했다. 


이렇게 누구 한쪽이 본인이 평생을 추구하던 가치관을 포기하고 상대의 신념을 오롯이 존중할 일이라곤 생각하지 못했다. 남편은 나를 위해 자신의 세상을 기꺼이 내려놓았다. 나는 괜히 남편에게 미안해지고 눈물이 날 것 같아 괜히 장난을 쳤다. 아직은 우리 서로를 잘 키워보자며. 내가 아직 애 같으니까 괜찮지 않냐며.


나는 아이를 매우 사랑하지만 나를 키우기도 바빠 여력이 없는 딩크족(Double Income, No Kids)이다이기적이지만 아직은 나와 남편우리 두 사람이 먼저 절대 행복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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