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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HGXING Aug 29. 2024

그늘이란 마시멜로를 먹어본 적 있습니까?

[대만 소소한 일상]

그때 왜 그 책을 추천해 줬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사실 마시멜로 그 책은 대학생들이 읽을 책은 아니니까요. 물론 이 또한 대학생의 허세일 수도 있지요.


그러니까 이렇습니다. 대학 때 친한 선배형이 있었습니다. 박식한 선배였고 귀담아 들을 얘기를 종종 해주던 선배였죠. 지금도 그 모습은 여전합니다. 그 선배가 추천하는 책이었으니 냉큼 사서 읽었습니다. 그 책이 마시멜로 이야기였습니다.


그런데 자신은 없습니다. 뜬금없이 무슨 자신이냐고요? 대학교 1학년 때니 곧 30년 가까이 지난 이야기에요. 요즘은 간혹 그렇습니다. 지금 기억하고 있는 일이 정말 있던 일일까, 아니면 꿈을 꿨는데 그게 현실이었다고 착각하고 있는 것일까. 이렇게 기억과 현실의 구분이 모호할 때가 있습니다. 이 이야기도 그러한 상황입니다만 그냥 현실이었을 것이라고 ‘확신’하고 써보겠습니다.


마시멜로 이야기, 한때 꽤 유행하던 책이었죠. 이야기는 이럴 거예요. 아이들에게 마시멜로를 줍니다. 1시간을 참고 먹으면 1개를 더 준다고 합니다. 그럼 아이들은 두 부류로 나뉩니다. 그냥 먹어버리는 아이들과, 참고 나서 1개를 더 먹는 아이들로요. 일종의 실험입니다.


이 두 부류의 아이들 성장 이후를 추적합니다. 그랬더니 바로 먹은 아이들보다 참았던 아이들이 결과적으로 사회적인 성공을 거두었다는 겁니다. 마시멜로라는 순간의 달콤함을 참을 줄 아는 인내가 다른 결과를 낫는다는 이야기겠지요. 솔직히 지금은 그렇게 생각하지는 않는데 그 당시에는 그래도 나름 울림이 있던 얘기로 기억합니다.


갑자기 웬 마시멜로 타령이냐고요? 여름날 달리기를 하다 문득 내가 마시멜로라는 ‘그늘’을 먹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엉뚱한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이제는 대만도 더위가 한풀 꺾이고 있는 느낌입니다만 7월 한창 때는 이른 아침이더라도 달리기가 만만치 않았습니다. 그래도 달리기가 인이 박힌지라 5시반경이면 눈이 떠집니다. ‘기쁜’ 마음에 주섬주섬 러닝복을 입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1층으로 내려갑니다.  


그날은 유난히 구름이 끼었는지라 달리기 욕심이 났습니다. 보통 달리기 시작할 때 오늘은 5km만 뛰자, 7km 코스로 뛰자, 10km 뛰자, 에라 모르겠다 그 이상 해보지 머, 이렇게 마음을 먹습니다.


이날은 원래는 5k 각이었는데 달리다 보니 그늘이 져 있는지라 달리기가 달콤했습니다. 구름도 있고 아직 해도 제대로 뜨지 않았는지라 나름 시원하기까지 하네요. 더 달려보자, 마음이 속삭입니다.


쌍계천이 지롱강을 만나는 지점에 도착했습니다. 7k 코스면 거기서 다리를 건너 돌아와야 합니다. 아직도 그늘 마시멜로가 짙게 드리워 있습니다. 이날은 그늘 ‘맛집’이네요. 동합니다. 더 달려보자.


왕복 8k를 뛰면 돌아와야 하는 지점도 지났습니다. 10k 뛰면 돌아와야 하는 지점에 당도했습니다. 이제야 해가 빼꼼 뜹니다. 더 이상 지체하면 안됩니다. 7월 아침 햇살도 무시하면, 어휴 후회합니다.


반환점 부근의 고가도로/ 그늘이 걷히고 있다.


그런데 말입니다. 반환 지점이 고가도로 아래에요. 그러다 보니 해가 떠도 그 지점에는 그늘이 짙게 내려 있습니다. 이날 왜 이리 컨디션이 좋은지. 그늘인데 차려진 밥상 먹어야지! 마음이 또 속삭입니다. 더 달렸습니다. 그렇게 1km를 더 달리니 드리워진 고가도로 그늘이 걷혀진 지점에 다다랐습니다. 그제야 화들짝 정신이 듭니다. 돌아섰습니다.


반환점을 돈 뒤 1km는 문제 없습니다. 거기도 고가 그늘이니까요. 그 이후가 난리 났습니다. 해가 쨍합니다, 그늘은 저리가라 사라졌습니다. 돌아오는 내내 해를 정면으로 마주하고 달렸습니다. 얼굴이 익어버렸습니다. 마시멜로에 녹아버려습니다.


그늘이란 마시멜로 먹다 돌아오던 길


그늘이라는 마시멜로를 쉼 없이 먹다 그만 체한 셈이네요. 그러면서 갑자기 ‘마시멜로 이야기’가 생각난 거였습니다. 참았어야 했는데 말이죠.


회사 동료와 이 얘기 저 얘기 하다 이날 이야기를 들려줬습니다. 그늘 마시멜로를 너무 많이 먹은 이야기를요. 그랬더니 그 친구 왈 “우리는 무슨 마시멜로를 그리 많이 먹어서 여기 와 있는 걸까요?” 그럽니다. 해외지사 근무하다 보면 워라벨이 없는데 그 신세 한탄인 거지요. 한참 웃었습니다.


근데 머 혹시 이런 것일 수도 있지요. 마시멜로 잘 참아서 여기까지 잘 온 것일 수도 있다고요. 궁금해졌습니다. 여기 있는 건 어떤 마시멜로를 먹어서인 건지 아니면 어떤 마시멜로를 먹지 않아서인 건지요. 하여간 이렇게 여름 잘 넘어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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