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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안관계, 현상유지와 현상타파 사이 그 어딘가

[대만 소소한 일상] 현상유지 둘러싼 제로썸 게임, 인적교류는?

by KHGXING

최근 대만 정부 조직에 변화가 있었다. 지난 9월 9일 운동부(運動部, Ministry of Sports)를 신설했다. 교육부 산하에 ‘체육서(體育署)’란 조직으로 있던 부서를 부처로 승격한 것이다.


예정돼 있던 소식이지만 부처 수장이 역대 최연소 장관이라는 점이 꽤 화제다. 30세 이양(李洋)이라는 인물로 올림픽 배드민턴 종목에서 금메달을 두 개 딴 운동선수 출신이다.


운동부 신설에 대만 언론과 대만인들 다수는 호감어린 반응이다. 야구를 비롯한 프로스포츠는 물론이고, 각종 생활체육에 진심인 대만이기에 그러할 듯싶다. 게다가 수교국이 12개에 불과한 대만으로선 국제스포츠를 통해 자국의 존재를 보이고 싶어하기에 운동부가 그러한 역할에도 힘써주기를 바라는 분위기다.


그러다 대만 매체 중국시보(中國時報)의 한 칼럼이 눈에 띈다. 으레 나오는 운동부 당부 내용에 양안 관계에도 힘써 달라는 점이 눈에 띈다. 제목도 ‘스포츠 교류 양안평화의 언어’다. 올림픽 스포츠가 어떻게 평화에 기여하는지 소개하면서는 느닷없이 한반도가 소환됐다. 2000년 시드니올림픽 개회식 당시 남북선수단이 한반도기를 들고 공동 입장한 장면을 거론하며 “양안 스포츠 교류는 양측간 평화로운 소통의 통로가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양안 인적교류 갈수록 감소, 여전히 코로나 이전 회복 못해


허나 현재 라이칭더(賴清德) 정부가 이를 원할지는 모르겠다. 갈등관계인 중국과 대만은 서로에 대한 경계심을 늦추지 않고 있고, 관광을 비롯한 인적교류도 오히려 더욱 옥죄고 있기 때문이다. 상호간 단체관광은 금지돼 있을 뿐만 아니라, 대만 정부는 이에 더해 내년 7월부터 홍콩과 마카오에 여행을 떠나는 대만 공직자의 사전 신고 및 내부 시스템 등록 규정을 신설했다. 중국이 눈에 보이는 무력은 물론 가짜뉴스를 비롯한 다양한 심리전 방식으로 대만 사회를 흔들고 있다는 판단에 따른 조치들이다.


이러다 보니 대만 관광산업 현장에서는 불만의 목소리도 비등하다. 대만 인아웃바운드 관광에서 대륙 중국이 차지하는 비중이 워낙 큰 상황에서 대륙과의 인적교류가 막혀 있으니 코로나 이후에도 어려움이 가중되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이 이를 노렸을지도 모르겠다. 글로벌 최대 아웃바운드 관광객 송출국인 중국은 관광을 무기로 상대국에 다양한 정치경제문화적인 문제를 압박해 왔으니 말이다.


실제로 중국인의 대만관광은 대만정권의 성격에 따라 부침을 겪어 왔다. 2015년 4,184,102명으로 대만 전체 외래객에서 40.1%의 비중을 차지해 역대 최고치를 기록한 뒤, 2016년 민진당 차이잉원 정부가 들어선 이래로 계속 감소해 왔다. 2025.1~5월 대만방문 중국인은 264,267명으로 비중 또한 7.4%로 급감했다.


양안간 항공 노선도 2019년에는 중국 55개 공항에서 대만 6개 공항으로 63,905편이 운항했으나, 2025년에는 중국 15개 공항, 대만 4개 공항만 연결돼 있고, 올해 1~7월 운항편수는 18,609편에 불과해 연말 예측 기준 2019년에 비해 49.9%에 불과할 것으로 보인다.


대만인 다수 현상유지 원해


이러다 보니 대만인들의 우려가 느껴진다. 대만인들이 양안관계에서 원하는 방향은 현상유지일진대, 현 모습이 현상유지인지, 미국과 중국의 글로벌 경쟁 속에서 대만은 어디로 가야할지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대만인들이 현상유지를 원한다는 것은 대표적인 대만사회 여론조사에서 명확하게 드러난다. 대만의 국립정치대학 선거연구센터가 1992년 이후 매년 실시하고 있는 대만과 대륙의 관계에 대한 여론조사에서 ‘영원한 현상유지’를 지지한다는 비율은 2025.6월 기준 34.6%로 가장 높았다. 또한 두 번째로 응답률이 높았던 것도 ‘당분간 현상유지한 뒤 추후 결정’이었고, 26.5%였다. 즉 61.1%의 대만인은 현상유지를 원하고 있는 셈이다.


