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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HGXING Dec 04. 2023

우라이(烏來, ‘ulay’)에 대한 단상

대만 여행

대만의 국경절 연휴를 맞아 장거리는 아니고 당일치기 여행으로 선택한 우라이(烏來) 온천. 지금 사는 곳이 타이베이 북쪽이고 우라이는 타이베이를 둘러싸고 있는 신베이시의 남쪽 끝인지라 대중교통으로 2시간 정도 걸린다. 우리나라로 치면 서울 은평구에서 경기도 이천 지역으로 당일 여행을 가는 것이라 보면 될 듯하다.  


온천이라 하면 타이베이 북쪽의 베이터우(北投)가 한국 예능 프로그램 등에 많이 나오기도 했고 지금 살고 있는 집에서도 가깝다. 그래서 굳이 우라이까지 가야 하나 싶기도 했으나 가자면 가야지. 태풍 영향인지 하루 종일 비가 흩뿌리고 있어 오히려 덥지는 않아 좋다. 버스 타고 타이베이 시내를 가로질러 타이베이 외곽의 산길을 가는 재미도 쏠쏠하다. 


리조트를 겸한 호텔의 부속 대중탕 온천이다. 물론 리조트라 해서 우리나라의 쏠비치나 한화 리조트 등의 규모는 아니고 4~5층 건물 높이에 동네 대중 목욕탕 정도 크기의 온천이다. 프라이빗 탕도 있으나 탕 1개 포함 10㎡ 정도의 크기인지라 오히려 대중탕이 낫다는 결론. 거기다 가격도 착하지는 않다. 대중탕이 1인당 4만원 정도라 비싼 편이지만 프라이빗 탕에 비해선 싸다. 숙박을 하면 물론 할인이 되는데 숙박 요금이 국경절 연휴인지라 깡패 수준이다.


대중 온천은 실내 탕 3개에 노천탕 1개, 사우나 2개, 휴게실 1개로 이뤄져 있다. 단촐하다. 시설은 대만의 건물 특성상 새것이거나 고급 느낌은 아니나 잘 관리되어 있고 수더분하다. 노천탕에서 바라보는 풍경이 가격이 왜 이 정도인지 말해준다. 조용한 산 속에 파묻혀 바라보는 옥빛 호수 모습이다. 물색깔이 정말 옥색이다. 그 물 건너편 30여미터에 위치한 산은 짙은 녹음이다. 분무기 마냥 흩날리는 빗물이 노천탕 풍미를 더했다. 


4시간 시간 제한이 있다. 목욕하는데 1시간이면 족한데 4시간 동안 무엇을 하나 걱정했으나 괜한 걱정이다. 오전 10시에 들어가 오후 2시 나올 때쯤 더 있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곳을 찾아내 가자고 한 아내에게 감사하다는 마음까지.


기분 좋은 여행길인지라 ‘우라이’라는 지명에까지 관심이 간다. 사실 우리나라에서도 여행을 다니며 간혹 지명의 유래를 궁금해 했다. 어쩔 수 없는 호기심인가 보다. 우라이(烏來)는 중국어 그대로 한다면 ‘까마귀가 온다’는 뜻. 이 지역에 까마귀가 많았나란 원초적이고 1차원적인 의문을 품어봤다. 유래는 의외였고 신선했다. 


대만에는 16개의 원주민이 있다. 그 가운데 타이야족(泰雅族)이란 원주민이 있는데 사냥을 하던 이들은 이 우라이란 지역에 도착하게 된다. 수백년 전에 말이다. 그런데 물에서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지 않은가! 그래서 한 말이 ‘ulay kilux’다. 타이야족 언어로 ulay가 온천이란 뜻이고 kilux는 김이 무럭무럭 난다는 형용사다. 즉 “온천에서 김이 무럭무럭 나고 있어!”라고 표현한 셈이다. 이 ulay란 발음을 중국어에서는 같은 발음인 烏來를 빌려 표현한 것이다. 즉 우라이란 온천이란 뜻이다.    


온천을 마치고 근처 우라이 옛거리(老街, 라오지에)를 찾았다. 대만 도시에는 곳곳에 라오지에가 있다. 주로 먹거리와 볼거리로 조성된 골목이라 보면 된다. 비가 오는데도 걸어다니며 어깨를 부딪칠 정도로 사람이 꽤 많다. 대표 먹거리인 소시지를 마늘과 함께 먹고 떡꼬치를 하나 집었다. 두툼한 가래떡 같은 것일진대 꿀을 듬뿍 얹어 준다. 


이제 다시 타이베이로 돌아올 시간. 버스 정류장에 가니 이미 사람들이 꽤 있다. 20여명 정도 될 듯. 1시간 정도 가는 버스이고 산길이다 보니 서서갈 바에야 20분마다 있는 다음 버스를 기다려야 한다. 좌석버스 형태기에 앞에 20여명 정도면 우리도 앉아갈 수 있으리라 기대하고 줄을 섰다. 


그런데 이 줄이라는 게 좀 애매했다. 버스 종점이기도 하고 관광지이다 보니 정류장 대기 의자가 길게 2줄 형태로 놓여 있다. 한 줄당 10명 정도 앉을 수 있다. 바닥에 이동 동선을 화살표로 표기해 놨지만 앉아 있는 사람 발들이 그 화살표 위에 있기에 나중에 오는 사람들은 그렇게 줄이 있다는 것을 모를 수도 있을 것 같다. 


이미 우리가 왔을 때는 긴 의자 2줄에 사람들이 가득 앉아 있었고 우리 뒤에 온 사람들은 이미 헷갈려서 우리에게 줄 서 있는 거냐고 묻고 있는 상황. 게다가 사람들이 밀려 오면서 우리 뒤로 30명 이상 족히 줄인 듯 아닌 듯 밀려들고 있었다. 비까지 오는 통에 의자 있는 데만 가림막이 있어서 비를 피하려 좀더 어수선했다. 궁금했다. 대만 사람들이 줄을 잘 서고 질서 의식이 높긴 한데 이런 상황에서도 새치기 안하고 버스를 잘 탈까? 아내 왈 “만일 새치기 없이 버스 잘 탄다면 respect!”


버스가 도착했다. 앉아 기다리던 사람들이 모두 일어섰고 버스에 올라타기 시작했다. 그런데 대기 의자 바깥에 있던 사람들은 그 줄 뒤로 질서정연하게 붙었고 버스에 먼저 올라타는 모습은 전혀 없다. 나와 눈이 마주친 아내가 눈으로 말한다. “대만 respect!” 우라이 국경절 여행은 이렇게 기분 좋게 마무리.

우라이 온천 모습
우라이 온천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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