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KHGXING Nov 19. 2023

귀신 문이 열렸다.

8월 16일, 음력 7월 1일, 정식으로 ‘귀신 문’이 열렸다. 정확히 말하자면 8월 15일 저녁 11시(음력 7월 1일 자시) 부터다. 저승과 이승 사이의 문이 열려, 저승에 있던 혼령과 귀신들이 이승으로 내려온다. ‘귀신의 달’인 음력 7월에 있는 일이다. 


괜히 으스스한가? 영화 내용이 아니라 대만 언론에서 전하고 있는 대만 풍습에 관한 이야기다. 8월 16일을 전후에 대다수의 대만 언론 매체에서 이러한 귀신의 달 소식을 전하고 있다. 자유시보(自由時報)와 같은 지면매체이건, TVBS와 같은 방송매체이건 마찬가지다. 귀신 문이 열린 뒤 주의해야 할 6가지, 12가지, 13가지 등 각종 금기사항이 넘쳐났다. 특히나 올해 2023년은 ‘검은 토끼의 해’인지라 가장 흉악한 귀신의 달이라니 더욱 조심하란다. 


그럴 수 있다. 우리도 그렇잖은가. 윤달이니 사고 조심하라 하고, ‘길일’을 받아 큰일을 치루는 사람들도 있다. 이사는 ‘손 없는 날’ 해야 하고 말이다. 무속신앙이 꽤 남아 있던 제주도에서는 대한 후 5일째, 입춘 3일 전까지 일주일 가량을 신구간이라 해서 이때 이사를 많이 했다, 이제 이러한 ‘믿음’은 희미해져가지만 말이다. 윤달이 시작된다고 “윤달 시작됐다!” “윤달 맞이 10대 금기사항” 이런 언론보도를 본 기억은 없다.


하지만 대만에서는, 우리로 치면 소위 무속신앙, 금기라는 것이 여전히 사회 저변에 깊숙이 자리하고 있다. 무속신앙이 아니라 종교에 버금가는 믿음이다. 대만에서는 도교, 불교, 유교, 전통신앙 등을 믿는 인구가 90% 이상이기에 그러할 듯싶다. 게다가 각 종교를 구분하기가 애매하고 혼합되어 있으니 ‘귀신 문이 열리는’ 이러한 믿음에 대한 기사화가 대만에서는 매우 자연스러울 수밖에 없다.


금기 사항이 무엇일지 궁금하다. 대만 방송매체 TVBS가 민속문화 전문가 입을 빌려 전한 6대 금기사항이다. △결혼하지 말 것, △사업을 시작하지 말 것, △길에 떨어져 있는 지갑, 돈봉투, 물건 등을 절대 함부로 줍지 말 것(귀신이 그것에 붙어 있음), △말을 함부로 하지 말 것, △분신사바와 같은 귀신 부르는 놀이를 하지 말 것, △명지(죽은 사람을 위해 불살라주는 지전)를 밟지 말 것 등이다. 


야후 뉴스에서도 금기 사항 또는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피하려 하는 사항 16가지를 정리했다. △밤에 사진 찍지 말 것, △병원은 음기가 강한 곳이니 평안부적을 지참하고 갈 것, △막차는 가급적 타지 말 것, △부동산 구매하지 않기, △밤중에 휘파람 불지 말 것, △길가에서 낯선 사람이 이름을 부르거나 어깨를 두드릴 때 돌아보지 말 것, △벽에 등을 기대어 쉬지 말 것, △야밤에 물놀이 하지 말 것, △밤중에 빨래를 말리지 말 것, △밥그릇에 젓가락을 꼽지 말 것, △길에 떨어져 있는 돈봉투를 줍지 말 것, △빨간 색 옷을 입지 말 것, △귀신 문 열린 날 태어난 사람은 하루 지나서 생일축하, △집안에서 우산 펴지 않기, △집에 인형 들이지 않고 머리맡에 풍경 등 종 두지 않기, △귀신 부르는 놀이 하지 않기.


