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이베이, 점심 <4>] 가성비 최고 한 끼, 극강의 매운맛 도전?
대만도 가을을 지나 겨울로 향하고 있습니다. 아침기온이 15도까지 떨어지고 있네요. 15도가 한국 사람에게 뭐 대수겠습니까만 대만 사람들에겐 서늘하게 느껴질 법합니다. 1년에 반 이상은 35도 정도의 낮기온이기에 그러겠지요. 파카와 두꺼운 외투를 입은 사람들도 눈에 띄기 시작합니다.
낮기온은 그래도 20도를 넘어가면서 햇살 쬐는 게 따사로이 느껴집니다. 그러면 이제 실내가 실외보다 더 춥게 여겨지죠. 대만은 난방 기능이 없기에 햇살이 없는 실내가 더 춥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추위를 좀 많이 타는 편인 저로서는 사무실에 있다 보면 다리가 추워요. 그래서 무릎담요를 하기도 합니다.
이런 날엔 점심시간이 더욱 기다려집니다. 인지상정 아니겠습니까. 따듯한 바깥바람도 쐬고 매콤한 것도 먹고 싶고요. 점심 먹으러 나가는 발걸음은 자연스레 사무실 앞 대로변 대각선 건널목을 건너고 있습니다. 이런 날엔 마라깐미엔(麻辣乾麵)이죠. 아 우리말로 한다면 매콤한 비빔면 정도일 것 같네요. 이걸 파는 식당이 그 건널목을 건너가야 있어요.
깐미엔은 한자 그대로 마른 면이죠. 즉 국물이 없는 면 요리를 의미합니다. 예전 중국에 근무할 때 먹던 깐미엔의 대표음식은 우한 지방의 러깐미엔(热干面)이었습니다. 면발에 마장, 즉 땅콩소스를 비벼 먹는 음식입니다. 거기에 오이채 등을 썰어 넣어 먹곤 하죠. 뜨겁게 하는 면요리는 아닌데 왜 ‘열(러, 热)’ 글자가 붙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마라깐미엔은 그 깐미엔에 마라소스를 넣은 겁니다. 물론 날씨가 추워지면 국물 음식이 먹고 싶어지긴 합니다. 대만의 대표 국물음식은 우육면이고요. 하지만 간혹 매콤 그 자체의 음식이 땅기기도 합니다. 물론 우육면에도 빨간 우육면이 있지만 매운 것을 잘 먹지 못하는 대만인들이기에 매콤하기보다는 그냥 빨간 우육면입니다. 게다가 전 한국식 매콤은 아니지만 기본적으로 얼얼하면서 매운 ‘마라’의 매콤함도 좋아합니다. 마라깐미엔은 가볍게 ‘자극적인’ 점심으로 먹는 데 부족함이 없는 한 끼입니다.
깐미엔은 기본적으로 심플한 요리이기에 들어가는 하나하나가 다 중요합니다. 우선 면발이 많은 일을 합니다. 그래서 대만의 깐미엔은 기본 이상입니다. 대만의 웬만한 식당의 면발이 먹을 만하기 때문입니다. 특히나 제가 점심에 많이 이용하는 우싱제(吳興街) 거리 식당들은 하나같이 면발이 훌륭합니다. 음식을 평가할 때 전 식감을 비교적 중시하는데 면발이 뚜걱뚜걱하지 않고 쫄깃합니다. 적당한 두께에 처음 먹을 때의 식감이 다 먹을 때까지 그대로입니다. 어떤 식당의 면들은 다 먹어갈 때쯤 되면 풀어지잖아요. 여기는 그렇지 않습니다.
제가 오늘 가는 식당도 마찬가지입니다. 우싱제 거리에 있는 식당에 걸 맞는 면발입니다. 꽤 통통한 두께에 씹는 식감이 일품입니다. 호로록 빨아들이면 그 탱탱함에 면발이 입 앞에서 춤을 춥니다. 머 저는 쭉 빨아들이기보다는 끊어서 먹는 편이긴 합니다만.
위치는 우싱제 기본 골목은 아니고 한 블럭 더 안쪽에 들어가 있습니다. 골목길 찾아가는 재미도 있습니다. 소위 대만감성 느낌이죠. 담벼락에는 담쟁이덩굴 같은 식물들도 있고 화분을 나란히 놓고 꽃을 키우는 집도 있습니다. 실제 꽃집도 하나 있습니다.
자 도착했습니다. 매운 것 하면 빨간색이죠. 간판에 적힌 식당 이름부터 빨간색입니다. 라왕쭝마라깐미엔(辣王忠麻辣乾麵), 영어로는 KSJ_KingSpicy J입니다. ‘우리집 정말 매운 마라깐미엔집이에요’라고 써놓은 기분입니다.
