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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수녀들 후기 2탄. 한 뼘 더 깊이

상징과 해석의 역사, 그리고 정상성에 대하여

by 윤소리 Jan 31. 2025

※스포일러 주의


영화 <검은 수녀들>15세 이상 관람가에 114분 미스터리, 드라마를 내세운 오컬트(occult: ‘감춰진, 숨겨진, 비밀등을 뜻하는 라틴어 Occultus에서 유래. 유럽 사회의 전통적인 가톨릭 교리에 어긋나는 밀교(密敎). 과학적으로 해명할 수 없는 신비적 초차연적인 현상. 또는, 그러한 현상을 일으키는 기술) 영화다. 


성대신문에 의하면, 오컬트는 크게 이론적 오컬트와 마술적 오컬트로 나눈다. 이론적 오컬트는 일반 학문처럼 어느 정도 이론적 체계를 갖추고 있는 점성술, 수상(手相), 관상, 사주, 풍수지리, 타로카드 등을, 마술적 오컬트는 주문이나 의식, 부적을 중요시하며 염(念) 영능, 연금술 등의 마술적 요소가 주를 이룬다. 오컬트를 미신적이고 비과학적인 것이라 폄하하지만, 오컬트학, 심령학 등 학문적 차원의 접근도 줄곧 이뤄져 왔다. 1882년 캠브리지 대학 학자들에 의해 설립된 영국 심령연구협회, 1925년도에 설립된 런던 대학 부속 심령학 연구소 그리고 1969년 세계 최대의 과학 단체인 미국과학진흥협회가 정식 단체로 인정하는 미국 초심리학회 등 현대에도 오컬트에 대한 체계적 연구는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검은 수녀들>은 천주교식 구마뿐만 아니라 이론적 오컬트이자 서양의 점술 도구인 타로카드와 마술적 오컬트인 한국의 무속 신앙 굿과 부적, 주문 등을 적극 사용했다. 미카엘라 수녀가 사용한 타로카드는 영화에서 그들에게 닥쳐오는 운명과 해결책에 대한 힌트를 제공하는 주요 도구였다.

      

브런치 글 이미지 1

<검은 수녀들(2025.1.24.)>은 장편 '검은 사제들(2015)'로 데뷔, '사바하(2019)', '파묘(2024)'까지 K 오컬트 대표 감독으로 자리매김한 장재현 감독의 '검은 사제들'의 스핀오프(spin-off: 기존의 작품에서 파생된 작품)로 알려지며, 개봉 6일 만에 누적 관객 100만을 찍었다. 손익분기점은 160만이다.

<검은 수녀들>의 권혁재 감독은 수녀가 구마를 하는 오컬트물이 없어 고민이 많았고, 인물의 감정에 집중하며 묘한 느낌을 주고자 오컬트보다 드라마로 가자고 판단했다고 한다.


<검은 수녀들>은 가톨릭교회의 여성 차별을 명확히 보여준다. 12 형상에 속한 악령을 쫓는 것보다 수녀로서 교구에 인정받는 것이 더 어려울 거라는 대사가 말해주듯이. 12 형상은 장미십자회에서 쫓는 악령으로, <검은 사제들>과 <검은 수녀들>의 세계관에 등장한다. 장미십자회는 중세 후기 독일에 형성된 비밀결사로,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과 구원을 뜻하는 십자가와 장미 문장이 그려진 깃발을 사용했다. 고대에 존재했다가 사라진 비교의 가르침을 비밀리에 보유했다고 알려진 장미십자회는 교회의 권위에 반대했고, 유럽 대륙의 종교 제도를 개혁할 것을 앞장서 주장했기에 가톨릭 단체와 교회로부터 지탄과 경계의 대상이 되었다. 영화에서는 가톨릭 소속 비공식 단체로 나온다.


브런치 글 이미지 2

25년간 모든 언어권의 민담과 설화, 신화, 전설을 수집하고 연구했으며, 하나하나의 항목마다 지난 수천 년 동안 가부장제가 왜곡해 온 여성적 종교의 운명이 기록되어 있는 『여성상징사전 2 신적인 존재와 의례(바버라 G. 워커 글·그림/여성상징번역모임 옮김/돌고래출판사)는 한국에서는 100쇄 이상 찍으며 아직도 읽히고 있는 흑설 공주 이야기로 잘 알려진 바버라 워커의 저작이다. 상징인 ‘열쇠’를 보면 그리스도교의 교황이 ‘천국의 열쇠’라고 주장하기 오래전부터 열쇠는 사후세계에 대한 지식을 상징했다. 예수가 천국의 열쇠를 페트로스(베드로)에게 주었다는 마태오 복음서 16:19는 페트로스가 활동했던 시대와 맞춰보면 거짓이고, 동방 교회와의 정치적 투쟁에서 로마인을 지원하기 위해 3세기 후에 복음서에 집어넣었다고 한다.


