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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소리 Nov 09. 2024

생각만 해도 웃픈

파트너의 무심한 습관

생각만 해도 웃픈 몇 가지가 있다. 파트너의 무심한 습관이 그렇다.

먼저 걸음걸이가 웃긴다.

지금도 걸을 때 팔이 앞뒤가 아니라 좌우로 움직인다. 오래전 북한군의 열병식처럼 좌우로 흔드는 폼이 이상하면서 웃음을 자아낸다. 그를 처음 만났을 때 저 사람 뭐지, 어떻게 팔을 저렇게 흔들며 걷지 했었다. 나중에 물어보니 팔을 좌우로 흔드는 줄 몰랐단다. 군대에서 저렇게 흔들었으면 혼났을 텐데 어떻게 된 거예요 글을 쓰면서 또 물었다. 군 입대 전에 족구 하다가 왼 팔꿈치를 다쳤는데, 재활을 잘 못했다고 했다. 군대 행군에서도 앞뒤로 흔들지 못하고 좌우로 흔들어 독일군 장교냐며 혼이 났단다. 게다가 독일 사람마냥 이국적으로 생겨 국부론의 저자 “아담 스미스”로 불렸다고도 했다. 사연이 있는 습관이었다.

     

두 번째는 거꾸로쟁이 습관이다.

파트너는 옷의 앞뒤를 생각 않고 입는다. 앞에 붙은 브랜드 표시가 뒤로 가거나 브랜드가 없는 옷은 목이 꽉 끼게 입는 경우가 많다. 본인은 이상한 줄 모르고 나가는데, ‘뭔가 이상한데’ 하고 자세히 보면 분명 거꾸로 입었다. 거꾸로 입는 것을 넘어 출근하는 모습을 보면, 한쪽 바짓단이 양말에 끼어 끝까지 내려오지 않는 일이 대부분이다. 뭔가 이상한 느낌이 없냐고 물으면 암시롱 않단다(전라도지역어, 아무렇지 않다, 아무 상관 않다). 더 웃긴 건 옷을 거꾸로 입어본 기억이 거의 없는 내가 파트너와 살면서 몇 번이나 거꾸로 입었다. 이런 것도 닮는가 하며 씁쓸하게 웃었다. 지금은 더 많이 좋아해서 닮아가나 싶고, 바른생활에 새로운 리듬을 주려는 선물인양 긍정적으로 수용하게 되었다.      


나와 관계된 사람도 바르게, 반듯하게, 예의를 지켜야 체면이 서는 성격이어서 처음엔 바짓단 내리기, 비틀어진 가방 끈 바로잡기, 재킷 깃 내려주기 등 ‘파트너 출근 챙기기’ 미션이 만만치 않았다. 정작 본인은 아무렇지 않은데, 그걸 지켜보는 내가 편치 않아 늘 바로잡기 바빴다. ‘바르게, 반듯하게, 예의 바르게’가 중요하고 타인의 시선을 신경 쓰는 인생에 거꾸로남, 암시롱안해남이 들어와 재미나게 삶을 헤집어놓았다.      


세 번째는 좋아하는 옷이나 신발, 모자가 있으면 그놈만 팬다. 

매일 바꿔 입거나 적어도 이틀에 한 번은 다르게 입어야 기분 전환도 되고 옷도 쉼을 가질 텐데 싶어 그 주에 입을 윗옷, 바지, 재킷을 코디해서 걸어놔도 한 가지로 1주일을 가거나 바빠서 말을 안 할 때는 심지어 2주를 간 적도 있다. “같은 옷 입고 다니면 사람들이 뭐라고 안 해요?”하면 남자들은 남의 옷에 신경 안 쓴다고 대꾸했다. 목의 때, 팔목 때는 잘 지워지지 않아 애벌 손빨래를 하니 자주 옷을 갈아입어라 간청해서 조금씩 바꿔 입는다. 이 사람은 왜 이렇게 됐을까 사연을 들어보면 옷이나 물품을 바꿔가며 쓸 형편이 아니어서 한 놈만 패게 되기도 했고, 부모님이 맞벌이를 해서 돌봄을 제대로 못 받은 영향도 있었다.     


파트너와 대화하고 생활하다 보면 비슷하면서도 다른 문화권에 살았다는 표가 생활습관 속에 은근히 묻어 나온다. 20대의 추운 날 영화 보러 간다고 선글라스에 뾰족구두를 신어 동상이 걸린 맵시꾼 엄마는 집 밖에 나가도 갖춰 입고 나가라는 신념이 확고하셨다. 팔순이 된 지금도 외출하면 멋쟁이소리를 종종 들으신다. 그걸 보고 자란 동생들도 패션 감각이 남다르다. 제일 떨어지는 나조차 매번 다른 옷을 입고 외출하기에 패션이 좋다는 말을 들을 정도다.      


파트너와 살면서 조금씩 조율되는 장점이 있다면 남의 시선에 무뎌진다는 것, 반면에 파트너는 패션 센스가 높아지고 세련되었다. 매일 바꿔 입을 옷을 코디하느라 신경 쓰던 나는 때로 2일이나 3일 같은 옷을 입거나 윗옷이나 바지 중 하나만 바꿔 코디하는 등 옷에 신경을 덜 쓰고, 파트너는 적어도 3일마다 바꿔 입으려 애쓴다. 서로의 장점과 단점이 보완되면서 균형을 이뤄가는 중이다.      


서로 공통분모가 많아 좋아서 함께 살지만, 살면서 너무 다른 면에 충격을 받고 짜증도 나고 갈등이 생겼다. 때로 다른 점이 서로를 보완하고 극한 충돌을 피하게도 했다. 오늘은 월급 들어온 기념으로 집 근처를 넘어 이웃동네로 넘어가 점심을 먹었다. 아주 맛있는 정도는 아니었지만 데이트하는 기분으로 서로를 챙기고 교보문고에 들러 파트너는 볼펜과 다이어리를 샀다. 나는 독립서점에서 사지 못한 한강의 창작그림책을 포함한 8권과 전자책으로 읽었지만 문장이 수려해 필사하려고 산 2024 톨스토이문학상 수상작인 김주혜의 『작은 땅의 야수들』, 2020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루이즈 글릭의 시집 『일곱 시절』을 골랐다. 바로결제코너에서 바코드를 찍는 나를 보던 파트너가 넌지시 자신의 카드를 건넸다. 선물 받는 기분이 꽤 좋았다. 돌아오는 버스 정류장에서 윤소리 말고 ‘윤강’이라 부르며 놀리는 표정이 웃겨서 마주 보며 한참을 웃었다. “이번 달은 여기까지 선물 끝”이라며 선 긋는 파트너를 보며 “그래요. 이번 달엔 냉파(냉장고음식 파먹기)예요.”라며 눈을 흘겼다.   

   

같이 산 지 7년이 조금 지난 요즘, 헤어질 고비를 여러 번 넘기면서 서로의 공통점을 즐기고 다른 점은 이해하게 되었다. 상대가 싫어하는 부분은 건드리지 않으려 조심하고, 함께 할 수 있는 좋은 것은 시간을 맞추는 수고가 있어도 같이 하려고 노력한다. 매일 사랑하는 사람에게 서운하게 한 일은 없는지, 그에게 행복과 즐거움을 선물했는지 돌아본다. 언제 떠날지 알 수 없는 인생이기에 가장 소중한 사람에게 “당신 덕분에 많이 웃었고 행복했다.”라고 말하고 싶고, 그에게도 그 말을 듣고 싶으니까.





※ 커버이미지 출처: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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