타이베이에 마라깐미엔집이 많진 않습니다. 그 가운데 한 집이 회사 근처여서 좋습니다. 특히나 이 집은 꽤 유명합니다. 마라깐미엔의 맵기 종류가 5종류로 나눠지는데 가장 단계가 높은 극강의 매운 깐미엔을 다 먹을 경우 음식 값은 받지 않고 대신 500 대만달러, 우리 돈으로 23,500원 상금을 줍니다. 그리고 사진을 찍어 식당 벽면에 게재하죠.
2009년 이후 이 도전에 성공한 사람이 모두 116명인가 봅니다. 116장의 사진이 붙어 있습니다. 하나같이 입술은 벌겋고 얼굴은 상기돼 있습니다. 땀도 꽤 많이 흘린 듯합니다.
혹시나 이 글을 읽는 분 가운데 나중에 도전하실 분 있을까봐 조건을 알려드릴게요. 복잡하진 않습니다. 맵기 단계는 극강의 매운 단계(超級辣)입니다. 그 바로 아랫단계인 아주 매운 단계(重辣)를 먹어본 경험이 있어야 도전할 수 있습니다. 重辣와 超級辣 마라깐미엔을 같은 날 먹으면 안된다는 조건도 있네요. 여러분을 염려한 문구입니다.
성공조건은 간단합니다. 극강의 매운 단계 마라깐미엔 1인분을 30분 안에 모두 먹으면 됩니다. 물론 면과 양념 함께요. 성공하면 위에서 얘기한 상금을 주지만 실패하면 반대로 500 대만달러를 내야합니다. 다 못 먹어도 실패고 다 먹더라도 5분 안에 토하면 실패입니다. 다 먹고 나서 결국엔 토하는 사람도 있다 하네요. 먹으면서 음료 마시는 것은 허용하지만 음식에 음료나 물을 부어 먹는 것은 안 됩니다.
자 해보시겠습니까? 전 안합니다.
제가 주로 선택하는 맵기 정도는 ‘약간 맵기(輕辣)’ 단계입니다. 식당에서는 친절하게 단계별 맵기가 어느 정도인지 설명을 붙여 놨습니다. 이러합니다.
1단계 조금 맵기(輕輕辣), 어린아이들도 모두 먹을 수 있는 정도입니다. 2단계 약간 맵기(輕辣), 일상적인 매운 맛을 먹을 수 있는 사람에게 적당합니다. 3단계 중간 맵기(中辣), 일반 식당에서 파는 매우 맵다는 음식 먹는 데 문제가 없다면 가능합니다. 4단계 아주 맵기(重辣), 식당에서 파는 아주 매운 음식이 별로 맵다고 느껴지지 않는 사람이라면 가능합니다. 마지막 5단계, 도전하는 단계죠, 극강 맵기(超級辣), 자기 생명을 소중히 여기지 않는 사람이라면 먹으라네요.
음식이 나왔습니다. 깐미엔답게 모양은 아주 간단합니다. 면 위에 고기다진 갈색의 마라 소스가 올라가 있고요. 그 위에 쏭쏭 썰은 파가 올라가 있습니다. 그리고 아마 마늘을 얇게 썰어 튀긴 것 같아요. 노란색 건더기가 씹힙니다.
제가 주로 즐기는 2단계가 약간 맵기라고 우습게보면 안 됩니다. 첫 젓가락을 떠서 입 안에 넣는 순간 기침이 나옵니다. 매운 것 먹을 때 자동반사적으로 나오는 그 기침이요. 그래서 먹을 때는 숨쉬기와 먹기 순서를 잘 맞춰가며 먹어야 합니다.
매콤한 내음이 입안에 들어가니 훅하니 더운 기운도 들어가는 기분입니다. 땀도 삐질삐질 나옵니다. 덩달아 춥다는 생각은 가십니다. 생각보다 금방 먹습니다. 곱빼기를 시키지 않은 게 아쉽습니다. 대신 함께 시킨 마라 차오쇼우(抄手)도 먹습니다. 작은 교자만두인데 이또한 마라 소스를 추가했습니다. 오늘 아주 마라 풍년입니다.
아무리 매운 게 땅겨 왔지만 입안의 매운 맛을 가실 필요가 있습니다. 완탕을 하나 시켰습니다. 따끈한 국물에 입안의 매운 맛이 더 강해지지만 서서히 줄어듭니다. 완탕에 들어가 있는 미트볼도 씹는 식감이 나쁘지 않습니다.
여기는 음식값이 후불이에요. 이렇게 3가지 먹어서 150대만달러 나왔습니다. 우리 돈 7천원 정도네요. 훌륭하지 않나요?
다 먹고 나오니 바깥 공기가 시원합니다. 목덜미에 땀이 송글송글 묻어 있네요. 점심 한 끼 잘 먹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