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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HGXING Nov 27. 2023

‘현상유지를 깨는 것은 내가 아니라 저쪽이요!’

[대만, 정치의 계절]

외국인 친구가 있는 우리나라 사람이라면 한번쯤은 들어봤을 우문을 한 대만 사람에게 던져봤다. 동네 목욕탕에서 가끔 뵙는 나이 지긋하신 아저씨께 말이다. “무섭지는 않아요?”


4월 8일부터 10일까지 중국은 대만을 봉쇄하는 위협 훈련을 하고 있었다. 차이잉원 총통이 중남미 순방을 하는 길에 미국 LA를 들러 매카시 미국 하원 의장과 회담을 한 데 대한 ‘보복’의 의미였다.


볼 때마다 사람 좋은 미소와 따듯한 목소리가 도드라졌던 이 분의 목소리가 살짝 올라가서는 되물으신다. “어때요? 김 선생은 불안해요?”, “아니요. 사실 여기 지내면서 전혀 불안하다고 느껴지지는 않아요.” “우리 대만사람들도 그렇습니다. 전혀 불안하지 않아요.”


시진핑 중국 주석의 3연임이 확정되고 임기가 시작된 마당에 이미 권력이 공고화된 상황에서 부러 대만을 침공해서 문제를 일으킬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권력이 약하면 오히려 외부에 분란을 일으켜 내부 결속을 다질 텐데 그럴 이유가 시 주석에게는 현재 없다는 나름의 분석이다. 게다가 실제 공격을 한다면 중국이 받을 피해도 막심한데 쉽게 공격 결심을 내릴 수 없다는 얘기도 덧붙였다.


양안관계를 바라보는 시선은 여러 가지다. 어느 하나만 타당할리는 없는데 하여간 이 분의 생각은 그랬다.


내친 김에 슬쩍 우문을 하나 더 던졌다. “내년 총통 선거에서는 누가 이길 것 같으세요?”


차이 총통의 임기는 내년까지다. 대만 총통 임기는 4년이고 한번 연임이 가능하다. 차이 총통은 2020년에 연임에 성공했으니 내년, 2024년에는 물러나야 한다. 그래서 내년 1월 13일 총통 선거가 있을 예정이다. 대만의 2023년은 정치의 계절인 셈이다. 총통 선거 열기도 서서히 달아오르고 있다.


이 분 생각에 대만의 안정을 헤치고 있는 쪽은 중국이었다. 그래서 민진당 후보가 다시 총통에 당선되길 바랐다.


대만에 온지 2달여밖에 되지 않았지만 내년 총통 선거를 앞두고 어렴풋이 느껴지는 흥미로운 점이 한 가지 있다. 대부분의 대만 사람들이나 언론매체나 총통 선거에서 누구를 선택할지 판단기준은 현재의 현상유지에 무엇이 도움이 되느냐라는 점이다.


불안정한 동북아 국제정치에서 대만이 위험을 회피하는 전략은 현재 상황의 변화를 막는 것이고 변화는 바로 악화를 의미한다고 받아들이고 있는 듯하다. 여당 후보를 지지하는 사람이건, 야당 후보를 지지하는 사람이건 자신이 그 후보를, 그 당을 지지하는 이유는 바로 그 후보가, 그 당이 현상유지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다만 현상유지가 어떤 것이냐에 대한 정의는 매우 상반된다.


거칠게 표현해서 여당을 지지하는 사람들에게 중국은 현상타파 세력이고 야당인 국민당이 이를 부추기고 있다고 생각한다. 중국이 ‘하나의 중국’이라는 명분 하에 대만과의 통일을 밀어붙이면서 군사적으로 대만에 위협이 되고 있고 이는 대만의 안정과 현상유지에 매우 위협적인 요인이 되기 때문에 대만은 미국을 중심으로 하는 민주주의 동맹을 더욱 공고히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반면 야당을 지지하는 사람들에게 여당인 민진당은 대만 독립을 주장하면서 양안관계의 안정을 무너뜨리는 현상타파 세력이다. 미국 또한 중국의 부상을 봉쇄하려 글로벌 칩 동맹 등으로 갈등을 야기하고 있고 대만 지원이라는 미명하에 중국을 자극하고 있다고 바라본다.    


한쪽에게는 대만 민주주의의 현상유지를 깨려는 세력은 중국 권위주의 국가와 그를 활용한 국민당이고, 다른 한쪽에게는 양안관계의 안정이라는 현상유지를 깨려는 것은 독립을 획책하면서 중국을 자극하는 민진당과 미국인 것이다.


현상유지를 깨는 것은 내가 아니라 저쪽이라고 국민들에게 어필하고 있는 셈이다.


이러한 입장은 여당과 야당의 내년 총통선거 전략에 그대로 이어지고 있다. 여당은 ‘민주 대 독재’ 프레임으로 내년 총통선거 프레임을 짜려 시도하고 있고 야당은 ‘전쟁과 평화’라는 틀로 국민들에게 어필하려 하고 있다.


사실 현상유지에 대한 상반된 정의는 어찌 보면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 논란과 다를 바 없다. 민진당 주장이나 국민당 주장이나 서로 독립된 변수가 아니라 상호 영향을 주고 받는 변수들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느 주장이 보다 설득력이 있을지는 대만인들이 자신들을 어떻게 규정하느냐는, 즉 자신들의 정체성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느냐는 점과 맞닿아 있을 것이다, 즉 대만 독립과 대만인의 정체성을 강조한다면 여당을, 중국과의 원만한 관계 속에서 자신들의 나아갈 방향을 규정하고 싶다면 야당의 손을 들어줄 듯싶다.  


이런 의미 때문에 내년 총통 선거 결과가 더욱 궁금해진다. 대만 사람들이 자신들이 누구라고 밝히는 선거가 될 수 있으니. 그만큼 대만 사람들 고민도 깊을 것이다. 언제나 어려운 것은 자신을 들여다보는 일이기에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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