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 소소한 일상]
7월 24일 수요일과 25일 목요일 이틀간 대만은 휴일이었습니다. 휴일 명목은 다소 낯섭니다. 태풍 휴일(颱風假). 우리나라에선 그다지 경험해보지 못한 휴일입니다.
대만의 독특한 제도 가운데 하나일 터이지요. 태풍 발생 지점과 가깝기도 하고 태풍의 북상 경로에 위치한 대만이기에 태풍의 강도가 한반도에서 일상적으로 경험했던 것 이상입니다. 물론 우리나라에서도 태풍이 오면 주의보나 경보가 발령됩니다만 대만은 더욱 각별히 경계하는 분위기입니다.
태풍 휴일을 결정하는 이유는 명료합니다. 태풍을 피해 안전한 집안에 머무르라는 의미지요. 회사원들은 이날 회사에 가지 않고, 학생들은 학교에 가지 않습니다. 그래서 ‘팅반팅커’(停班停課)라 칭하기도 합니다.
사람 마음이 묘합니다. 안전에 유의할 정도로 강력한 태풍이 오는 것이니 긴장감이 감돌만도 합니다. 아무 일 없이 지나가야지요. 그러니 태풍이 불지 않길 바라야 하는 것이고요. 반면 태풍이 오면, 잘 하면, 잘만 하면 하루 휴일이 생깁니다. 태풍이 온다는 소식이 전해지면 이왕 오는 김에 태풍 휴일을 내심 기대하는 게 그래서 대만 사람들 심리인 것 같습니다. 노골적으로 얘기하지 않지만 다 ‘보입니다.’ 온라인상에서는 보다 솔직하게 얘기하더라고요. 그 기대감을요. 태풍 휴일이면 백화점이나 영화관이 그렇게나 붐빈다고 하네요.
이러다 보니 일단 태풍이 발생해 대만으로 접근하기 시작한다는 기상청 발표가 있으면 사람들은 태풍 경로를 시시각각 들여다보기 시작합니다. 태풍이 지나가는 길목에 있어야 강도가 더 셀 것이고 그래야 태풍 휴일 가능성이 보다 높은 것이니까요. 아, 태풍 휴일은 전국 단위로 중앙 정부에서 발령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 결정은 지자체에서 독자적으로, 개별적으로 하게 됩니다.
여기에서 지자체장들의 고민이 시작됩니다. 태풍 휴일을 발령할 것인지 안할 것인지 오롯이 지자체장의 결정이니까요. 보통 태풍이 접근하면 각 지자체마다 다음날 태풍 휴일 여부를 몇 시쯤, 예를 들어 저녁 8시에 발표하겠다고 예고합니다. 시민들의 눈과 귀는 그럼 그 소식에 쏠릴 수밖에 없습니다. 태풍에 따른 안전문제, 물론 가장 중요합니다만 직장인들이나 학생들이나 하루 휴가가 생긴다는 의미가 더 마음에 와 닿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인지상정인가 봅니다.
타이베이시에서는 이번 태풍 휴일 결정을 23일 저녁 8시에 발표했습니다. 대다수 언론이 속보로 관련 소식을 전합니다. 각 지자체별로 어떤 결정을 내렸는지 상세히 보도합니다. 다른 지역은 태풍 휴일인데 자기 거주지만 다음날 출근하거나 등교하면 그것만큼 ‘억울’한 것도 없지 않겠습니까.
지자체마다 결정이 엇갈리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번 태풍 개미 때문에 상당수 지자체, 예를 들어 타이베이, 지롱, 신베이, 가오슝, 타이난 등은 저녁 8시경 태풍 휴일 결정을 내렸지만 일부 지자체에서는 ‘그냥 내일 출근하시고 등교하십시오!’라고 결정했다가 늦은 밤 11시가 되어서 결정을 번복했습니다. “내일 태풍 휴일입니다!”라고. 중부 지역인 타이중, 장화, 난터우, 윈린, 자이, 타이동 등의 지역이 그러했습니다.
당초 정상 출근 소식을 들은 지역 시민들은 입이 댓 발 나왔습니다. 온라인이 꽤 뜨거웠죠. ‘왜 우리 지역만?!’ ‘다음 선거에서 이기기 싫은가 보죠?!’ 등 아쉬운(?) 마음을 강하게 표출했죠. 결정이 바뀌어 태풍 휴일 결정이 내려지자, 이번에는 ‘욕먹고 나서야 정신 차리셨군요!’란 볼 멘 소리가 나왔죠. 물론 상당수 시민들은 ‘감사합니다~’란 표현을 했지만요. ‘다음 선거에서도 당선될 거에요~’란 ‘덕담’과 함께요.
