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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둥로이 Jul 14. 2023

The King’s Speech (2011)

폭망의 추억

이 영화를 보며 1년 반 전 순간이 떠올랐다. RMIT에서의 첫 수업. 얼마나 긴장했던지 수업 전 날 잠을 설쳤음은 물론이다. 과연 내가 영어로 세 시간짜리 수업을 할 수 있을까. 그전에는 한국어학과에서 모국어로 수업을 했을 뿐 외국어로 수업을 하는 건 처음이었다. 왜 슬픈 예감은 틀린 법이 없나. 첫 수업 중 불안한 예감은 현실이 되었다. 단어 하나가 머리에 떠오르지 않아 멘붕에 뻐져버렸던 그 순간, 앞이 하얗게 변했고 현기증까지 느껴졌다. 그 부분에 대한 설명을 다음 시간으로 미루며 간신히 상황을 모면했지만 지금도 그 순간을 떠올리면 가슴이 조여 온다. 그랬던 내가 (여전히 많이 부족하지만) 이제는 학생들과 적당히 문답과 농담도 나누며 강의를 한다. 오히려 이 영화를 보면서 조지 6세보다는 그의 스피치 교정 선생인 레오넬에 더 감정을 이입하며 봤다. 이제 나도 가르치는 입장이 되었으니까. 내 수업에서 학생들은 거의 매주 프레젠테이션을 해야 한다. 그들 역시 모국어가 아닌 영어로 발표하기에 두려움을 느끼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단순히 슬라이드를 읽거나 심지어 발표 내용을 통째로 암기해 오는 경우도 있는데 그건 한눈에 알아볼 수 있다. 난 항상 학생들에게 청중의 눈을 마주치고 그들에게 재미난 이야기를 해준다는 심정으로 발표를 하라고 한다. 청중의 눈을 마주치고 그들에게 말을 거는 것은 처음에는 무척 힘들지만 일단 하고 나면 훨씬 마음이 편해진다. 이건 직접 경험해 봐야만 깨달을 수 있다. 그렇게 매주 학생들이 발표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하는 모습을 보는 건 선생의 기쁨 중 하나다. 영화의 마지막 부분이 감동을 자아내는 것 역시 레오넬이 조지 6세의 라디오 방송 연설을 지켜보며 느끼는 뿌듯함과 희열 때문이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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