이렇게 가급적 접하고 싶지 않은 귀신을 달래기 위한 중요 풍습 가운데 하나가 음력 7월 15일 행하는 중원절 제사다. 이날 자기 조상에게 제사를 지내기도 하지만 이름 모를 영혼들을 달래기 위한 음식 공양도 대대적으로 열린다. 귀신들이 배불리 먹게 되면 이승의 사람들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다는 믿음의 발로다. 중원절 제례의식이 흥미로운 것은 각 동네 어귀마다 열리는 것은 물론이고 대도시 빌딩, 사무실에서도 열린다는 점이다. 


대만의 수도 타이베이 도심의 세계무역센터 건물에서 일하고 있는데, 중원절 오전에 빌딩 정문에 20m 정도는 돼 보이는 테이블이 설치되고 그 위에 빨간색 테이블보가 차려진다. 그럼 이날 하루 종일 빌딩 내 사무실마다 시간 안배를 하고는 각종 음식을 차려놓고 직원들이 내려와 제례 인사를 올린다. 음식은 우리가 생각하는 제사 음식과는 다소 차이가 있다. 과자, 치킨, 피자 등 다양하다. 본인과 직접 관련이 없는 이름 모를 혼령들에게 제를 올리며 평안을 바라는 모습에서 대만 사회의 연대의식과 살아가는 마음가짐이 엿보인다 해석하면 과대 해석일라나.  


대만 사회와 매우 밀접한 문화이다 보니 귀신 달의 풍습에 착안한 마케팅도 눈에 띈다. 대만 최대 슈퍼마켓 체인 기업인 PX Mart(全聯)의 중원절 광고가 대표적이다. 2016년부터 시작했다고 하는데 매년 큰 관심을 받아온 모양이다. 올해는 사기꾼, 학교폭력, 쩍벌남을 주제로 3편이 제작됐다. 요지는 간단하다. “사람이 하는 일을 하늘만 보고 있는 게 아니다. 귀신도 보고 있다. 나쁜 일 하지마!”. 그러면서 “좋은 마음으로 좋은 재료 준비하세요”라면서 PX 마트에서 중원절 제사 음식 준비하라는 메시지다. 페이스북에서만 이 광고 조회수는 260만회, 좋아요가 1.7만을 넘었다. 


일상생활에서 대만 사람들이 귀신의 달 풍습을 그대로 믿지는 않을 터. 하지만 풍습이란 게 그렇지 않은가. 몸에 체화되어 있다. 실제로 대만 사람들과 한국 출장을 가게 됐는데 날짜가 공교롭게 8월 16일. 이날은 귀신 문이 열리는 날. 머 절대 안된다는 것은 아니지만 사회 분위기가 조심스러우니 날짜를 조정 가능한지 조심스레 물어본다. 출장 날짜가 중요한 게 아니었기에 8월 17일로 변경. 굳이 찜찜한 마음을 둘 필요 없지 않은가. 


그렇다면 과연 귀신의 달이 사망률 등과 관련이 있을까? 대만 언론도 나와 마찬가지로 이런 궁금증이 있었나 보다. 관련 언론보도가 있다. 의학계 연구에 따르면 사망률 차이는 크게 없는 것으로 조사됐단다. 다만 익사 사고 비율이 다소 줄어들었고 제왕절개 비율은 매우 낮았다. 이에 대해 사회과학 연구에서는 문화적 믿음이 실제 행동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고 해석했다. 귀신의 달 터부인 물놀이 자제로 익사사고 줄었고, 산모 출산 방식에도 영향을 주었다는 것이다. 


어쨌거나 귀신 문은 음력 7월 30일, 양력 9월 14일 닫혔다. 내년도에 다시 열릴 터이지만 대만에서의 하루 하루가 평온하길 소망해 본다. 


<대만 PX Mart 중원절 광고 모습>


작가의 이전글 ‘스탠다드 차타드 타이베이 공익 마라톤 대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