다음날 자이시 시장 등은 늦게 결정을 번복한 배경을 소상히 설명했습니다. 저녁 7시경 중앙기상청 예측 자료에 따르면 풍력이나 강우량이 태풍휴일 발령 기준에 미치지 않아 정상출근을 결정했지만 밤 10시가 넘어가면서 기준에 달했기에 부랴부랴 발표했다는 내용이었죠.
지자체장 입장에서는 참 어려울 것 같습니다. 현대 과학으로도 태풍의 영향을 예측하는 게 어려울 터인데 부족한 데이터를 배경으로 시민들의 소중하디 소중한 하루에 영향을 미칠 결정을 내려야 하니까요. 그래서 대만 언론들은 “태풍 휴일의 정치학”이라 표현하고 있습니다. 태풍 휴일을, 지자체장들이 시험 봐야 하는 “필수과목”이라 표현하기도 하고요. 태풍이 올 때마다 지자체장들은 과학과 퍼퓰리즘 사이 그 어딘가에서 헤맬 수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과학과 퍼퓰리즘 그 어딘가’ 라는 이야기에 물론 이렇게 말씀하실 수도 있겠네요. 기준에 부합하면 발령하고 기준에 부합하지 않으면 발령하지 않으면 되는 것 아니냐고요. 네 기준은 이러합니다. ‘자연재해에 따른 출근 및 수업 중단 조례’(天然災害停止上班及上課作業辦法) 4조에 정해져 있는데요. 기상예보에 따라 태풍 반경이 4시간 이내에 통과하는 지역이고 평균 풍력이 7급 이상 또는 돌풍이 10급 이상일 경우 발령을 내릴 수 있습니다. 실제 강우량이 지역별 기준치에 달하면 마찬가지로 태풍 휴일 발령이 가능합니다. 지역별 기준치는 다소 상이하지만 보통 350mm입니다.
하지만 이것은 기준일 뿐입니다. 기상학이란 과학의 영역이 2~3시간 후 변화도 어떤 경우엔 예측하기 어려운 것 같습니다. 요즘 같이 기상이변이 일상화된 시기에는 특히나요. 지자체장들로서는 ‘아 이거 참 지금 기준에 달하지 않았지만 2시간 후에 분명 더 강해질 것 같은데 지금 아예 발령을 내릴까?’란 고민이 들지 않겠습니까.
태풍 휴일 발령 관련해서 ‘신의 손’과 ‘똥 손’으로 회자되는 인물이 있습니다. 모두 동일인물이라는 게 흥미로운데요. 바로 올해 대만 총통으로 취임한 라이칭더입니다. 라이 총통은 2010년부터 2017년까지 8년간 타이난시 시장을 지냈는데요. 2012년 사례는 신의 손으로, 2016년의 경우엔 최악의 똥 손으로 언론에 회자됩니다.
2012년 4월에 타이중 이남 지역은 모두 태풍 휴일 발령을 내렸습니다. 당시 타이난시만 그 결정을 따라가지 않고 있다가 새벽 5시에서야 정상 출근 결정을 내렸죠. 타이난시민들로서는 욕이란 욕은 다 했겠구요. 그런데 막상 이날 태풍의 강도가 그렇게 세지 않았습니다. 시민들의 평가는 바로 역전됐고 라이 시장은 신의 손이 됐지요.
2016년 9월 므란티 태풍 때는 완전 반대였습니다. 전날 저녁 라이 시장은 정상 출근과 정상 수업 결정을 내렸습니다. 사람들은 불만 가득히 출근하고 학교 갔겠죠. 그러다 오전에 갑자기 오후부터 태풍 휴일 결정을 내렸고 학생들은 폭우 속에서 하교길에 올랐습니다. 민심이 어떠했을지 충분히 짐작이 가지요.
하여간 어렵습니다. 아 그런데 방금(25일 저녁 9시 30분) 가오슝시에서 다시 26일 태풍 휴일 결정을 내렸습니다. 이렇게 되면 3일 연속이네요. 가오슝시 시장 마음속의 외침이 들리는 것 같습니다. “신이시여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소서..”
(태풍 피해가 크지 않기에 작성한 글입니다. 태풍 피해가 없기를 당연히 바랄 따름입니다.)