특히 중세의 타로카드 상징에 따르면 교황이 아니라 여교황이 모든 중요한 열쇠를 쥐고 있었고, 여교황은 그리스인들이 죄인과 축복받은 자들 모두 사후에 가게 된다고 믿은 지하세계의 입구(그녀의 등 뒤에 숨겨진 문)를 지키는 페르세포네와 같았다고 하니 <검은 수녀들>에서 장미십자회 신부를 통해 어렵사리 ‘베드로의 열쇠’를 공수할 필요는 없었다.      


브런치 글 이미지 3

주인공(송혜교)의 세례명 ‘유니아’는 어떤가. 미주장로회신학대 신약학 교수인 이상명 교수는 미주중앙일보를 통해 유니아가 로마서 167절에서 언급된 최초의 여성 사도라고 말한다. 

남성이 주도했던 성서 해석의 역사에서 유니아가 ‘내 친척이요 나와 함께 갇혔던 안드로니고와 유니아에게 문안하라. 그들은 사도들에게 존중히 여겨지고’로 번역했지만, 헬라어 원문의 정확한 번역은 ‘그들은 사도들 가운데 뛰어난 사람들이었다’. 영화는 유니아 수녀를 사도라고 주장하지는 않지만, 최초의 여성 사도인 유니아를 주인공 이름에 차용한 것은 가톨릭교회가 인정하지 않은 수녀의 사도권을 주인공 유니아에게 부여한 것은 아닐까.     


유니아 수녀(송혜교)는 가톨릭이 공인한 해방수녀회 소속 신분임에도 가톨릭이 이단으로 규정한 무속인들과 적극적으로 협력한다. 

해방수녀회는 인간의 완전한 해방을 위해 사랑을 실천하는 수녀회다. 유니아 수녀는 자신처럼 수녀임에도 영적 능력을 갖춘 자들을 '미친년들'이라 칭하는가 하면 미카엘라 수녀(전여빈) 또한 제도 밖으로 밀려난 영적 능력자들을 '괴물'이라 칭한다. 자신의 영적 능력을 타인의 고통을 제거하는 데 쏟아붓는 자신과 무리들을 통칭해 미친년들이라 칭하는 유니아 수녀나 타인의 고통을 감각하는 뛰어난 능력을 저주로 인식한 미카엘라 수녀의 괴물이라는 자기 비하적 발언은 곱씹어볼 가치가 있다.


브런치 글 이미지 4

이 사회가 작동하는 원리는 정상성과 엘리트주의, 자본과 종교, 법치가 손을 마주 잡고 권력과 명예, 돈을 거머쥔 사회가 아닌가. 그들의 헌법과 법치, 그들이 판단한 정의와 민주를 앞세워 조금이라도 그와 반대로 살면 미친년과 괴물로 제거하는 사회. 과연 미친년과 괴물로 호명된 사람들이 사회에 끼치는 해악이 심각한가. 소위 정상성과 엘리트주의에 빠져 거짓말이 일상이 된 정치인과 법조인, 돈과 권력에 눈먼 자본가와 종교지도자들이 한국사회에 미치는 해악이 더 치명적인가. 실리와 돈이 힘을 발휘하는 세상에서 사람이 우선인 인물을 만난 건 얼마나 보석 같은 발견인가.


유니아 수녀는 같은 해방수녀회 출신 수녀였지만, 지금은 무당이 된 동료인 효원 보살(김국희)을 자신과 동등하게 대하며, 중요한 것은 사람을 살리는 일임을 거듭 강조한다. 유니아 수녀는 가톨릭 교회법과 규칙보다 한 사람의 생명이 더 중요하다는 신념을 가진 인물이다. "(귀신 들린) 부마자를 방관하는 것도 살인"이라고 따끔하게 사제를 꾸짖는 대사에서 그의 신념이 더욱 빛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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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은 영화에 나오는 효원 보살의 굿을 넋건지기굿에서 영감을 받아 완성했다고 한다.