‘현상유지하되 점차 독립으로 나아가자’는 응답은 21.5%로 세 번째였으나, 2018년에서 2020년 사이 12.8%에서 25.5%로 큰 폭으로 증가(12.7%p)한 이후에는 지속 감소 추세다. ‘현상유지하되 점차 통일로 나아가자’, ‘즉각 독립’, ‘즉각 통일’은 각각 5.3%, 4.3%, 1.1%에 불과하다.


여론조사에서 알 수 있듯이 대만사람들은 불안정한 동북아 국제정치에서 대만이 위험을 회피하는 전략은 현재 상황의 변화를 막는 것이고, 변화는 바로 악화를 의미한다고 받아들이고 있는 듯하다. 자신이 어느 정치세력을 지지하는 이유는 그 세력이 현상유지를 중시 여기기 때문이다.


대만독립에 대한 입장 조사(1994~2925.6월).png 대만의 국립정치대학 선거연구센터의 대만과 대륙의 관계에 대한 여론조사


대만 여야, ‘현상유지를 깨는 것은 내가 아니라 저쪽’


그렇다면 지금 모습이 현상유지일까. 현상유지를 깨는 현상타파 세력은 누구일까. 이에 대한 해석은 입장에 따라 다르다. 누가 현상유지를 훼방하고 있고 현상을 타파하려 하는지 주장이 엇갈린다.


여당인 민진당을 지지하는 사람들, 독립지향세력에게는 중국이 현상타파 세력이고 야당인 국민당이 동조하고 있다. ‘하나의 중국’이라는 명분 하에 대만과의 통일을 밀어붙이면서 군사적으로 대만을 위협하고 있는데, 이것이 바로 현상유지를 위협하는 모습이라는 주장이다. 그래서 미국을 중심으로 하는 민주주의 동맹을 더욱 공고히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물론 미국에 트럼프 대통령이 들어선 이후 이에 대한 믿음도 다소 흔들리고 있지만.


반면 야당지지 세력에게 현상타파 세력은 여당 민진당이다. 대만 독립을 주장하면서 양안관계의 안정을 무너뜨리고 있다는 불만이다. 미국 또한 중국의 부상을 봉쇄하려 갈등을 야기하고 있고, 대만 지원이라는 미명 하에 중국을 자극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한쪽에게는 대만 민주주의의 현상유지를 깨려는 세력은 권위주의 국가 중국과 그를 활용하고 있는 국민당이고, 다른 한쪽에게는 양안관계의 안정이라는 현상유지를 깨려는 것은 독립을 획책하면서 중국을 자극하는 민진당과 미국인 것이다. 현상유지를 깨는 것은 내가 아니라 저쪽이라고 서로 어필하고 있는 셈이다.


대만 정국은 언제나 이렇게 현상유지를 둘러싼 제로썸의 싸움으로 진행된다. 그러면서도 대의명분 상에서는 점차 여당이 유리한 게 아닌가 싶다. 물론 여타 정책과 인물론에서 달라질 여지가 충분하지만, 일단 현상유지를 어떻게 해석할지는 대만인이 스스로 어떠한 정체성을 지니고 있는지에 가장 큰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대만인 스스로 자신을 중국인이 아니라 대만인이라 여기는 비율이 점차 높아가고 있고, 2025.6월 현재 62.9%를 차지하고 있다는 점은 대만인들이 현상유지를 어떻게 해석할지 힌트를 주고 있는 듯싶다.


하여간 이렇게 양안관계가 긴장과 갈등의 연속이고 2027년 전쟁설까지 제기되고 있으며, 정국이 혼란스럽다 하더라도 이를 지켜보는 입장에서는 대만이 부럽기만 하다. 그래도 1987년 이후 시작된 양안 이쪽에서 저쪽으로, 저쪽에서 이쪽으로의 왕래가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것은 분명하니 말이다. 앞에서 밝혔듯이 올해 5월까지 중국인 264,267명이 대만을 찾았다. 대만인 1,232,810명은 중국을 찾았다. 줄어들었다 해도 상호 인적교류가 약 150만명에 달하고 있다.


반면 우리는 ‘0’이다. 통일을 지향하는 특수 관계이건, 적대적 두 국가 관계이건 우리의 현주소는 ‘0’이다. 한없이 가벼운 ‘0’이라는 숫자가 더없이 무겁게 느껴지기만 한다.


[동북아평화협력연구원 '청연재 칼럼'에도 동시 게재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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