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혜교와 전여빈에 기댄 심심한 드라마
※스포일러 주의
오랜만에 송혜교, 전여빈 주연의 <검은 수녀들>을 응원하려고 반려인과 함께 영화관을 방문했다.
<히트맨 2>로 들어가는 그룹과 <검은 수녀들>로 들어가는 그룹이 나뉘었다. 누군가는 더 글로리의 문동은이 얼핏 보인다고 했지만 그렇지는 않았다. 잘 차리지 않은 밥상에도 최선을 다한 송혜교와 전여빈이 안쓰럽고, 이런 밥상을 차려놓고 배우 송혜교와 전여빈을 초대한 권혁재 감독이 괜히 원망스러웠다.
<검은 수녀들>을 다 보고 떠오른 두 장면은 담배를 피우는 송혜교와 불구덩이로 들어가는 송혜교의 모습이다. 강렬한 장면이나 예상 밖의 장면이 별로 없다는 말이다. 공식적으로 구마의식을 실행할 수 없는 수녀의 위치에서 할 수 있는 일이란 욕을 하거나 헛웃음을 짓는 등 미미하게 사제단과 각을 세우는 정도라고 할까. 서사를 이끌어가는 주요 메타포인 타로 역시 남성 중심적 그림과 해석이 주인 스미스 웨이트 타로여서 여성서사영화에 적합하지 않아 보인다. 여교황카드가 있는데도 굳이 남교황 아래 앉은 두 명의 탈모남성으로 보이는 타로카드를 형상화하느라 구마의식 전에 유니아 수녀의 머리에 안수한 후에 바오로 신부가 영대(stole)를 넘기는 장면도 이상하다. 여성서사영화에 어울리는 마더피스 타로나 여신타로, 주머니 속 여신타로 등을 사용했다면 더 좋았을 것이다.
사제들이 몇 번이나 ‘서품도 받지 않은 수녀’라고 비아냥대는 조롱도 문제다.
서품을 받지 못한 수녀를 비난할 것이 아니라 사제로서 구마 능력을 갖추든지, 교황청에서 여성에게도 서품 받을 환경을 마련하거나 잘못된 성서 해석을 이제라도 바로잡는 것이 먼저 아닌가.
영화에는 부마(付魔)와 구마(驅魔)라는 말이 많이 나온다. 퇴마(退魔)는 들어봤는데, 부마와 구마는 낯설다. 부마는 귀신 들린 현상을, 부마자는 귀신 들린 사람이다. 구마와 퇴마는 모두 귀신을 쫓아내는 일로, 엑소시즘(exorcism), 축사(逐邪)라고도 한다. 영화에서 특히 실망스러운 장면은 구마의식을 못하는 바오로 신부가 구마의식의 권위자로 등장하는 장면과 구마의식을 수행한 유니아 수녀가 미카엘라 수녀에게 빨리 가까운 성당에 가서 종을 세 번 울리라는 장면, 그리고 구마의식을 수행한 유니아 수녀가 솔로몬의 72 악마 중 서열 4위에 해당하는 대후작인 가미긴을 자신의 자궁 속에 가둔 채 불구덩이로 들어가는 장면이다. 유니아 수녀가 천신만고 끝에 구마의식을 수행했는데, 굳이 가톨릭교회의 종 세 번을 더 울려야 구마가 완성되는 것처럼 연출한 의도가 궁금하다. 가장 분개한 장면은 주인공인 유니아 수녀가 자신의 배를 잡고 불구덩이 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모습으로, 흡사 가부장제 기독교가 인류의 모든 죄를 뒤집어씌운 하와를 보는 것 같기도 하고 중세시대 교회와 국가가 부자과부나 똑똑한 여성들을 대거 마녀화하면서 화형하는 장면과 오버랩되어 당혹스러우면서도 불편했다.
여성서사영화에서 가장 기대한 유니아 수녀와 미카엘라 수녀의 끈끈한 여성연대는 기대에 못 미쳤을 뿐 아니라 두 주인공 수녀의 서사를 촘촘하게 설명하지 않은 것은 영화의 치명적인 약점이다.