‘넋건지기굿’은 물에 빠져 죽은 사람의 넋을 물속에서 건져 저승으로 보내주는 굿으로, 각 단계가 있어 경문을 외우고 춤추는 것 모두 고증에 맞춰서 준비했다. 한국민족대백과사전에 기록된 동해안 일대에서 흔히 행해지는 넋건지기굿의 순서를 약식으로 정리해 보았다. 먼저 죽은 사람의 집 부엌에서 ‘조왕굿(전라남도 순천이나 화순에서 부엌을 관장하는 조왕신에게 축원하는 굿거리로, 독립된 굿 이름이 아닌 큰 굿의 한 절차로 진행)’을 하고 안방에서 ‘시준굿(동해안 일대의 굿에서 시준을 모시는 굿거리로, 생산신에 대한 제향으로서 다른 지방의 제석거리에 해당)’을 한 다음 망인이 빠져 죽은 물로 나가 ‘혼건지기’를 한다. 이때 장구·징·꽹과리가 고조된 가락으로 울리고 무당은 용왕신에게 죽은 사람의 혼을 내보내달라는 축원을 한다. 축원이 끝나면 무당은 제물을 조금씩 한지에 싸서 바다에 던지는데 이것을 ‘용왕밥’이라고 한다. 그렇게 흰 천을 끌고 다니다 영혼이 건져지면 천 안에 머리카락이 나온다. 그러면 넋그릇을 배위로 건져 올린 후에 배는 다시 마을로 돌아오게 된다.


아마도 영화에서 넋건지기굿을 채택한 이유는 악령을 저승으로 보내기 위한 의식 같고, 희준을 두 수녀가 양쪽에 끼고 바닷물 속으로 들어간 것은 희준의 혼을 건지는 의식 같다. 그전에 검은 닭(?) 몇 마리를 던지고, 무당이 허리에 둘렀던 흰 천으로 제사 지낸 밥그릇을 돌돌 말아 묶어 바다에 던진 것은 용왕밥으로 짐작된다. 무당인 효원 보살이 고조된 가락에 맞춰 항아리를 밟고 춤을 추는데, 갑자기 항아리가 박살 난 것은 넋건지기굿의 실패를 뜻하고, 막강한 악령이 자신의 힘을 과시한 장면으로 보인다.     


악은 온 세상에 창궐하고, 악인은 어디서나 힘을 과시하며 거짓을 진실로 포장하는 현실 속에서 <검은 수녀들>이 던지는 메시지는 무엇인가. 가톨릭교회의 종교법 아래에서 배제되는 여성과 귀신 들린 부마자, 무당과 말더듬이는 내 모습이고, 이웃의 모습인 동시에 우리 사회가 밖에 나오지 말라고, 목소리를 지우고 배제한 사람들이 아닌가. 그들만의 언어와 세상을 소유한 종교지도자들이 변화를 거부하는 모습이나 작은 기득권 이나마 행사하려 버둥대는 내 모습은 일면 쌍둥이가 아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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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만든 법과 정치가 사람을 죽이고 살리는 무엄한 권력이 되어버린 한국사회에서 2030 세대는 헌법을 필사하고 4050 세대는 헌법을 읽으며, 민주주의와 현대사를 고민하는 현실은 한편 슬프지만 진정 반갑고 고마운 일이다. 과연 그러한가를 질문하고 법과 역사, 상징과 해석, 어떤 증거나 전문가의 말이라도 비틀어보고 의심하는 태도를 훈련하는 일 또한 얼마나 소중하고 아름다운지. 짧은 생애를 사는 동안 작은 에서 배우고, 소외되고 배제된 존재들에게 곁을 내주며, 불평등과 부조리, 부정의에 자신만의 방식으로 목소리를 내면서 때로는 함께 저항하고 행동하는 인생 역시 얼마나 가치로운가.





*커버 이미지: 교보문고> POD 검은 수녀들: 오컬트 연대기

*영화 이미지 4장: 일간스포츠 이주인기자(2024.12.16)> [영화] 송혜교, 허락되지 않은 구마 도전…‘검은 수녀들’ 티저 예고편 공개

*영화 이미지 1장-넋지기굿 현장: 스포츠경향 이다원기자> [편파적인 씨네리뷰] 고요하디 고요하도다, '검은 수녀들'

*헌법 열풍: [21세기북스] 지금, 인문학이 필요한 시간님 인스타그램

*책 이미지: 알라딘:북펀드 여성을 위한 상징사전 1,2=> 여성상징사전 1,2로 발행(2024.12.12. 초판 1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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