한 생명을 살리기 위해 그토록 몰입하고 집착하는 유니아 수녀(송혜교 분)의 서사에 대한 설득이 전혀 없고, 미카엘라 수녀(전여빈 분) 역시 자신이 본 환상에 왜 그렇게 사로잡혀 있는지 보여주지 않는다. 틱톡이나 유튜브의 숏츠가 인기인 시대, 전자책이나 유튜브 영상도 1.5배속이나 2배속으로 듣는 시대에 인물에 대한 설득이 부족한 데다 긴장감을 끌어올려야 할 구마의식은 긴장감이 떨어진다. 여성서사를 내세운 <검은 수녀들>에서 강렬한 인상을 준 인물은 아이러니하게도 모두 남성 배우다. 악령이 씐 희준역의 문우진과 무당집에 사는 말더듬이 애동역의 신재휘가 두 주인공보다 돋보일 정도다. 여성서사영화를 응원하는 마음만으로 두 시간을 버티기에는 고리타분하고 위계적인 가톨릭교회 너머의 세상이 도무지 보이지 않아 더욱 허탈했다.
영화에서 음향효과는 감정과 이미지를 전달하고, 영상을 풍부하게 만드는 역할로 굉장히 중요하다.
대사, 음악, 해설을 제외한 소리, 또는 의도적으로 부가한 음향이 음향효과인데, 긴장감을 고조시켜야 할 장면에 음악이 없거나 부적절한 음향이 사용된다면 그 지루함과 불편함을 어떻게 견딜 것이며, 특히 배우의 대사가 잘 안 들리면 얼마나 답답하겠는가. CGV 영화관의 스피커 성능의 문제인지, 음향이나 녹음감독의 탓인지는 모르겠지만 쨍하게 귀를 찢는 음향이 거슬렸고 주연배우의 대사가 잘 안 들려 영화 초입에 몰입을 방해했다. 배우의 대사가 잘 안 들린다는 리뷰가 꽤 있는 걸 보면 분명 음향효과에 문제가 있다.
관객은 영화 소비의 주체이자 영화 생태계를 창조하는 주체다.
역사나 현실의 불평등과 부정의를 직시하는 영화를 본 관객은 지워진 역사나 현실을 복기하기도 하고, 현실 너머의 정의로운 세상을 보면 현실을 개혁하려는 욕망이 들끓는다. 때로는 지지부진하고 팍팍한 현실의 도피처로, 어떤 날은 주인공에 빙의해 새로운 인생을 살고 싶어 영화를 보거나 영화관을 찾는다. 그런가 하면 보고 싶은 영화가 없다면 보고 싶은 시나리오를 쓰거나 직접 영화를 만들기도 하는 주체 역시 관객이다.
영화산업은 누구나 제 인생의 주인공으로 살고 싶은 세상에서 두 시간이란 긴 시간을 피동적으로 묶어놓는 치명적인 약점을 지녔다. 영화 제작사와 배급사가 살아남는 길은 영화의 소비 주체이자 영화 생태계를 창조하고 견인할 주체인 여성관객과 여성감독을 존중하며, 적극적으로 의견을 수렴하고 지원하는 일일 것이다. 관객은 다양한 여성서사와 소수자서사를 볼 권리가 있고, 감독에게는 더 다양하고 의미 있는 시나리오와 연출력으로 관객을 만날 기회가 주어져야 한다. 류승완 감독의 조감독 출신인 권혁재 감독은 영화 <해결사>(2010)로 데뷔한 뒤 2023년 <카운트>를 선보였고, 세 번째 영화 <검은 수녀들>을 통해 미스터리 드라마라는 장르에 도전할 기회를 얻었다.
그렇다면 <우리 생애 최고의 시간>과 <리틀 포레스트>의 임순례 감독, <화차>의 변영주 감독, <미술관 옆 동물원>과 <집으로...>의 이정향 감독, <미쓰 홍당무>와 <비밀은 없다>의 이경미 감독, <카트>의 부지영 감독, <벌새>의 김보라 감독, <남매의 여름밤>의 윤단비 감독, <우리들>의 윤가은 감독, <찬실이는 복도 많지>의 김초희 감독, <69세>의 임선애 감독에게 <검은 수녀들>이라는 장편 연출의 기회가 주어졌다면 과연 어떤 결과물이 나왔을지 궁금하다.
영화 제작사와 배급사 및 넷플릭스, 디즈니+, 애플 tv+, 웨이브 콘텐츠 기획자와 투자자들에게 당부하고 싶다. 가까운 영화관과 더 많은 상영관 및 OTT 플랫폼에서 여성 창작자와 여성 감독의 작품이 선보이도록 방법을 모색하고 다양한 기회를 제공하기를, 문화 수용자로서의 관객과 시청자를 바라보는 시선에서 건강한 문화생태계를 함께 견인할 동등한 주체로서 관객과 시청자를 새롭게 인식하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